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마추어 연극인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8.2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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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라틴어로 'Amor'는 사랑을, 'Amator'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마추어(Amateur)는 ‘Amator'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해주는 줄만 알았던 아마추어라는 단어에 이렇게 예쁜 뜻이 담겨 있었다는 건 며칠 전에 알게 되었다. 알고 나서는 은근히 기뻤다. 그렇다면 나도 아마추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는 바로 연극이다. 연극 아마추어가 된 지는 작년 4월, 대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연극 동아리에 가입한 후부터다. 그러니까 연극을 좋아한 지 아직 1년 반도 안 됐지만 아마추어의 어원에 용기를 얻어서, 또 나의 세 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으므로 연극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어디까지나 대학교 동아리 안에서 얻은 경험이고 초짜 아마추어답게 깊이가 얕겠지만 이 세상에 전문가의 생각만 필요한 건 아니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얘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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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는 연극보다 관현악이나 다른 것에 관심이 좀 더 많았다. 제대로 된 연극을 본 적도 없었고 같은 반이었던 연기자 지망생 친구의 눈물연기에 그 친구의 팬이 된 것이 전부다. 사실 연출가에 대한 동경이 가득하긴 했다. 봉테일이라고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촬영현장 영상을 보며 연출가가 수많은 스태프를 진두지휘하면서도 아주 작은 디테일, 카메라 각도 0.xx도까지 신경 쓰는 멋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연극보다 관심 있었던 것들 리스트에 영화도 적혀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동아리방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는 공부랑 최대한 먼 것 중에 안 해본 것을 해보자! 라는 패기 하나였다. 신입부원 면접을 보며 연출을 하고 싶다고 한 걸 생각하면 당시 내가 얼마나 패기로 가득 찼었는지 기억난다.

첫 연극은 배우로, 두 번째 연극은 음향으로 참여했고 다음 주에 공연예정인 세 번째 연극에선 기획 보조로 일하는 중이다. 세 번 모두 맡은 파트가 다른 만큼 느낀 점도 각기 다른데 느낀 점을 모두 쓰는 건 불가능하므로 종합적으로 적어보겠다.

처음으로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배우가 그저 자신감 있게, 적당히 감정을 넣어서 암기한 대사를 뱉어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외울 대사는 너무 많았고 상대방이 대사를 치고 있으면 나는 다음 대사를 생각하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렇게 연습을 계속 하다가 아직까지 기억나는, 당시에는 소위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었던 피드백을 받게 되었다. 왜 이 대사를 하는지 생각을 하면서 대사를 치라는 피드백이었다. 문장으로 적어보니 꽤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이 인물이 이 대사를 할 때 화가 났겠지, 그래서 화난 표정으로 연기 해야겠지 정도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사를 뱉고 다음 대사까지의 사고과정, 상대방의 대사나 상황에서 촉발되는 사고과정에 그 인물의 인생을 함축하여 연기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대화를 하며 지금껏 축적된 자신의 삶이 반영된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하게 보였던 앞의 문장과 같은 의미인데 왜 갑자기 이렇게 어려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본은 자주, 많이 불친절하다. 고작 인물의 나이나 성별, 간단한 가족 관계 등을 던져 주며 사실 이조차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배우들은 대사나 행동지문을 읽으며 그 인물이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추측해본다. 즉 대사는 한 줄이어도 행간의 행동지문은 몇 줄이 될지 모르며 그것이 길수록 좋은 연기가 나온다. 연습을 보러 가면 선배들은 배우들에게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대사를 칠 때 그 인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즐겁게 연습을 보다가도 이런 질문이 들리면 정신이 바짝 차려진다. 이러한 생각이 들어간 연기와 들어가지 않은 연기가 실제로 다르게 느껴지는데 이 과정이 눈으로 보이는 것이 참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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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은 모든 대사의 모든 사고과정을 다 꿰뚫고 있어야 한다. 대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필요하며 주관이 뚜렷해야 한다. 인물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본인만의 주관이 없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배우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대 배치를 구성하고 조명과 음향까지 정해야 하니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디테일을 신경 쓸 수 있는 연출가가 되려면 그 전에 이런 ‘기본적인’ 능력은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력과 중독


연극을 하나 올리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 시간, 돈이 필요하다. 동아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동아리에선 정기공연마다 연출과 배우, 조명과 음향, 기획팀, 무대팀, 포스터&팜플렛로 파트가 나뉘어지며 20~30명 정도의 공연팀이 꾸려진다. 각자 맡은 일이 적지 않고 각 파트 간의 협업이 중요하다. 쉽지 않은 일인 만큼 제대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즐겁게 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동아리엔 고학번이 유난히 많다. 활발히 활동하는 선배들과 졸업한 후에도 조언해주러 자주 들리는 선배들이 꽤 많다. 나는 이들을 보며 나도 오랫동안 이 동아리에 남아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함에도 연극을 계속 하는 건 분명 연극이 치명적인 중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재밌다는 생각은 모든 부원들이 공감할 것이다. 물론 아마추어이기에 돈은 둘째 치고 사랑만 쏟으면 돼서 재밌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필로우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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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에 연극 동아리 능라촌이 99회 정기공연을 올린다. 이번 연극은 마틴 맥도나의 ‘필로우맨’을 각색한 극으로 등장인물과 기본적인 내용은 동일하되 번역했을 때 이상한 문장들만 한국식으로 고쳤다고 한다. 주로 아이들이 등장하는 잔혹동화를 쓰는 작가 카투리안과 그를 아동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고 추궁하는 두 명의 형사, 투폴스키와 에리얼.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아 남들과는 약간 다른 카투리안의 형, 마이클 사이에서 벌어지는 진실공방을 담은 연극이다. 극 안에서 카투리안은 자신이 쓴 동화 몇 개를 들려준다. 이야기들은 잔인하지만 서정적이며 묘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일 예정이다.


[강혜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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