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 우정과, 따스한 온기

글 입력 2018.07.1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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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알란은 100세 생일에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물론 그동안 살아온 100년에 비해선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생일을 앞두고 슬리퍼를 신은 채 양로원 창문을 넘어서 나간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시 시작한다.

알란은 누울 수 있는 침대, 술 한 잔, 식사 한 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중 알란에게 있어서 '친구'는 정말 소중한 존재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 빠질 수 없는 것 중에는 당연히 '폭탄'도 있지만, '친구'라는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그가 다시 성냥을 긋게 된 것도 너무나도 소중했던 친구 덕분이었으니까. 그에게는 생일날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 잔 마실 친구가 필요했고, 그걸 할 수 있게 도와준 친구가 있었다.


연극_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공연사진_함께 오페라를 부르는 유리(주민진)과 알란(서현철).jpg


그가 젊은 시절에 만난 친구 '유리'와 '아인슈타인'. 그들은 알란에게서 어떠한 이득을 취하려고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그저 순수하게 마음이 통하는 이야기를 함께하고, 추억을 나눠가진 진정한 친구 사이였다. 알란이 그들과 헤어진 뒤 고향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친구 '몰로토프' 역시 그랬다. 몰로토프는 긴 여정으로 늙고 지친 알란에게 따스한 행복을 전해주는 친구였다.

그리고 그가 양로원에서 나와 만나게 된 친구들 '율리우스', '베니', '구닐라', 그리고 코끼리 '소냐'까지. 알란은 그들과 함께, 아인슈타인과 아만다랑 '베르사마사마(함께)'를 외치던 발리로 떠난다.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떠난다. 그가 행복할 수 있는 소박한 조건인 누울 수 있는 침대, 술 한 잔, 식사 한 끼가 있는 곳으로 떠난다.

알란은 어렸을 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채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인간관계에 너무 빨리 지쳐버렸을 것이다. 세계가 전쟁 중일 때, 모두들 알란의 폭탄 제조 기술을 탐냈다. 극 중에서 알란은 이런 얘기도 한다. 다들 처음에는 협상이라고 하는데, 알고 보면 아니었다고.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알란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는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의 유일한 여행 동무라고는 성냥갑이 전부였으니까.


연극_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공연사진_창문을 넘으려는 100세 알란(오용)과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알란들(장이주, 이진희, 김도빈, 이형훈).jpg
 

<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은 여러가지 메세지를 담고 있다. '1살 생일 같은 100세 생일'에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해내는 알란의 모습에 누군가는 감동을 받을 것이다. 혹은, 그 어떤 가치관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살아온 알란의 순수한 여정이 수많은 갈등 속에서 살아온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이번 관극이 두 번째였는데, 알란이 수많은 인물들을 만나면서 생긴 인간관계와 그 속에서 생겨난 우정이 감동을 전해주었다.

캐릭터 저글링을 활용한 것은, 한정된 배우들로 수많은 인물들을 표현해야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인물이 그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캐릭터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이고, 비중이 적건 많건 알란의 여정 속에서 어쨌든 '한 잔 술'을 나눈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알란은 100년간의 모든 추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너무 길어서 잊어버릴 법도 한데 말이다. 그리고 알란의 친구들 역시 세월이 흘러도 알란을 잊지 않았다. 유리는 아들에게 꼭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했고, 아만다 역시 아인슈타인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알란에게 연락을 한다.


연극_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_공연사진_과거를 회상하는 알란들(오용, 장이주, 이진희, 김도빈, 이형훈).jpg
 

국적도, 나이도, 언어도, 그 무엇도 알란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알란이 편견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한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인간관계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특히 대학 내에서의 관계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필자는 연락하는 친구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더욱 소중한 사람들이다. 알란에게 성냥불과 같은 소박하지만,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는 친구들. 아마 그의 이야기가 와닿은 이유는 접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친구들에게 받은 삶의 온기를 전하기 위해 창문을 다시 넘어선다.


알란, 성냥갑 흔들어요
성냥을 꺼내요.
성냥을 그어요.
다시 불을 붙여요.

알란, 다시 불을 붙여요

불꽃을 일으켜요 알란.



[박희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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