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출판저널 504호≫ 올바른 책 문화는 올바른 출판에서 나온다 [도서]

글 입력 2018.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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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출현해 사회의 뿌리 깊은 폐단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성별에서 나오는 권력관계와 더불어 업무 내 상하 관계에서 나오는 권력관계에도 시선을 던진다. 남성이 상대적으로 업무 및 직장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비율이 여성보다 높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맥락일 수도 있지만, 유교 사상과 관료제가 사회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직장에서 이는 젠더 권력과 더불어 사회적 폭력을 고착화하는 또 하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출판매거진 <출판저널> 504호는 특집 ‘#미투 이후, 좋은 일터를 위한 출판환경’을 통해 출판업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폭력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시작으로 예술계·정치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부조리가 속속 드러났지만 출판계 내 미투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중엔 유명 문인들도 다수 속하며 문단과 더불어 책 문화 전반적인 생태계 개선의 필요성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이다. 올바른 책 문화는 올바른 출판 환경에서 비롯한다. 각양각색의 문장과 생각이 한데 모여 다듬어지는 곳에서 상하 관계의 억압이 작용하는 것은 그 존재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출판저널> 에서는 설문조사와 좌담, 인터뷰를 통해 더 좋은 책 문화를 위한 더 좋은 출판환경, 나아가 더 좋은 일터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생각들을 모아본다.



성폭력 실태 조사, 출판 업계가 갖는 특수성


<출판저널>은 출판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성폭력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수치화된 결과를 통해 피해 양상을 분석한다. 대부분의 결과가 다른 분야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성을 갖지만, 출판업계가 갖는 특수성에 기인한 결과가 눈에 띈다. 업무 관련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직장 상사와 사업주, 그리고 저자와 역자였다. 직장 상사와 사업주는 변인 자체가 높은 지위를 내포하고 있어 보통 미투 운동에서 지적되는 가해자의 유형과 일치하지만, 그렇지 않은 저자와 역자가 주요 가해자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는 점은 괄목할 만한 결과이다. 저자와 역자가 ‘갑’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데, 책 문화의 질을 저하하는 심각한 현상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책의 실체로 태어나는 과정은 그들만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독자에게 오롯이 전달될 이야기를 다듬어가는 과정에서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함은 당연하며, 과정이 가려진 결과만을 마주할 독자에게 갖춰야 할 기본적 윤리 의식이다.
 
문단과 출판계 인적 네트워크의 폐쇄성이 폭력과 그에 대한 침묵의 주원인으로 지목된 것 역시 출판업계가 갖는 특수성을 나타낸다. 워낙 ‘판이 좁은 곳’이다 보니 업무 내 기득권의 영향이 업계 전체를 지배하며, 폭력을 고발하거나 거부하는 것 역시 업계 전체에서 매장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담,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출판저널>은 실태조사를 통해 알아본 성폭력 피해의 현황을, 출판업계 종사자 및 전문가들이 전하는 현장의 생생한 고발과 실질적 고민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좌담을 실었다. 성별과 업무상 작용하는 권력과 한국 직장 내 고질적인 폐단은 물론 출판업계와 문단이 갖는 직종 상 특수성에도 역점을 두어 다룬다. 앞서 언급한 저자 및 거래처 상사가 점하는 갑의 위치와 문단 및 출판계의 폐쇄성과 더불어, ‘포장’이 가능한 직종이라는 점을 원인으로 제시한다. 이는 예술계에서 가해자들이 예술 활동을 빌미로 여성을 수단화하고 성폭력을 일삼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은 정책상 5인 미만의 사업장은 실시하지 않아도 되어, 10인 미만의 사업장이 약 80%를 이루는 출판업계에서 예방 교육이 상대적으로 미비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근거로 든다.
 
이들의 시선은 출판업계에 머물지 않고 문단과 노동으로 확장한다. 페미니즘 도서 출판은 젠더 문제의 ‘공론화’ 과정이다. 단어가 많아야 많은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듯 다양한 담론과 견해의 제시가 여성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증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억압 없는 자유로운 견해의 표출은 건강한 사회 형성에 일조한다. 이와 더불어 해결책은 노동 환경과 처우의 개선과도 맞닿아 있다. 기본적인 윤리 의식의 형성은 물론, 출판업계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보인다.

 

인터뷰, 언어의 필요성


특집의 끝엔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이민경 저자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 연구하는 문강분 박사의 인터뷰를 실었다. 크라우딩 펀딩으로 만들어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무려 5만 부의 판매량을 올리며 독자들이 얼마나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는지, ‘언어를 필요로 했는지’를 보여준다. 2016년부터 성폭력 실태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투 운동이 아직 일어나고 있지 않은 출판계의 문제점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책이라는 매개로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자유로워야 할 출판계가 오히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모순적인 상황이다. 무수한 언어가 오가고 있는 곳에서, 약자에게 주어진 언어는 없다. 당신에게 대답할 의무가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대답할 권리와 대답하지 않을 권리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역설적으로 수많은 언어의 존재가 우선해야만 가능하다.
 
문강분 박사는 노동환경의 개선을 법·제도적 측면에서 탐색하며 직장 내 괴롭힘의 체계적인 근절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보다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괴롭힘’ 개념의 확장이다. 우리나라 직장은 대부분의 경우 상하·수직관계가 기본적 뼈대를 이루고 있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너무도 쉽게 생성되며 사소한 말과 행동이 짐이 된다. 생활을 유지하는 경제적 수단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발생하는 폭력을 쉽게 거부할 수도 없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 역시 ‘언어’이다. 이것은 강자들이 ‘괴롭힘’의 범위를 축소시켜도 그와 상관없이 주체적으로 그 범위를 규정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결국, 직장 내 괴롭힘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노동자들의 언어인 것이다.
 


OPINION


매체의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책은 아직도 개인과 사회의 생각을 투영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 중 하나이다. 책과 독자를 언어로써 투명하게 매개해야 할 출판계가 폭력이 가득하고 심지어 그것이 폭로되지도 않고 있는 억압적 상황은 출판계뿐 아니라 독자들에 있어서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가장 많은 언어가 존재하는 곳 중 하나인 출판계에서 입막음 당하고 있는 자들의 언어가 자유롭게 샘솟을 수 있는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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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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