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넷플릭스 "트로이": 진부하고 루즈한, 그럼에도 한 번쯤 볼 만한 [영화]

글 입력 2018.04.27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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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오리지널 <트로이: 왕국의 몰락> 포스터
 

  넷플릭스는 2018년 1월, 새로운 오리지널 시리즈 <트로이: 왕국의 몰락>을 선보였다. 총 8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신화적 사건을 다룬다. 10년에 걸친 긴 전쟁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까지는 모르더라도 아킬레스니 파리스니 헥토르니 하는 영웅들의 이름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트로이의 목마'라는 독창적이고 인상적인 조형물을 활용해 견고한 트로이의 성문을 뚫어낸 오디세우스의 지략은 말할 것도 없다. 서구 문화의 근본이라는 그리스 문화, 그리스 문화의 꽃이라는 그리스 신화는 세계적인 교양서적 0순위가 아닌가.

  이미 잘 알려진 스토리를 재해석해내는 작업은 위험하다. 모두가 아는 뻔한 전개만을 늘어놓다 모두가 아는 뻔한 결말로 마무리를 맺어버릴 수 있고, 이를 피하려다 무리하게 과한 해석을 늘어놓아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온 이야기라면 그 자체가 이미 잘 짜인 구성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에 여기서 섣불러 뭔가를 덧붙이려 하다가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퇴색시키고 오랜 팬들을 실망하게 할 수 있다. 일리아드는 서구에서 삼국지만큼 많이 읽히는 서사이다. 이 이야기를 재구성할 때 전쟁의 배경과 인물들을 세세히 짚지 않고 러프하게 넘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시리즈가 무성의하고 개연성 없이 흘러가버려선 안되기 때문에 아킬레우스의 약점이 발뒤꿈치라거나 오디세우스가 그리스 최고의 꾀돌이라거나 하는 등의 '모두가 아는 바로 그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다 아는 얘기를 재밌게 전달하는 것,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려는 제작진은 진부함과 무성의함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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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스와 헬렌


  넷플릭스의 <트로이>는 파리스와 헬렌의 사랑을 상당히 비중 있게 그리며 이전 트로이 이야기와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기존 스토리에서 이 둘의 사랑은 파리스가 황금사과를 준 것에 대한 아프로디테의 보답으로, 한 도시를 멸망하게 한 비극적인 전쟁의 원인 정도로 취급된다.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2004년 영화 <트로이>에서 올랜도 블룸이 연기한 파리스는 나약하고 찌질한 남자로 그려지며 한순간의 사랑에 눈멀어 대책 없이 행동해 도시를 파멸로 몰고 간 장본인이다. 헬렌은 그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서 파리스가 뺏고 메넬라오스가 빼앗긴 팜므파탈로 소비될 뿐이다. 영화는 오히려 웅장한 전쟁 씬과 수많은 영웅들의 활약, 갈등,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파리스보다는 트로이의 영웅 핵토르와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부각되며 파리스와 헬렌의 사랑보다는 (아가멤논과 반목한 원인이 되기도 한)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의 사랑을 중요하게 다룬다. 반면 넷플릭스 <트로이>에서는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는 철딱서니 없는 왕자 파리스와 세상에서 아름다운 여인 헬렌이 눈맞았다' 한 문장으로 설명되는 헬렌과 파리스의 관계를 훨씬 더 구체적이고 개연성 있게 풀어내며 이들이 드라마 서사의 중심에 위치하도록 한다.

  반면 <트로이>가 실패한 지점도 있다. 첫 번째는 헬렌과 파리스 캐릭터를 살려낸 대신 핵토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트로이 제 1의 명장, 가장 영웅다운 영웅으로 그려졌던 핵토르는 드라마에서 그저 평범하며 누구나 아는 핵토르, 그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둘째로 전쟁 드라마인데 막상 전투씬에서는 힘이 빠진다는 것도 치명적인 단점이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이겠지만 8개의 에피소드를 통틀어 몇 번 나오지 않는 대규모의 전투 장면은 생각보다 짧고 맥이 빠진다. 하지만 일대일 전투 장면은 꽤 볼만하다. 특히 아킬레우스와 핵토르의 전투씬이 그렇다. 큰 스케일을 보여줘야 하는 평지에서의 전투 대신 그리스 진영 장군들의 반목, 고립된 트로이가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 애매하게 묶여 힘들어하는 헬렌의 모습에 힘을 쏟는다. 그러나 중간중간 스토리마저 루즈해져 전체 드라마가 긴장감을 잃는다.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파리스와 헬렌이라는 인물을 조금 특별하게 재해석하고 있음에도 전체적으로 진부하고 진행이 늘어진다.

  <트로이>는 지금까지 절반 정도의 성공과 절반 정도의 실패를 겪은 것 같다. 그러나 분명 한 번쯤은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어설프긴 하지만 일리아드 원작과 영화 <트로이>가 건드리지 않았던 지점들을 건드리며 독특한 해석을 보여주는 부분들이 있고, 시청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논쟁을 이끌어낼 만한 힘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시즌 2가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일단 시즌 1이 완결된 시점에서 <트로이>를 보고 주목해볼 만한 지점들을 소개한다.



