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 나그네의 옷을 벗긴 햇살처럼 [전시]

글 입력 2018.08.04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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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예술을 대할 때 한없이 비관적이다. 작품 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 노력하고 사회 현상과 결부하여 정치적 메시지를 부여한다. 예술을 대하는 비판의식은 견지해야 할 필요가 있으나 그것이 과도해지면 정서적인 감동에 둔해지게 된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고 나 또한 그랬다.

샤갈의 작품은 그러한 날카로움을 무력화시킨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은 온전히 현재의 장면에 집중하고, 샤갈의 세월에 몸을 맡겨 함께 흐른다. 사람들은 작품 그 너머 작가 개인과 마주하고, 작가는 그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삶의 대화를 건넨다. 샤갈의 삶을 내밀하게 담아낸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은 또 다른 삶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샤갈과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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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샤갈을 소개할 때 주로 붙여지는 수식어이다. 따스한 색감과 동화적인 묘사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온기는 미술을 자주 접하지 않는 대중에게도 부담 없이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긍정성 때문인지 마냥 희극이었을 것 같은 그의 삶이, 사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비극이 없다면 서사는 완성되지 않는다. 척박한 삶과 그 속에서 피어난 사랑은 그의 서사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는 샤갈이라는 예술가 개인을 더욱 세밀하게 알아볼 소중한 기회였다.

전시는 일곱 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샤갈이 그린 초상화와 자화상을 모아놓은 초상화 섹션, 동명의 자서전에 수록된 작품을 분류한 ‘나의 인생’ 섹션, 사랑과 연인에 대해 묘사한 ‘연인들’ 섹션, 성서 속 이야기들을 그린 ‘성서’ 섹션, 동명의 도서에 수록된 삽화를 분류한 ‘죽은 혼’과 ‘라퐁텐의 우화’ 섹션, 그리고 샤갈의 애인이자 삶의 동반자 벨라의 책에 수록된 작품을 모은 ‘벨라의 책’ 섹션 등으로 구성된다. 특이한 점은, 전시관들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지 않고 일렬로 죽 배치되어 있어 섹션이 끝날 때마다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섹션을 맞이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섹션이 진행될수록 그의 삶에 깊이 진입하는 듯했다.



그의 색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샤갈의 그림에는 날카롭게 작품을 관찰하러 들어선 관객의 팔짱을 스르르 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따스하게 감도는 색은 폭염에 지친 관객들마저도 기분 좋게 하는 햇살 같았다. 작가의 삶에 초점을 맞춘 전시이지만, 그 전에 샤갈은 우선 미술계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예술가다. 부드럽고도 강렬한 그의 묘사에서는 수많은 미술의 진보를 거쳐 표현주의의 역사를 기록한 대가의 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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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사랑하는 연인들과 꽃》


그의 그림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물에 녹아 번진 듯한 총천연색에 감탄하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 하면 한참 뒤에 아직 녹지 않은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꽃을 그린 그림의 잎사귀를 멍하니 바라보면, 그 뒤에 염소와 집과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사실 그의 꽃에 감탄한 이유는 꽃 때문이 아니라, 저 모든 것이 어우러졌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다. 앎의 과정은 주입되지 않고 관객 스스로가 천천히 주도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묘사하는 데 탁월했던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도 아름다운 감각을 발휘한다. 그가 그린 자화상과 초상화 속 인물은 얼굴만 둥둥 떠다니거나 구름같이 공중을 부유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곤 하는데, 자신의 상태 혹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함에도 정서적 감흥을 막힘없이 전달한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었으나 마구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서서히 관객과 눈을 맞췄다.



비극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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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비테프스크 위에서》


샤갈의 밝은색 뒤에는 비극적 삶의 어두움이 있었다. 세계대전이 한창인 가운데 그는 편히 한곳에 정착할 수 없었던 유대인이었다. 샤갈은 자신과 민족의 비극을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갈 곳 없는 유대인의 상황을 하늘을 떠다니는 늙은 남자의 형상으로 표현하거나, 불 질러진 마을에서 신의 사자가 인간을 구해내는 직접적인 서사를 그려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샤갈은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치고 희망을 부르짖었다.



