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연극 <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공연]

글 입력 2018.09.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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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

제2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한 장강명의 동명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2015)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오직 인간만이 시간을 과거에서 현재라는 한쪽 방향으로, 단 한 번씩 만 경험할 수 있다는 전제를 뒤집으며 시작한다.

연극은 주인공 남자가 쓴 소설 <우주 알 이야기>처럼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사건 순서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관객은 인과관계를 알 수 없게 뒤섞인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모두 한 사람, ‘남자’의 인생이라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A와 B, 두 가지 노선이 있어.
A는 슬프지만 아름답게 오늘 헤어지는 거야.
B는 내일이나 모레쯤 헤어지는 거야.
대신 아주 비참하게 헤어지게 돼. 어떻게 할래?”

남자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나열하고 때로는 상상한 것을 더하고, 또 여러 관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남자는 현재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다시 해석하고 새롭게 만들면서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나가려 한다. 시간의 해체라는 외형적인 형식과 신체행동 연극이라는 극단 동의 작업방식이 만나 관객은 과거로부터 쌓여져 온 결과론적인 현재가 아닌, 언제인지 알 수 없는 현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인물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이야기 속에서 ‘기억’, ‘시간’, ‘속죄’, ‘고통’의 문제를 다루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을 뒤집는다. 연극 속 남자와 여자는 고등학교 시절 연인사이였다. 동급생 살인죄로 교도소에 들어간 남자는, ‘우주 알 이야기’라는 소설을 써 여자가 일하는 출판사에 보낸다. 여자는 소설 내용이 자신들의 이야기인 것을 알고 남자를 찾아 재회하고, 남자는 시간을 이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일방향의 시간 개념을 뒤집어 기억이 주는 고통의 무게를 새로이 바라보게 된 것이다.
 

*

프리뷰, 단상들



1. “시간을 과거로 돌릴 수만 있다면…….”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너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냐고. 가만히 생각해봤다. 혼자서 머릿속으로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없어요.’라고, 다른 때보다 비교적 더 신속하게 대답했다. 그분은 신기해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때로 돌아가도 어차피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답하며, 결과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 같아서 굳이 돌아갈 필요를 못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되물었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으세요? 그분은 대답했다. 많지. 아주 많지.



2. 나에게 ‘과거로 돌아간다’라는 문장은

나에게 ‘과거로 돌아간다’라는 문장은 과거와 미래를 양 끝으로 하는 직선 위에서 현재라는 점을. 보다 앞으로 옮긴다는 단순화된 움직임으로 느껴진다. 과거와 미래에는 선후관계가 있다. 과거에서 시작해서 미래로 흐른다. 학창시절, 종종 ‘나의 인생 그래프를 그려보세요!’ 활동을 하곤 했다.

반 친구들 모두 하나같이 일단 종이 위에 가로로 직선부터 쭉 긋고 봤다. 곧은 선이 아니라 꺾은선 그래프여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성 정도는 가진 타임라인을 그렸다. 가장 최초의 과거는 내가 태어난 순간 시작된 것이고, 나에게 의미 있는 순간은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순간이다. 내가 살아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한 미래는 끝이 없다.



3.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인간이라는 건 결국 패턴이야. 남자가 설명했다. 앞에는 새장을, 뒤에는 새를 그린 부채를 상상해 봐. 부채를 빠르게 돌리면 새장 속에 갇힌 새가 생겨. 신경회로 위에 의식이 떠오르는 과정도 그와 비슷해. 전기 신호들이 회로 속을 빠르게 다니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불쑥, 유령처럼. 밤거리의 네온사인들이 제각각 깜빡이다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동시에 켜지고는, 그다음부터 함께 점멸하는 광경을 상상해봐.


우주 알 이야기를 해줘. 여자는 흉터에 대해 듣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요청했다. 우주 알은 어디에서 왔어? 어떻게 생겨난 거야?
우주 알은 어디에서 오지 않았어. 그건 그냥 항상 있었어.
처음부터? 여자가 물었다. 우주가 시작할 때부터?
처음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해. 남자가 말했다. 처음이라든가 시작이라든가 하는 말은 굉장히 인간적인 거야.




