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전자상가에서 우주가 펼쳐진다. [전시]

트렌디한 깊이가 느껴지는 갤럭시 오디세이 展
글 입력 2018.08.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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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엄마랑 핸드폰 바꾸러 간 것이 내 용산 전자상가 방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갔으니 평일 오후 정도 되었을텐데, 많지는 않았어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분명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10년 후. 어딜 가나 사람이 붐벼야 할 일요일의 오후에 다시 만난 전자상가는 이미 예전의 활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사실 나 역시 전자제품이 아닌 전시 때문에 온 것이니 나진상가의 한물 간 영광에 눈물을 머금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은하철도 999>의) 배경은 은하계의 각 행성이 은하철도라 불리는 달리는 열차로 연결된 (서기 2021년의) 미래다.

부유한 사람들은 '기계의 몸체'에 정신을 옮겨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었으나, 기계의 몸을 얻을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기계화 인간에게 박해받고 있었다.

주인공 철이는 무료로 기계의 몸을 준다는 안드로메다의 별을 목표로 신비의 여인 메텔과 함께 은하초특급 999에 탑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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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하철도 999>는 피지배계층이 지배계층에게 먹히고, 인간이 기계에게 먹히는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삼는다. 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피어나는 철이와 메텔의 우정과 성장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희망을 그리는 이야기라고 나는 느꼈다. 이미지로 표현해본다면 무너져 내린 공사판 한가운데에서 피어난 민들레 정도가 될 것 같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보건대, < 갤럭시 오디세이 展>의 전시장으로서 용산 나진상가는 참으로 적격인 듯 하다. 한때 번화했으나 이제는 무관심 속에 스러져가는 피폐한 나진상가. 그 한복판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 갤럭시 오디세이 展 >의 포스터는 민들레 같았다.


   
미완의 999



< 은하철도 999 > 제목의 999에는 어른을 의미하는 1000이 되기 전을 뜻하는 것으로, 미완성의 청춘의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왜 하필이면 은하철도 ‘999’인가- 라는 의문을 딱히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일단 이 설명을 읽고 나니 저 999라는 숫자가 꽤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통상적으로 9는 ‘불안한’ 숫자라고 여겨진다. 안정적이고 완전한 숫자인 10으로 넘어가기 바로 전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9가 세 개나 붙어 있는 은하철도 999는 불완전함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으며 기계인간, 즉 10으로 가기 위해 은하철도에 몸을 담은 철이 역시 9의 상태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결국 9가 10이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9는 계속해서 9로 남기를 택한다.
 

수많은 별들을 지나며 철이는 점점 어른이 되어가고, 결국 기계인간이 살고 있는 기계제국에 도착한다. 

그는 감정이 없는 기계인간으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999호를 타고 그의 고향, 지구로 떠난다. 

메텔은 마지막에 철이와 헤어지며 말한다. "안녕, 나는 너의 소년 시절의 꿈에 있는 청춘의 환영일 뿐이야..." 이렇게 철이는 그의 소년시절을 마감한다.
   

완전함을 포기함으로써 철이는 성장한다. 무결점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님을, 때로는 결점이 있기에 더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으며 철이는 다시 한 번 9의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 만화가 단순 어린이 만화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그 어떤 어른도 어려워하는 과제를 해내는 어린 철이를 통해 우리 어른들은 한 수 배운다. 더 멋있어지고 더 완벽해지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욕구가 더 멋있지 않아도, 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바뀔 때 인간은 한 단계 성장하는 것 같다.
 
 
   
갤럭시 오디세이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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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서는 마쓰모토 레이지가 창조해낸 은하철도 999의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은하철도처럼 일직선으로 길게 뻗은 이 전시공간에는 철이와 메텔의 의상을 입고 코스프레 해보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 우주에 들어온 것 마냥 사방이 별천지인 부스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한 부스였다. 가운데에 있는 저 공을 이리저리 굴리면 우주가 마구 돌아간다!) VR체험 뿐만 아니라 철이가 좋아하는 라면도 먹어볼 수 있다. 관람객의 참여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완전해지는 인터랙티브 전시인 동시에 인생샷을 건질 만한 부스들도 많기에 심심할 새 없이 돌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 갤럭시 오디세이 展 >에서는 < 은하철도 999>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다른 아티스트들의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 대중적인 사랑까지 받는 아티스트 하림의 곡을 전시장 들어서자마자 들을 수 있으며 그룹 신남전기, 윤제호 작가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미디어아트 역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마주 섹션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부스는 비주얼 아티스트 유하다 작가의 [꽃들의 별]이다. 은하철도가 경유한 별 중 하나인 '꽃들의 별'을 컨셉으로 삼아 만든 이 부스는 화려함 밑에 움츠린 허무함을 건드리고 있다. (물론 최고의 포토존이기도 하다.) 사방이 온통 아름다운 꽃으로 둘러싸인 이 별은, 지나가는 여행자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워보이지만 정작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허무하게만 보일 뿐이다. 꽃들이 그렇게 예뻐봤자, 가난한 자신들은 끊임없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화에 이러한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것이 매력있다. 알면 알수록 더 보고싶게 만드는 만화, < 은하철도 999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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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 은하철도 999 >를 잘 알지 못하더라도 분명 즐길 수 있는 전시이다. 90년대생인 나 역시 < 은하철도 999 >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철이와 메텔,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로 시작되는 주제가 정도밖에 없었지만 그 무지는 전시를 즐기는 데 있어 전혀 불편함이 되지 않았다. 내가 관람했을 때 역시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관람객들이 가장 많았다. 사진 찍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마저도 카메라를 들게 할 만한 공간들이 많아서 그런지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들이 유독 많이 보였다. 예쁜 공간 구성으로 큰 인기몰이를 한 < 앨리스 인 원더랜드 展 >의 빈티지한 버전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이 전시에서 가장 좋다고 느꼈던 부분은, 세대의 어우러짐이었다. 어린 아들을 동반한 30대 남성 관람객이 있었다. 아들의 손을 잡고 아들의 것과 다를 바 없는 해맑은 미소를 띤 채 전시를 돌아보는 그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유모차를 끌고 기념품샵을 구경하고 있는 30대 여성 관람객의 모습도 보였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이 전시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추억하는 압도적인 세계를 창조해낸 마쓰모토 레이지. 그의 결과물이 부러운 한편, 나 역시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쟁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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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오디세이展
- 마츠모토 레이지의 오래된 미래 -


일자 : 2018.06.15(금) ~ 10.30(화)

휴관일
9/24 (월), 9/25 (화)

시간
월, 화, 수, 목, 일요일 12:00pm~8:00pm
(7:30pm 까지 입장가능)
금, 토요일 12:00pm~9:00pm
(8:30pm 까지 입장가능)

장소
용산 나진상가 12-13동

티켓가격
성인 (만19세~만64세) : 13,000원
청소년 (만13세~만18세) : 11,000원
어린이 및 미취학 아동 (만12세 이하) : 9,000원
시니어 (만 65세 이상) : 9,000원

주최
(유)마츠모토레이지프로젝트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문의
(유)마츠모토레이지프로젝트
070-8837-0999






에디터 박민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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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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