색의 뿌리


샤갈은 자신의 작품이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줬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그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고 말한 바 있다. 샤갈은 자기 자신으로 오롯이 캔버스를 채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자신을 낳은 가족, 그리고 연인 벨라와 그의 딸 이다를 언제나 기억했다. 그의 색을 만든 뿌리를 그는 잊지 않았다. 자신의 색을 만든 뿌리로 그는 하나씩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성해나가기 시작한다.

샤갈의 자서전인 《나의 인생》에 수록된 자화상에는 그의 초상뿐 아니라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자식이 동시에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인 집을 자신의 모자 대신 그렸다. 그는 자신이 영향을 받은 뿌리를 자신과 별개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자화상에 그대로 그려 넣은 것이다. 또한, 그가 묘사한 풍경에는 여러 가지 사물이 크고 작게 떠다니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주변'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동등한 자격으로 자신의 캔버스를 이룬다고 생각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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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연인들(1954)》


샤갈의 꽃을 더욱 따뜻하게 물들인 뿌리는 단연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사랑'이었다. 특히, 연인 벨라와의 사랑은 그의 삶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요소였다. 전시의 첫 번째 섹션인 '초상화' 섹션의 처음을 장식하는 주제는 벨라와의 '첫 만남'이었고, 마지막 섹션은 벨라가 집필한 책에 수록된 삽화를 모아놓은 '벨라의 책' 섹션으로 벨라와의 애틋한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전시 전체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구성이다. 샤갈의 삶의 발자국을 천천히 따라 걷듯 구성된 전시는 벨라와의 사랑의 역사를 곳곳에 배치했고, 이는 곧 샤갈의 삶에서 사랑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샤갈의 사랑은 과연 행복하기만 했을까. 1937년에 발표한 《연인들》을 보면, 꽃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있고 그들에 의해 보호를 받듯 연인이 둘러싸여 있다. 그 밖에는 염소와 바이올린을 든 수탉이 차갑고 어두운 배경에 배치되어 있는데, 그것은 환상적 요소임과 동시에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이들은 금방이라도 액자 밖으로 떨어져 나갈 듯 위태로워 보인다. 꽃과 같이 아름다운 연인들을 묘사하면서도 유대인이라는 뿌리의 두려움은 지울 수 없었던 것일까. 그의 사랑 역시 그를 이루는 하나의 뿌리였고 그 뿌리들은 모두 그의 캔버스에 솔직하게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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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연인들(1937)》



Opinion


샤갈은 매우 현대적인 작가였다. 온갖 미술적 진보와 안티테제를 거친 끝에 표현주의의 한 역사를 일궈냈다. 또한 그의 작품은 현재의 감상에 집중하게 한다. 그의 부드러운 색은 현재 속에서 한순간에 관객을 뚫고 지나가는 섬광과도 같은 힘을 지닌다. 그런데,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동시에 오래된 향수가 떠오른다. 샤갈의 표현주의는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아우른다.

삶이 그러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옛것을 후회하지만, 결국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발걸음은 과거에 새겨져 있다. 샤갈은 진보를 거듭하면서도 자신의 뿌리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하는 원동력을 잊지 않았다. 시간을 아우르는 그의 작품이 갖는 힘은 삶과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겸허한 태도에서 나온다. 자신이 지나온 모든 것을 사랑하는 샤갈의 진심은 그가 일궈낸 탁월한 예술성 속에서 유연하게 관객에게 전해진다. 아름다운 삶의 자세가 담긴 샤갈의 예술은 과거와 현재를 아울렀듯, 앞으로도 삶과 사랑의 따스함을 갈구하는 이들을 따스하게 포용할 것이다. 그가 보여주었듯, 그의 사랑은 그렇게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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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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