4. 의문점

과연 종이 위에 선으로, 과거로부터 미래로 향하는 일방향의 선으로, 시간을 (혹은 나의 인생과 기억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과연 일방향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세계에 대한 기억을 구성하는 걸까?



5. 작가 장강명


장강명

2011년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4년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2015년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았다. 이외에도 중편소설 『아스타틴』, 장편소설 『호모도미난스』, 『한국이 싫어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 연작소설 『뤼미에르 피플』등이 있다. 2016년에는 『댓글부대』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 <표백>을 읽고 난 후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다. 기자였기 때문일까, 내가 ‘소설’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작품들과 장강명 작가의 작품을 비교했을 때 약간은 다르게 느껴졌다. 깔끔하고 건조한 문체로 선명한 메시지를 주는 글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어떠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며 독자로 하여금 삶을 환기하게 만든다.

거북스럽다거나 지루하지 않다.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아주 잔잔한 동시에 강렬하다. 책을 읽다 보면 왠지 냉랭하게까지 느껴지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한동안 마음이 약간 가라앉는다. 동시에 속에서는 여러 감정이 교차한다. 그것들이 아무리 요동치더라도, 결국 끝끝내 마음속에 남는 것은 따듯함과 희망이었다. 끝까지 남은 이 뭉클한 감동은 오래도록 단단하게 지속된다.

<표백>, <한국이 싫어서>, <팔과 다리의 가격>, <댓글 부대>, 재미있게 봤던 장강명 작가의 작품들은 특징이 있었다. 작품 제목에 이미 내용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었다. 이러한 규칙성이 작품 대부분에 들어맞는다면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그믐’과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 도대체 어떤 연관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믐은 음력으로 그 달의 마지막 날을 의미한다는데, 그게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몇 작품을 연달아 본 후로는 묻고 따지지 않고, 믿고 보게 된 장강명 작가인지라 이번 연극에 대해 편안함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6. 극단 동과 신체행동연기


극단 동은 신체행동을 중심으로 한 연극을 만들어왔다. 연출과 배우의 역할 구분이나 경계를 없애고 함께 제안하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작업을 통해 공동의 언어를 개발하고 있다. 관객을 새롭게 만나기를 원하며 늘 극장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자본주의 민낯시리즈 3부작 <쉬또젤라찌> <게공선> <베서니, 집> 등을 공연했다.


연출과 배우 사이의 역할 경계 없이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것에 눈이 번쩍 뜨였다. 주어진 역할에 경계선이 사라질수록 표현의 폭이 더 깊어지고 다양해질 것이라 예상해 본다. 아주 개성 있는 무대를 기대해 봐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연극과 그 표현 방법만 두고 봤을 때, 가장 큰 궁금증을 가지게 한 것은 '신체 행동 연기'이다. 과거로 시간을 돌리는 극중 상황을 현장 공연에서 표현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때 신체 행동 연기로써 표현상의 제약을 독특하게 해결했을 거라 짐작을 해보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갔을지 지금으로써는 상상이 잘 되질 않는다. 직접 현장에서 확인해 볼 날만을 기분 좋게 기다릴 뿐이다.





연극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남산예술센터 2018 시즌 프로그램 -


시놉시스

남자와 여자는 고등학교 때 연인사이였다.
남자는 동급생 살인죄로 교도소에 들어간다.
남자는 <우주 알 이야기>라는 소설을 써서 여자가 일하는 출판사에 보낸다.
여자는 소설 내용이 자신들의 이야기인 것을 알고 남자를 찾아 15년만에 재회한다.
남자는 자신의 살인이 세상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었는지 깨달아 간다.
남자는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일자 : 2018.09.04(화) ~ 09.16(일)
시간 : 평일 7시 반, 주말 3시, 월 공연없음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가격 : 전석 30,000원

주최 : 서울특별시
주관 : (재)서울문화재단, 극단 동
제작 : 남산예술센터, 극단 동

관람연령 :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 1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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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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