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환각사지와 동시대미술의 연관성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7.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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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작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구현해 내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매체'를 변화시켜 왔다. 이제 우리는 미술관에서 단순히 회화와 조각 작품을 볼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영상과 VR과 같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현되는 결과물 또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전시《유령팔》에는 총 6팀의 작가들이 참여했으며 모두 80년 대생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디지털 매체를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세대였다. 따라서 이 나이대의 작가들 중 대다수가 디지털의 가상세계에 대한 고찰을 현실세계로 끌어오는 작업을 한다. 그 과정에서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사회 현상과 문화가 미술에 담기고 그러한 미술을 통해 우리는 지금시대의 패러다임을 역추적하게 해주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유령팔》에서는 지금 시대의 어떠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까?



전시 제목에 대한 고찰 :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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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찬드란 박사의 저서 <두뇌실험실>


제목 《유령팔》은 사고나 수술로 없어진 팔이나 다리가 그 후에도 오랫동안 환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환각 사지’, ‘환각 현상’에 기인한 것이다. 제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했던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이란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환각 사지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해왔으며, 이 책의 일부에는 ‘환각 사지’라는 용어의 기원과 그의 연구 기록이 읽기 쉽게 나열되어 있었다.

먼저, ‘환각 사지’는 남북전쟁 이후에 의사 ‘실라스 워 미첼’이 처음으로 만든 말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항생제가 없었고 감염을 막기 위해서 많은 부상병들의 팔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몇몇에게 환각사지 현상이 일어났다.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손이나 손가락, 그리고 팔에서 엄청난 아픔을 경험하고 그 고통이 격심해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통의 대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별다른 치료법을 찾지 못했고 결국, 자신의 신체 일부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러한 현상을 겪는 것이라는 주장이 학계의 대부분을 이뤘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환각 사지 현상이 단순한 '망상'에 기인한다고 보지 않았고 환자들과의 실험을 통해 각각의 세포에는 그 세포가 반응하는 일종의 피부 조각인 '신체 표면상의 일정 영역'이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즉, 신체의 일부가 존재하지 않아도, 그 부분과 연관된 감각을 ‘존재하는 다른 신체의 부분’을 통해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의학에서 발을 오장 육부에 흐르는 기의 통로로 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의 유령팔


작가들은 이러한 환각 사지 이론을 자신들의 작품세계와 연결 지어 보여준다. 대부분의 작품이 디지털 공간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게임 속의 '또 다른 나의 팔'이 그림을 그리고 공간을 구축하게 된다.

먼저, ‘압축과 팽창’은 직접 찍은 사진과, 그 사진으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했을 때 나열되는 유사한 이미지들을 아카이브 형식으로 전시한다.  이때 처음의 이미지와 구글링을 통해 얻은 이미지들은 유사한 경우도 있지만 연관성이 없어 보일 때도 있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속에서의 간극이 드러나는 순간인 것이다. 이를 ‘환각 사지’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보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신체는 '현실세계'에 대입되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느끼는 신체는 '가상세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연관성 없는 이미지들은 ‘환각 사지 상태에서 느끼는 감각’과 같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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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과 팽창,
찰리 오스카/에코 엑스레이
: 사무실 공간, "김"과 "안"이 기존 실측도와
현장 실측을 통해 구성한 CO/EX 사무실, 2018


다음으로, ‘람 한’작가는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 페인팅 작품을 게시한다. 대표적으로 온라인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을 한 화면에 나열시켜 가상의 '방(room)'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디지털 페인팅을 하기 때문에 큰 작업 공간이 불필요하며, 원본이 파일로 저장되어 있어 미술작품의 유일성이 절대적으로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제작 시 등장하는 허구의 ‘유령팔’은 컴퓨터의 드로잉 프로그램을 통해 브러쉬를 잡고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이 유령팔은 실제로 존재하는 팔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아예 현실과 연관성을 지니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환각 사지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보자면,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팔’은 존재하여 감각을 느끼는 또 다른 신체, ‘컴퓨터에서 그림을 그리는 유령팔’은 존재하지 않지만 감각을 느끼는 손실된 신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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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 한,< Room type >중 일부, 2018



마치며


그 밖의 이 전시에 참여한 강정석, 박아람, 김정태, 김동희 작가의 작품 속에서도 유사한 ‘유령팔’이 등장하여 라마찬드란 박사의 ‘환각 사지 현상’을 일으킨 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 작품 속의 유령팔은 단순히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현실과 가상세계 간의 간극이 불러일으키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환각 사지를 지닌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은 우리에게 엄청난 편리함을 제공해 주었고 삶의 시각을 넓혀 주었지만 또 다른 문제점들을 양산하였다. 인류의 역사가 축적됨에 따라, 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 기술이 주는 장점 뿐만 아니라 단점 또한 겪게 된다. 이를 '어떻게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가, 그리고 문제점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그 시대의 중요한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시의 작가들은 양가적인 '유령팔'을 작품에 투입함으로써 관람객들로 하여금 현시대의 패러다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위처럼, 《유령팔》은 오늘날 작가들의 주요한 소재인 ‘가상공간’이 뇌 연구의 마지막 성역 중 하나였던 ‘환각 사지’ 이론과 맞물리게 함으로써 깊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하는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전시가 진행되었던 서울 시립 북서울 미술관에 방문하는 관람객층의 대부분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이기 때문에 도슨트의 설명이 이와 같은 깊이를 다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다른 공간에서 동일한 전시가 개최되었다면, 좀 더 심도 있는 전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참고로, 이 전시는 지난 8일 종료되었다. 미처 전시를 보지 못했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싶다면 9월 16일까지 진행되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소장품 특별전 : 동시적 순간》을 추천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또다시 등장하는 동시대 미술의 ‘유령팔’을 찾아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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