[Review] 일상의 비밀, <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 [도서]

글 입력 2018.09.04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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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벅차오르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책은 분명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었지만 마치 섬세하게 그려 둔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책의 앞면에는 사울 레이터의 작품 「발자국」이 자리했는데, 보드라운 재질의 종이 커버에 인쇄되어서인지 내가 그동안 보았던 책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었다.

표지의 재질, 사진의 색감, 그리고 내 기억 속의 눈 내리는 겨울날. 이 세 가지가 어우러지며 책에 대한 인상을 만들어 냈다. 눈 오는 날에는 유독 소리가 먹먹하게 들리고, 주변은 유독 고요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겨울의 고요함과 먹먹함이 함께하면 몸에 닿는 공기는 추워도 왠지 모를 따스함이 느껴지는데, 이 책의 첫인상도 그랬다. 그런 따듯함이 묻어 나왔다.

*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완전히 덮고 난 후까지,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보며 나에게 자연히 다가온 감상들을 정리해보았다.



1. 사울 레이터와 함께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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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치 사울 레이터가 남겨둔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만 같았다. 혹은 그의 촬영에 함께 따라다니는 것만 같았다. 사울 레이터를 따라간다는 의미는 마치 자유로운 여행을, 여유로운 동네 산책을 떠올리게 했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를 읽기 전, 책을 읽는 데에 구체적인 목적을 두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가 말했듯이, 염두에 둔 목적 없이.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여행하는 것처럼, 끝내기로 약속된 시간 없이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하는 것처럼, 자유롭고 느긋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한국에 사는 나는 이 책을 통해 먼 타국의,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2. ‘말하기’ 말고, ‘보여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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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만 한다, -하라, -하게 살라’ 등등 교조적인 말이 많았더라면 나는 이 책을 마냥 편하게 읽을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울 레이터의 말은 오히려 조심스럽게 제안하는 것에 가까웠다. 가볍게 던지듯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매너를 잃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사울 레이터가 보여준 일관된 가치관과 묵묵함에 감탄했다.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행동이 쉬워도 일관되게 쭉 이어나가는 것은 어렵다. 사울 레이터는 언행일치를 보여줬다. 철학 대신 사진기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그는 사진으로 세상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보여주었다.

사울 레이터가 직접 사진으로써 보여주고, 소탈하게 전하는 생각들은 편안했다. 불쾌함이나 반발심을 만들지 않고도 나에게도 새롭게 생각해 볼 것들을 선물해주는 듯했다. 나는 그 생각 할 거리를 선물처럼 기쁘게 받을 수 있었고, 편안한 마음으로 찬찬히 생각할 수 있었다.



3. 아름다운 장면 찾아내기

사울 레이터는 영화 <캐롤>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확실히 영화 <캐롤> 속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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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나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영화 속의 모든 장면을 명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 하나의 장면으로 그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이미지를 구성해서 기억에 남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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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영화 <캐롤>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무엇이냐, 이렇게 질문받는다면 나는 테레즈가 차에 탔을 때라고 답한다. 물방울이 맺힌 차창 뒤로 아른아른 보이는 테레즈의 모습 말이다. 사실 영화 <캐롤>의 모든 장면이 아름다웠다고 기억을 남겨두었지만, 그래도 영화 이름을 듣고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아무래도 인상 깊은 장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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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가 차에 탄 그 장면이 틈새, 창, 거울 등을 주변 사물을 활용하는 사울 레이터의 일상적인 사진들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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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고 느끼며 살고 싶다’ 그리고 ‘멋진 문장들을 만나고 수집하고 싶다’는 나의 평소의 욕망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충족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름답고 멋진 것들을 굳이 먼 곳에서 찾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기대감도 생긴다. 내 주변에서 아름답고 멋진 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 예민한 안목을 기르고 싶어졌다. 새롭게 바라보기 위해 유심히 관찰하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4. 나는 나만의 길을 간다

자신의 생각을 어떤 말로 표현했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생각으로 한 말에는 마음이 가지 않는다. 기억에 잘 남지도 마음속을 쿵 울리지도 않는다. 거창한 의도에서 한 말보다는, 가볍고 수수한 말들에 나는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자신의 생활 속에서 느낀 점을 그대로 담담한 일상의 말들로 옮겼을 때 더 강렬한 마음속의 울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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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울 레이터의 말에 감탄했다. 모든 것들이 변하고 나 자신조차도 변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게 변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변함없는 누군가를 만나면 존경심까지도 생긴다. 나에게는 사울 레이터가 그 '변함없는 누군가'였다. 앞서 말한 언행일치! 그의 묵묵한 일관성과 뚝심에 감탄했다. (예술가라면 대부분 그런 경향이 있는 걸까?)

*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겨두고 싶어진 문장들이 있다. 그것들을 남기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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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에 아주 깊이 공감했다. 탄식했고, 그 페이지에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온 문장이니까, 처음부터 한껏 감동받고 책 읽기를 시작한 셈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행복을 말하지만, 도대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직까지도 알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아프면 아프지 않은 상태가 행복한 거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나에게 철학은 없다. 다만 카메라가 있을 뿐.”
“나는 염두에 둔 목적 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본다.”
“인생 대부분을 드러나지 않은 채 지냈기에 아주 만족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커다란 특권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사실 목적을 두고 읽지 않겠다고, 어떤 생각을 미리 정해두고 읽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울 레이터에 대한 인식을 쌓아가는 데에 있어서는 그 목표를 지키지 못했다. 사실 은연중에 사울 레이터라는 사람의 말과 작품에 대해 짧게 알아가며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일 것 같다’고 마음속에 미리 이미지를 만들어둔 것도 같다. 그 어렴풋이 쌓아둔 이미지가 잘 들어맞아서 이 책을 더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읽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고 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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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주어진 환경에서도 대상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양하게 또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은 선물 같은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을 바라볼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사울 레이터는 답을 그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나의 삶에 있어서 사울 레이터처럼 일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특별하고 신나는 일상을 꾸릴 수 있겠다. 그런 매일이 습관처럼 반복된다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굳이 찾지 않고서도 이미 행복 속에서 살고 있겠지- 싶다.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지겹다는 생각을 굳이 할 필요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새삼 느낄 필요도 없이 말이다.


[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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