사랑에 주체적인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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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렌과 파리스 캐릭터가 재해석되면서 이들의 사랑은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기존의 이들 캐릭터가 단순히 서로 눈 맞아 나라를 망하게 만든 주범들로, 특히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와의 일대일 결투에서 패배하자 꽁무니를 빼는 등 한심한 약골로 그려졌다. 헬렌은 그저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묘사로만 존재했을 뿐이다.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점을 제외하곤 어떤 가치관을 지녔는지, 메넬라오스와의 결혼생활은 어땠는지, 어떻게 한 나라의 왕비가 한순간에 다른 남자와 달아나겠다는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은 '영웅'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묶이면서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최고의 힘을 가졌으면서 성미가 급하고 가끔 이성을 놓아버려 자신이 저지른 일을 수습해야 하는 헤라클레스가 있고, 누구보다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지략가이지만 전쟁을 빠르게 끝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오디세우스도 있다. 헬렌은 아름답기만 하다면 어떤 여인으로든 치환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헬렌과 파리스의 사랑은 '에로스의 화살에 맞았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야만 했다. 그저 아프로디테의 개입으로 한순간에 달아오른 사랑, 아니 욕망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혈기왕성하고 무모한 연인은 트로이를 망하게 한 원인으로서 비난의 대상이 된다.

  반면 넷플릭스의 헬렌은 인격이 있고 사연이 있는 인물이다. 그녀가 어릴 때 그리스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은 그녀를 놓고 다퉜고, 얼굴도 몰랐던 메넬라오스와 결혼해 14살에 딸을 낳았다. 사는 내내 쟁취의 대상, 소유물, 전리품이었던 그녀는 아름다운 새장 안의 새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준비 없이 낳은 딸에게는 마음이 가지 않았고 남편에 대한 사랑이 없으니 더더욱 그랬다. 파리스는 목자들 사이에서 자란 탓에 거칠고 투박하며 왕자로서의 소양도 갖추지 못했지만 트로이의 왕자들을 능가할 만큼 말을 잘 탄다. 핵토르만큼은 아니지만 싸움에도 능하다. 트로이 산악지대를 꿰고 있기에 성 안으로 식량을 조달할 대책을 강구할 때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추진할 수도 있다. 위기 상황에서 순발력을 발휘해 형을 구하기도 한다. 이렇듯 그는 굴러들어 온 돌이지만, 트로이의 왕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제 자리를 잡아간다.

  단 한순간도 주체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던 미케네의 왕비 헬렌에게 파리스는 너무나 매혹적이었을 것이 이해가 간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유분방함도 능력이 뒷받침되기에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미케네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 묘한 기류를 형성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저돌적인 파리스와 달리 헬렌은 왕비와 어머니라는 역할 아래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끌림에 곧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 만난 이 남자를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1화 전체에 걸쳐 인물의 배경과 성격을 보여준 뒤 이루어지는 이들의 만남은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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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아모스와 헤큐바(트로이의 왕과 왕비)에게 호소하는 헬렌
 

  본인들의 사랑에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시청자와 트로이를 설득했기 때문에, 트로이 왕가 역시 이들의 강력한 지지자가 된다. 헬렌과 파리스가 철없는 젊은 연인이었다면 트로이 왕가는 이들이 저지를 일을 수습하고 뒤치다꺼리하다 망하고 만 불행한 왕조 정도에 머물렀을 것이다. 트로이 왕과 왕비가 헬렌을 가족으로 맞아들이고 파리스를 인정했기에 세기의 사랑을 지켜주려는 트로이와 여자를 소유물로 생각하며 '빼앗긴 보물'을 되찾아오려는 미개한 그리스인의 구도가 형성된다. 아가멤논이 아폴론 사제의 딸을 강간하는 장면이나 그리스 연합군이 헬렌을 대상화하는 태도를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리고 그리스에서 단 한순간도 자유롭거나 행복하지 않았다는 헬렌의 서사를 부각함으로써 그 구도는 더 견고해진다.



말 많은 블랙 워싱, 왜 논란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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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킬레우스와 제우스
 

  넷플릭스 <트로이> 1화가 나왔을 때 SNS가 한창 시끌시끌했다. 제우스와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 역을 맡은 배우가 모두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거 완전히 '블랙 워싱' 아니냐며 화이트 워싱만큼이나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나치게 pc 하려다 무리수 설정을 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었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 구독을 해지했다는 말도 제법 나오고, 조만간 오바마와 마틴 루터 킹도 백인 캐스팅해서 영화 만들어야 한다는 비아냥거림도 봤다. 모두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우선 '블랙 워싱'이라는 신조어를 남발해 화이트 워싱의 의미를 흐리는 것부터가 문제다. 화이트 워싱은 미디어에서, 특히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인종적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할 때 백인 배우가 아시안, 흑인인 척 연기하거나 역할 자체를 백인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화이트 워싱은 왜 문제가 되는가. 캐릭터 고유의 정체성일 수 있는 인종과 문화적 배경을 지우고 이들을 할리우드의 인종적 디폴트인 백인으로 치환하는, 즉 소수자를 아예 지워버리는 다수자의 대표적인 횡포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백인은 영웅, 악역, 부자, 빈민, 정치인, 학생, 상인, 회사원 등 인종과 관계없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할을 맡는다. 흑인은, 이제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갱, 범죄 조직, 빈민 등으로만 주로 등장할 뿐이다. 영웅으로 등장한다 하더라도 주인공을 충실히 돕다 죽음을 맞이해 주인공이 각성하게 하는 주인공 친구 정도로 등장한다. 동양인은? 대부분이 그냥 동양인 역이다. 이런 와중에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의 <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을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고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티베트인 에이션트원 역할에 틸다 스윈튼이 캐스팅되는 것은 미디어에서 소수자를 철저히 배제하는 백인 중심주의적 태도다.

