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몇 초의 순간이 평생의 기억이 된다 [스포츠]

프로야구 팬 서비스 논란에 대하여
글 입력 2018.05.0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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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프로야구 7년째 팬이다. 평소에 시간이 된다면 직관을 다니는 편이다. 선수들의 퇴근길에는 여러 사람들이 늘 몰린다. 사인 해주세요! 하이파이브 해주세요! 그럴 때마다 선수들은 스쳐 지나가거나 혹은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이제 그런 행동이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나서서 요구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고 그래서 아직까지 응원하는 구단의 선수 사인 한 장 없다. LG 김현수 선수가 두산 시절 가진 사인회 때 친구 따라가서 한 장 받은 것 이외에는.

 3월 30일. 어느 때와 같이 직관을 간 날. 인기 선수들이 빠진 후, 상무에서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은 투수가 클럽하우스를 빠져나왔다. 순간 야구 선수임을 직감한 사람들은 경호원이 퇴근한 틈을 타 사인을 받으려 줄을 섰다. 그 선수는 어린아이들과 어른들에게 하나하나 사인을 해주었다. 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 것 부터 해야하는지 허둥대는 선수를 보니 웃프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들었다. 그의 큰 키는 아이들이 올려다보기 딱 좋았다. 필자는 그에게 직접 사인을 받진 않았지만 그 이후로 그 선수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졌고, 꾸준히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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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자이언츠의 투수 구승민 선수


 팬 서비스 논란은 늘 KBO 리그에서 화제 거리이다. 하지만 최근 이 논란은 선수들조차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때는 잠실에서 두산 베어스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린 날이었다. 원정 온 기아 선수들이 출퇴근길 팬들의 사인 요청을 거부하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사전 촬영의 동의를 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이 리얼하게 담겨있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어린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조차 거부하는 모습이었다. 그 아이는 선수의 사인을 받기 위해 공을 3개나 사고 들뜬 마음이었지만 한순간에 상처를 받고 말았다. 이외에도 여러 팬들의 인터뷰는 ‘팬들을 거지 취급하는 것 같다’, ‘솔직히 속상하다’며 선수들에게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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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인 요청을 하는 기아 타이거즈의 어린 팬들


 오프라인에서만 겪던 일들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지상파를 통해 보도되어서 그랬을까. 잠잠했던 KBO 리그의 팬 서비스 논란은 다시 불씨가 지펴졌다. 기아선수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사인 거부 상황들이 기사 댓글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다른 팀의 선수들 이름들까지 거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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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의 심장 박용택 선수


 이승엽 선수와 관련된 기사가 뜨면 기사와 무관하게 은퇴한 지금까지도 댓글은 사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승엽 선수는 자신의 사인이 중고나라에 거래되는 것이 충격이었다며 사인을 많이 해주다 보면 ‘희소성’이 떨어진다는 발언을 했고 실제로 여러 사람들의 사인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했다. 선수 입장에서는 그렇게 거래되는 것이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런 팬들은 일부일 뿐일 것이며 대부분의 팬들은 그 사인을 소중한 추억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를 저격이라도 한 듯 LG 박용택 선수는 “사인볼을 팔아먹으면 전부 사인해줘서 팔아먹지 못하게 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발언이며, 실제로 박용택 선수는 아직까지 후배들에게 팬 서비스의 중요함을 강조한다고 한다. 2018년 LG트윈스의 우승공약 역시 LG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94년 이후 24년만이니 24에 365일을 곱해 8760개의 사인볼을 준비해서 무료로 배포하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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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의 팬 서비스 문화


 선수들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한 명해주면 다 해줘야하며 특히나 원정경기는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사인에 응하기 힘들 수도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선수 전용 주차장, 원정버스 탑승통로, 원정 숙소 로비는 선수들이 보호하는 공간으로 팬들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다. 선수의 기본적인 사생활과 개인적 시간을 존중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어떤가? 메이저리그에서는 팬서비스가 의무조항인 경우가 많다. 연습이 끝나고 짧은 시간이나마 팬 서비스를 하는 것을 의무화해 팬과의 소통을 중요시 여긴다. 그러한 소통이 10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를 이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편으로 팬들도 성숙한 문화를 가지고 사적인 공간에선 되도록 사인 요청을 자제하거나 선수의 사정을 이해하는 마음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처럼 의무조항으로 두진 않더라도 팬도 선수도 기분 좋아지는 팬 서비스 문화가 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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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 선수


 KBS에서 보도된 방송의 파장은 생각 외로 컸다. 사인 안 해주기로 유명한 이대호 선수까지 바꾸어 놓았으니. 요즘 뜨는 기사들을 보면 이대호 선수 뿐만 아니라 KBO리그의 선수들이 이제 조금은 보여주시기 식이 아닌 팬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것 같다. 두산의 오재원 선수는 팬 서비스로 예전부터 유명했고 관련된 일화도 많다. 기사 이후 류지혁 선수, 허경민 선수, 박건우 선수 등 자신의 차에 탑승하기 전 까지 사인요청에 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최근 롯데 선수들은 원정경기가 끝나고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지나갔다. LG선수들은 어린이 날 아이들을 위해 경기가 끝나고도 자발적으로 몇 십분 동안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다만 필자는 이것이 여론을 의식한 반짝 행동이 아닌 꾸준히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팬이 갖는 의미는 과거 1990년대 최희암 전 연세대학교 농구팀 감독의 발언에 담겨있다.

 “너희들이 볼펜 한 자루라도 만들어봤냐? 너희들처럼 생산성 없는 공놀이를 하는 데도 대접받는 이유는 팬들이 있어서다. 팬들에게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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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일 두산 우천취소 세리머니


 경기가 우취가 되었을 때 비가 오는데도 야구장까지 발걸음한 팬들을 위한 ‘우취 세리머니’나 사람이 없는 출근길에는 되도록 사인요청을 받아주기, 경기장에서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사인해주기, 사람이 많은 퇴근길이나 사인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정중하게 ‘죄송합니다’ 한 마디를 팬들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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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그램 한 구단 팬의 일화


 적어도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 아이들은 자신에게 사인을 받은 선수의 이름과 그 기억을 영원히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까지 야구를 소비하는 주체자가 되고 그것이 결국 프로야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넥센의 이정후 선수는 자신이 어렸을 때 사인을 받은 기억 떄문에 프로 2년차 인기 선수임에도 아이들에겐 자신이 나서서 사인을 해준다고 한다. 스포츠를 소비하는 팬들에게 이것이 어떤 '권리'라고 부르기엔 거창한 말 같다. 권리가 아닌 소통으로 접근하여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음한다.
 
 사인을 요청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저기 ~선수님 사인 한 번만 해주세요" 라는 말을 하기 위해 몇번씩 고민하는 팬들도 있다. 그렇게 용기를 냈는데, 무시하고 지나가면 남인데도 인간적인 상처가 되고 좋지 않은 기억이 된다. 아이들한텐 그 상처가 더 클 것이다. 그런 용기를 조금은 무안해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 팬과 선수의 조그만 배려가 아닐까. 필자가 만약 프로야구 선수라면 인기 많은 선수, 몸값 높은 선수가 아닌 누군가의 기억속에 평생 남는 선수가 되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한 명의 프로야구의 팬이기에 이러한 움직임들이 그저 꾸준히 이어졌음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


"사인하는 데 5초면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평생 기억으로 남는다"

- 마이크 트라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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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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