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본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다 [도서]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All about Saul Leiter)
글 입력 2018.08.0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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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는 스튜디오보다 거리, 유명인보다 행인, 연출된 장면보다 평범한 일상, 빛보다 비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위의 사진은 그런 그를 잘 보여준다. 사실 나는 이 사진을 사울 레이터의 손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기 전에 먼저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오로지 단 한 장의 사진만을 보고 무언가 느꼈다.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 만나는 수많은 이미지 중 이만큼 나의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하는 건 없었다. 나는 사진에 사로잡혀있었다. 오래전의 일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랫동안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사진 밑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었고, 나는 누가 이 사진을 찍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홀렸다고 해야 맞을 만큼 사진에 빠져들어 오래 바라보기만 했었다.

누구의 작품인 줄도 모른 채 사진만 바라보며 풍경 너머를 상상하고, 실제로 내가 사진 속 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다시 이 사진을 접했다. 나는 이 책을 놓칠 수 없었다. 내가 사로잡혔던 사진을 찍은 주인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 그의 영향이 있는 줄은 전혀 모른 채로 내 마음속에 사진 자체로 파고든 것들을 이제 사울 레이터라는 열쇠로 풀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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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레이터 (Saul Leiter), 그는 누구인가?


"나에게 철학은 없다.
다만 카메라가 있을 뿐"


1923년, 사울 레이터가 태어났다. 그는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대교 율법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10대 후반 예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의 예술에 대한 욕망은 자라는 동안 더 커졌다. 결국 그는 율법학교를 중퇴한 뒤 화가가 되기 위해 23살에 뉴욕을 떠났다. 그는 결정적으로 뉴욕에서 만난 친구인 화가 푸세트 다트의 영향으로 사진에 입문하여 <하퍼스 바자>, <에스콰이어>, <엘르>, 영국 <보그> 등에서 활동하며 패션 포토그래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사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는 사진으로 금세 사라지고 마는 찰나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나는 염두에 둔 목적 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본다" 그가 했던 이 말처럼 그는 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떤 단정과 평가를 내리지 않은 상태로, 사물 자체에서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보고자 했다. 그래서 사진에 거울과 유리창을 자주 담았다. 그는 세상이 가진 아름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어떠한 왜곡 없이 사진에 고스란히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담아냈다. 그는 이렇듯 세상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 되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고스란히 지켜나간 채 작업을 계속 해나갔다. 전시기획자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눈에 띄어 1953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몇 점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으나, 그 뒤 2000년대 후반까지 60년간 그의 작품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는 것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뒤늦게 그의 작품이 유명해졌지만, 그는 자신의 인기에 도취되거나 흥분하지 않았다. "인생 대부분을 드러나지 않은 채 지냈기에 아주 만족했다. 드러나지 않은 것은 커다란 특권이다."라고 말하며, 그는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자신이 작품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지길 원하고, 그 작품을 창조한 자신도 세상일 알려지길 원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유명세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그의 모습에서 사진과 예술에 대한 영감을 넘어 인생의 영감을 받았다. 아직 나는 그의 작품을 다 보지 못했고, 그가 했던 말을 전부 듣지 못했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몇 개의 사진과 문장만으로도 나는 물밀듯이 흘러들어오는 깨달음을 얻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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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 존재하는 곳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1950년대에는 컬러보다는 흑백 사진이 주를 이루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울 레이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하는 흑백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 그러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기에 흑백 사진보다는 컬러 사진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걸 담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사진에는 세상이 가진 색이 고스란히 드러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절제미와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가 담아내고자 했던 순간에 가장 충실하게 주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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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진에는 가려진, 또 비어있는 공간이 많다.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에 나오는 한 문장이 떠오른다.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는 모든 게 작품이 되고 정물화가 되고 매 순간이 소중한 시간이 된다. 여백이 없으면 아름다움도 없다." 그는 있는 그대로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 여백이 필요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사진에 담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미 흘러가버린, 유일한 순간에 주목하게 하기 위해 그는 여백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가 이미 여백과 절제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절제미를 중요시하는 일본에서 2017년에 열린 분카무라 전시회에서 사진전으로는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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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그에게 받은 영감으로 탄생한 영화, '캐롤'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 영화 '캐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뛰어난 영상미로 사람들을 사로잡았었다. 나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영상이 보여주는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에 취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영화 '캐롤'을 통해 감독 토드 헤인즈는 1950년대 뉴욕 중산층의 삶과 라이프 스타일, 배경을 완벽히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사울 레이터,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울 레이터의 사진과 캐롤의 장면은 많은 부분 닮아있다. 사울 레이터, 그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다. 책을 기다리는 동안 '캐롤'을 다시 봐야겠다. 캐롤 속 장면과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연결 지어 바라보면 캐롤도, 사울 레이터의 사진도 더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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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넘어 삶에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 '사울 레이터'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는 정말 제목 그대로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의 사진과 더불어 회화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그가 남긴 말까지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과 그가 남긴 말은 예술을 넘어 살아가는 것 자체에 영감을 준다. "세상에 가르침을 주기보다 세상을 그저 바라보고 싶었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가 주목한 순간들은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사울 레이터는 말로만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지 않았다. 그는 실제 자신의 삶을 자신의 신념처럼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며 살아갔다. 여행을 떠나 이국적인 풍경을 담아야만 좋은 사진이라 여기지 않았던 그는 평범한 일상에 가장 큰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뉴욕에 머무르며 뉴욕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어디론가 떠나야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가 보여준 삶은 충분히 내게 많은 영감을 준다. 그의 책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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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작품
Fashion-Street-Color-Drawing-Nude

해설
화가의 면모 · 마지트 어브
뉴욕 나비파 · 폴린 버메어
뒤로 몰래 다가와 왼쪽 귀를 간질이는 사진 · 시바타 모토유키
아름답던 시절의 아름다운 순간의 기록 · 권정민

사울 레이터 연보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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