  반면 통상적으로 백인이 맡아오던 역할을 흑인 배우가 맡는 것에는 이러한 차별적 맥락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미디어 내의 다양성을 높이는 좋은 시도다. 인종적 정체성이 캐릭터나 서사에서 중요한 장치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피부색에 구애받지 않고 설정에 따라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 할리우드 영화의 대부분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백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암묵적으로 그렇다. 여기서부터가 차별적이다. 특수한 경우, 즉 캐릭터의 인종이 중요한 경우에만 흑인이나 동양인이 캐스팅된다. 심지어 이러한 경우에조차 백인 배우를 쓰려고 하기 때문에 더욱 비판을 받는다. 그냥 너무 당연히 백인이던 역할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은 화이트 워싱에 대항하고 인종적 다양성을 높이는 움직임이다. 애초에 백인은 미디어에서도 현실세계에서도 소수자가 아니며, 전통적인 백인 역할 몇 개를 흑인 배우가 연기한다 해도 이들이 미디어에서 지워질 걱정은 전혀 없다. 블랙 워싱을 운운하는 것은 남성 혐오를 운운하는 것만큼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원색적인 비난이다.

  다만 <트로이>가 인종 쿼터제에 대해 특히나 비난받는 이유는 이 작품이 그리스 신화와 역사를 다뤘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신인 제우스가 어떻게 흑인일 것이며 그리스 여신과 그리스의 한 지역 왕의 아들인 아킬레우스는 또 어떻게 흑인일 수 있느냐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단군신화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라틴계 배우가 환웅을 연기한다면 한국인들은 집단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에 비해 지중해를 무대로 아프리카와 교류하던 그리스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리스에서 태어난 영웅이 '순수'한 그리스인이어야 할 이유도 별로 없어 보인다.

  결국 프레임의 문제다. 아킬레우스 역을 맡은 배우는 키가 작을 수도, 클 수도, 턱수염이 있을 수도, 머리숱이 없을 수도, 매부리코일 수도 있다. 피부색이 어둡지 못할 이유도 딱히 없을 수 있다. 다만 지구 상의 인간들을 분류할 때 턱수염의 유무보다 피부색의 차이가 훨씬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즉 턱수염의 유무에 따라 한 집단이 배척당한 역사는 없지만 피부색의 차이에 의해 특정 집단이 배척당하고 소외당한 역사는 너무나 길었기에 영화 캐릭터를 어떤 인종의 배우가 연기하는가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피부색이 달리기가 빠르다거나 눈이 작다는 정도의 특징쯤으로 여겨질 때라야 이 논쟁은 끝날 것이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브리세이스의 폴리아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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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킬레우스, 파트로클로스와 브리세이스
 

  넷플릭스 <트로이>에서는 파트로클로스를 아킬레우스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부하로 설정했다. 신화에서 둘은 현자 케이론의 밑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수련하던 절친한 친구로, 파트로클로스가 핵토르에게 죽자 아킬레우스는 핵토르를 죽이고 시체를 가져와 친구의 원수를 갚는다. 영화에서는 아가멤논과의 갈등으로 전쟁에 나가지 않고 있던 아킬레우스가 친구의 죽음으로 마음을 바꿔 핵토르를 죽이러 간다는 전개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는지 이 둘을 사촌관계로 등장시킨다. 넷플릭스에서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연인이다.

  단순한 동성 연인 관계일 수도 있었던 이 캐릭터들은 브리세이스의 등장으로 복잡해진다. 트로이 인근 도시에서 잡혀온 포로인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우스와도, 파트로클로스와도 깊은 관계가 된다. 그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누구 하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세 명이 함께 사랑하면서 그로 인한 어떠한 질투나 갈등도 생기지 않는다.

  폴리아모리는 두 사람 이상을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을 의미한다.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륜의 합리화'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상호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여러 명의 사람과 함께 사랑하며 충족감을 느낀다면, 이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거나 상처받지 않는 한 비난의 여지가 없는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을 것이다. 둘 간의 아름다운 사랑이 숭고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폴리아모리는 비정상으로 취급되기 일쑤지만 결국 이 역시도 이성애 중심의 모노아모리를 디폴트로 하는 사회의 흔한 편견이다.

     
[이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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