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도서]

글 입력 2018.08.1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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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l Leiter

흑백 사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절제된 색채 속에서 홀로 강렬한 빨간 우산.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의 표지인 그의 사진은 참 단순하지만 계속 보고 싶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었다. 사진을 직접 찍기 시작한 이후로 이런 사진을 마주할 때면 가장 먼저 "아, 사진 참 잘 찍는다.", "너무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울 레이터. 비록, 처음엔 모음을 잘못 보고 Seoul later인 줄 알았으나 이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사진 한 장에 이미 내 손은 사울 레이터를 검색해보고 있었다.

컬러 사진의 선구자, 영화 <캐롤>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아티스트. 뉴욕이 낳은 전설. 얼핏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식어들이 그의 이름과 함께 하였다. 사울 레이터. 그는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 예술의 꿈을 품고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유대교 율법 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러나, 레이터는 예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23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이후, 레이터는 <보그>, <라이프> 등의 잡지에 꾸준히 그의 작품을 실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까지 음지 속에 존재했던 그의 작품들은 우연히 독일의 유명 출판사 '슈타이틀'의 대표인 게르하르트 슈타이틀의 눈에 띄게 되었다. 레이터의 작품들에 큰 영감을 받은 게르하르트는 그의 작품들을 엮어 'Early Color'라는 제목으로 사진집을 출간하였고 이를 통해 레이터의 작품들은 양지로 나와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꾸미지 않은 그대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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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살아있는 중에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고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힘든 일을 해낸 사울 레이터는 "인생 대부분을 드러나지 않은 채 지냈기에 아주 만족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은 커다란 특권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자신의 성공과 대중의 인정에 큰 관심이 없었는지 예상할 수 있다. 성공과 남들의 시선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일까.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참으로 꾸밈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꾸밈없는 사진을 찍는 것. 상당히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직접 사진을 찍으며 이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인간의 "욕심" 때문인 듯하다.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내가 좋아하는 일상들을 담아낼 때와 달리 큰돈을 들여 카메라를 사고 취미가 맞는 친구들과 출사를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잘'의 기준은 매우 상대적이지만 나의 경우, 누가 보아도 감탄이 나올만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화려한 사진이 그 기준이었다. 그래서 좋은 장비에 눈이 돌아가기도 하고 유럽 여행을 가서 멋들어진 사진을 찍은 친구를 보며 '나도 사진 찍으러 여행을 가야 하나' 욕심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커질수록 좋아서 시작한 일은 오히려 부담이 되었고 사진 또한 내가 좋아하는 '나의 표현'보단 화려하고 꾸며진 '남을 위한 것'이 되어 버렸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보니 지난날의 내가 다시 한 번 부끄러워졌다. 그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 특권이었다고 한 것은 빈말이 아니었음을 그의 사진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레이터의 사진들은 한결같이 욕심 없이, 담백하게, 렌즈에 비추어지는 것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나 여행을 떠나 이국적이거나 독특한 피사체를 담아내길 욕망하기 보다 레이터는 평범한 일상 속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고자 했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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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평범한 일상은 너무 익숙하고 흔한 것이기에 특별함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울 레이터는 일상의 소중함을 알고 그를 발견해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익숙한 것을 진부하지 않게 표현해내는 능력을 지닌 사람 같다. 아직 그의 사진집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받기도 전이고 이것은 리뷰가 아닌 프리뷰지만 위의 사진을 보고 작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이미 그의 팬이 되어 객관성을 상실한 것도 같다.) 사진 속 피사체는 꼭 뉴욕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 한국 카페에 앉아 길거리를 보다가도 흔히 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레이터의 사진 속 피사체는 김 서린 유리창 덕에 익숙한 느낌도, 진부한 느낌도 주지 않는다.

염두에 둔 목적 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울 레이터. 그렇기에 그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고 순간순간의 소중한 일상들을 남들과는 다른 그만의 시각으로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절제되었지만 강조될 것은 강조된 강렬한 색채, 그러나 어떠한 변형도 없이 그대로 담아낸 일상의 순간,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이 어우러졌기에 음지에서 지내고 싶어 했던 사울 레이터의 마음이 무색하게 그의 작품들은 세상에 공개될 수밖에 없던 것 아닐까.

"세상에 가르침을 주기보다 세상을 그저 바라보고 싶었다"라는 마음으로 랍비가 아닌 사진을 선택한 사울 레이터이지만 오늘의 나는 이미 그의 사진들을 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얻었기에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을 보며 사진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깨달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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