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성이 잔뜩 묻은 동화같은 영화 '가려진 시간' [영화]

글 입력 2018.07.0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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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려진 시간>은 때를 잘 맞추지 못해서 묻힌 명작이다. 자극적이거나, 웃기거나 하는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스토리 패턴방식에서 벗어나서 감성적이면서도 동화 같은 환상이 묻어있다. 어린아이의 동심과 어른의 감성을 동시에 건드린다.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 '현실의 시간은 멈춘 채, 혼자서만 늙어가는 아이' 이런 판타지 요소를 집어넣어 '감성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어릴 적,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중학생, 고등학생, 건너뛰고 바로 대학생이 되면 안 되나?'라는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상상이 영화 속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걸 보고 '시간의 무서움'을 느꼈다.

만약, 현재의 시간은 그대로 멈췄는데, 나만 저 어딘가의 다른 세상에서 혼자 늙는다는 것은 어떤 걸까. 지금의 내가 아닌 20살이 더 먹은 내가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나야"라고 하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세상의 시간은 멈췄는데, 자신의 시간만 흘러 어른이 돼버린 성준이(강동원)가 느끼는 고독과 삶들을 보면서 진짜 실화가 아닌 영화라서 다행이라 느꼈다. 동시에 차곡차곡 쌓아온 어린 시절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현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 건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시간의 건너뜀은 무섭고, 외롭고, 잔인하다.

이 영화의 볼거리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첫째도 둘째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다. 왜 연기력이냐?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아역과 성인 배우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명연기를 펼친다. 그들의 표정, 몸짓,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어떠한 느낌'을 담고 있었다. 무어라 딱 잘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극의 전체적인 몽환적이면서도 슬픈 동화 같은 분위기를 더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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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에서 놀고 있는 성민(이효제)과 수린(신은수)


영화 초반에 약간 어두울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성민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밝아졌다.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와 수린을 바라보는 성민의 따뜻함이 영화의 몰입을 살렸다. 수린은 처음엔 굉장히 쌀쌀맞은 모습을 보이지만, 따뜻하고 의리 있는 강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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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성민(강동원)의 지저분한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수린(신은수)


어른이 된 성민(강동원)의 연기도 볼만하다. 이 사람의 눈빛, 목소리, 몸, 행동의 연기가 '성민' 그 자체였다. 자신을 범죄자로 보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겁먹은 성민, 진실을 말했지만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아이의 모습, 친구를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리는 어른의 모습. 어른이지만 아이이고, 아이이지만 어른인 '성민'을 연기한 그를 보면서 '강동원'이란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다.

또 다른 볼거리는 '영상미'이다. 숲속에서의 아지트에서 나온 아역배우 성민과 수린, 어른 성민과 수린의 모습들도 아름다웠다. 그 외에도 신비함을 주는 숲속의 장면, 정지된 현실의 모습, 공중에 떠 있는 만화책과 피자, 떠먹는 콜라, 정지된 파도와 같은 고퀄리티 영상미가 극의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런 장르의 영화는 사실, 두 부류로 나뉜다. '재미와 몰입감 두 가지를 모두 잡는 작품.' '감성적이긴 한데, 지루함은 어쩔 수 없는 작품'. 나에게 가려진 시간은 전자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애매한 나이대인 나는 평소 감성이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 현실을 알아갈수록 차갑고 불안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럴 때마다 애써 동심을 자극하려 했다. 어릴 때의 '나'는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 같았으니까. 그런 마음을 다시 불어 일으키고, 힐링하고자 가끔 감성 영화를 일부러 찾아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봤던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을 뛰어넘을 수는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재가 더 소중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나에게 주어진 것들. 마냥 좋을 수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마냥 나쁘지도 않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현재를 조금 더 열심히 사랑하고 조금 더 나를 사랑하자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권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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