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금요일 저녁을 물들이는 서정적인 목소리 - 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 뮤지컬

글 입력 2018.05.20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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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훈훈한 저녁, 각자의 집으로 바쁘게 퇴근하는 차들 사이에 섞여 성수아트홀로 향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공연장에는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매표소에는 있는 꽤 많은 관객들이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어서 새삼 아직까지도 짙은 김광석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평소 김광석을 좋아하는 아빠와 함께한 나는 뮤지컬에 친숙하지 않은 아빠가 보이시는 내심 미심쩍은 반응에 약간의 긴장을 느끼며 자리에 앉아 시작되는 공연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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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는 바람밴드> / 성수아트홀 제공
 


풍부한 성량을 가진 배우들이 빚어내는 원곡의 재구성

‘바람이 불어오는 곳’ 뮤지컬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배우들의 역량이었던 것 같다. 원곡 그대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슬로건에 걸맞게, 통기타 밴드의 음악들은 8-90년대의 감성을 잘 살렸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아직까지 김광석의 음색과 감성을 잊지 못해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었던 배우들의 깊고 풍부한, 그 시절 그 가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게 한 그 목소리는 특히 섬세하게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었다.

김광석의 서정적이고도 따뜻한 멜로디와 가사가 잘 어울리는, 울림 있는 목소리와 몸짓을 가진 배우들이 이 뮤지컬을 더욱 빛나게 해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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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방에 보인 바람밴드> / 성수아트홀 제공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줄거리

뮤지컬의 줄거리는 대학의 한 작은 밴드동아리에서 출발한 바람밴드가 우여곡절 끝에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타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에 사회인이 되면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삶의 애환 그리고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역시 담고 있었다. 그러나 각자의 사정 속에서도 끝까지 음악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던 이들이 모여 다시 노래하고 연주하게 되었다는 그런 해피엔딩. 이러한 해피엔딩은 작품을 보는 내내 반전 없이 예상 가능한 식상한 줄거리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러한 점이 관객이 공연에 몰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했다. 작중에 큰 위기나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위험을 삽입해 호기심과 긴장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순탄하고 술술 넘어가는 플롯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온전히 배우들의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어 김광석의 음악을 되새겨보고자 하는 뮤지컬의 목적을 잘 소화해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이 오히려 노래와 연주를 바탕으로 하는 뮤지컬의 특색과 더불어 김광석의 노래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또한 작중에서 메인 줄거리를 이끌어나가는 배우들 외에도 감초 역할을 하는 배우의 비중을 높게 설정한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었던 식상한 줄거리 사이에서 관객들의 텐션을 끌어올리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조연의 비중을 높이는 것 덕분에 쉽게 흥미를 잃지 않고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한 역할이 없었다면 자칫 그저 그런 그 시대 그 얘기로만 끝날 뻔 했던 밍숭맹숭함을 조연으로 잘 커버한 극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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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조명아래 연주하는 바람밴드> / 성수아트홀 제공



참신한 무대 장치와 감성적인 무대장치

뮤지컬을 보면서 또 한번 놀란 점은, 꽤나 협소한 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장치를 굉장히 잘 활용했다는 점이었다. 때문에 옮기기 힘든 세트는 하나로 묶어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도 장면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장면과 장면을 넘나들어 관객들로 하여금 위화감을 거의 느끼지 않고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연기하여 인상적이었다.

극의 배경 중에 장소의 변경이나 낮과 밤사이 시간의 흐름은 프로젝터를 통해서 해결했는데, 그 프로젝터로 쓰였던 배경 역시 단순히 정지되어 있는 그림을 사용하지 않았던 점 역시 좋았다. 인물의 동선을 따라 배경이 움직이기도 하고, 바람결이나 별의 반짝임 같은 요소들을 담아내어 생동감 있는 배경을 구현해낸 것이 뮤지컬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스크린을 이중으로 설치해서 가운데 공간을 반투명하게 구성한 부분이었는데, 이를 통해 관객이 마치 티비를 통해 바람밴드가 대학가요제에서 노래 부르던 그 모습을 보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 나에게는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왔다. 이 반투명한 스크린은 주인공 이풍세가 현실에 부딪친 자신의 꿈을 노래하는 장면에서 다시 쓰인다. 이 부분에서 반투명한 막 뒤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주인공은 또렷이 들리는 노랫소리와 대비되어 그 주인공을 바라보는 ‘나’ 역시 그 막막함과 무력감을 공감각적으로 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감초 역할을 하는 조연으로 하여금 재치있는 장면 전환을 가능하게 합을 맞추었던 조명 타이밍이나, 극 중의 서정적인 분위기, 축제 분위기 등을 잘 표현해냈던 조명 색채가 특히나 조화로웠던 공연이었다고 생각된다.

*

전체적으로 나와 아빠의 뮤지컬에 대한 평은 굉장히 후했다. 2시간 반여 정도의 긴 러닝타임 동안 경험했던 김광석의 음악들은 단지 옛날 노래라는 이유로 지루하지도, 구시대적이지도 않았다. 정말 잘 만든 뮤지컬 하나를 보고 나온 느낌이었다. 사실 아직 4050세대를 겪어보지 않은 내가 완전하게 공감할 수는 없었던 스토리였지만, 삶이 너무 바쁘고 버겁다면 그래서 순수했던 10년 전을 떠올려보고 싶다면 기꺼이 투자해도 좋을 금요일 저녁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종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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