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죽고싶지않아 [공연예술]

글 입력 2018.07.0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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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문화주체로서 인식되고, 청소년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이 요구되면서 일어난 청소년극의 성장. 그 중심에는 설립 이후 꾸준히 청소년극을 올리며 매니아층을 확보해나가고 있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있었다.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현재까지 다수의 청소년극 작품을 올려왔는데, 그중에서도 2016년 초연당시 관객과 평단의 호응을 고르게 받았던 댄스씨어터 ‘죽고싶지않아’가 올해 6월부터 7월까지 다시 무대에 올랐다.

* 댄스씨어터: 무용과 연극이 결합된 현대무용의 일종

이 작품은 기존 공연들과는 달리 공연의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 ‘몸짓’을 선택했다. 이 극의 연출을 맡은 류장현 안무가는 청소년들의 불안한 내면의 심리를 오직 움직임으로서 표현하고자 했다. 사실 공연을 보기 전까지 나에게 현대무용이라는 장르가 익숙치 않을뿐더러,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생각을 몸짓하나만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었다. 그러나 공연을 보면서 때로는 말보다 감정을 실은 섬세한 움직임들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여러 문구들이 마구잡이로 낙서된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무대는 우리가 학창시절에 낙서를 하던 칠판이 되어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분필소리가 사각사각 무대위에 울려퍼지면서 벽을 열고 사람들이 하나 둘 기어나온다. 그렇게 모든 출연자들이 무대에 등장하자, 한 사람은 갑자기 벽을 오르고 또 다른 사람은 벽위의 의자에 앉는다. 벽을 오르는 사람이 자꾸만 미끄러지자, 이미 안전한 곳에 도착한 다른 이들이 그의 손을 잡아 끌어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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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엽이 반밖에 없으니까!

잠시 암전 후 ,무대에 불이 들어오자 한 배우가 빠른 동작과 함께 긴 독백으로 청소년기의 뇌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초파리와 2/5가 다르며, 이족보행을 통해 자유로워 진 손으로 발달해 나가는 인간의 청소년기에는 전두엽의 절반 정도가 기능을 상실한다. 그러므로 전두엽이 반밖에 없는 시기에 청소년들이 너무나 많은 경험을 하고 이것을 감당하지 못하며, 엄청난 혼란과 불안을 겪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

이 말을 듣는 순간,하루에도 몇번씩 감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내일이 두려워 쉽게 잡에 들지 못했던 내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혹시나 청소년 친구들이 이 연극을 보게 된다면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고"아,그래서 그랬구나~"하고 넘겼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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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있어!

다같이 춤을 추다가 배우들이 한명씩 하얀매트를 들고 무대로 온다. 어떤 이는 매트를 들고 신나게 뛰어다니고, 어떤이는 매트를 어깨에 지고 힘겹게 걷는다. 그때 다른이가 와서 어깨 위에 매트를 치우자 그는 마치 새가 된것처럼 자유롭게 무대를 누빈다. 극의 중반부에서는 다같이 신나게 춤을 추다 차례로 한명씩 바닥에 쓰러진다. 그러자 한 사람이 다가와 쓰러진 사람들의 몸을 따라 분필로 바닥에 선을 긋는다. 마치 사고 후에 죽은 사람이 있던 자리를 표시하는 것처럼.

죽은 듯이 미동도 없던 이들이 선을 모두 긋자 아무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나 무대 위를 더 힘껏 활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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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어 가치있어.

그러나 선을 다 그렸음에도 일어나지 못 하는 한 사람.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로 다가가고, 그들이 다가가자 쓰러져 있던 사람은 마치 발길질을 당하는 것처럼 몸을 굴린다. 그들은 쓰러진 사람을 벽 쪽으로 몰고간 뒤, 가만히 서서 지켜본다. 그 순간, 한명이 무리에서 이탈하고 무리 속 사람들은 이탈한 사람을 노려본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이탈한 친구와 무리는 서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이동한다. 그러다가 이탈한 친구가 무리로 들어가려고 하자 모두 외면하며 흩어져 버린다. 잠시 후 또다른 무리가 형성되고, 미처 끼지 못한 한명이 또 남는다. 그는 뒤늦게 들어가려 하지만 무리는 다시 외면한다. 그 때 무리에서 한명이 나와 그를 위로하려 다가가지만, 먼저 이탈한 자는 위로하는 이를 뒤로한 채 다시 무리로 되돌아간다.

이들은 끊임없이 무리를 짓고,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혼자로 만들며, 혼자가 되면 불안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수가 되면 그들의 의견은 묵살되기 일쑤고, 그렇기 때문에 나를 지워가면서까지 무리안에 있고 싶어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청소년들만이 맞닥뜨린 것이 아니다. 무대 위에 드러난 청소년들의 작은 사회는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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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인생을 살 수 있어?

마지막으로 혼자가 된 한명은 다시 무리에 들어가려 하지 않고 그대로 서서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밝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혼신을 다해 춤을 추지만, 친구들은 외면한 채 문으로 들어가 버린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명이 객석을 등지고 앉아서 그녀의 춤을 관람한다. 하지만 문 밖에서 다시 사람들이 나와 마지막 남은 친구마저 데리고 들어가 버린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고 그녀는 여전히 춤을 춘다. 밝은 음악에 대비되는 슬픈표정,무언가 절실히 원하는 듯한 동작들,마치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같은 몸선과 근육들.그녀의 무대가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온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진정한 나를 찾는 행위는 고되고 불안하지만 그녀가 힘들어하면서도 계속해서 춤을 추었을 때, 비로소 자립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생각한다.

연극 죽고 싶지 않아는 ‘네 주변의 모두가 너를 소외시키더라도 너만의 길을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는 작품이다.  질문에서 지칭하는 '모두'는 청소년기에 등장하는 친구들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관계를 맺어가는 모든 사회구성원을 말한다. 즉, 이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역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우리의' 이야기 인 것이다. 비록 혼자가 되었지만 끝가지 춤을 추는 그녀를 보면서 생각한 나의 대답은 ‘힘들더라도 나의 길을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는 현실에 처하게 되더라도 절대 자신을 저버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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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장면


가장 마지막 장면은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관객들까지 무대위로 올라와서 미친 듯이 음악을 따라 춤을 추는 장면이다. 사실 커튼콜 장면이지만 나는 이 장면까지가 연극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싶다. 관객들에게 지금 이순간 같이 몸을 움직이면서 살아있는 것을 느끼자고, 웅크리고 있지 말고 깨어나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몸짓으로~ 무대위의 현실에 대한 불안과 혼란을 딛고 현재에 집중하며 미친듯이 춤추는 청소년(역할의 배우)들을 보며 나 역시 무대에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움직였던 것 같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차피 죽지 못하는 거 춤추듯이 살자고! 아니! 죽고싶지않아!!


[홍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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