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쉼표의 삶, 영화 리틀 포레스트 늦은 후기 [영화]

글 입력 2018.03.3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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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표와 마침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켰던 책, <언어의 온도>에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문장들이 여럿 있다.


 종종 공백(空白)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들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 이기주,<언어의 온도> 中


 그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도 이 부분은 특히나 가슴에 와닿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명확히 모르면서 무조건 달리고만 있던 나에게 앞으로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사실, 많은 사람들이 '쉼표'의 필요성에 대해 잊고 산다. 가만히 있는 것, 잠깐 쉬는 것은 도태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렇기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도 멈추기보다는 우선 하고 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돌아봤을 땐 잘못된 길로 너무 많이 와버려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을 마주하고 후회를 시작한다. 그때, 그냥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을 걸 하고.


리틀포레스트.jpg
 

 최근 개봉했던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개봉과 동시에 2030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할리우드 영화만큼 볼거리가 다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쉼표의 삶"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공백을 택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그러나 한편으로는 쉼표의 삶을 꿈꾸는 2030세대에게 <리틀 포레스트>는 간접적으로나마 쉼표의 삶을 살게 해 준 영화였다. 



"배가 고파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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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혜원은 고등학교 이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살아간다. 편의점 알바로 생활비를 벌며, 그곳에서 도시락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고, 그러면서도 임용고시 시험을 준비하는 모습이 현실 속 대학생과 너무나 비슷하다. 열심히 준비했던 임용고시에서는 떨어지고 연애도 마음대로 되지 않자 혜원은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갑작스레 돌아온 혜원을 보고 친구 은숙은 집요하게 왜 돌아왔냐고 물어본다.


"배가 고파서 왔어.
정말, 허기져서 온 건데."


 친구 은숙의 물음에 혜원은 이렇게 답했다. 은숙은 혜원의 대답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타지에서 생활을 해 본 2030이라면 편의점 도시락으로는, 밖에서 사 먹는 밥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그 배부른 허기에 대해 공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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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혜원만이 아니었다. 혜원의 또 다른 친구, 재하는 혜원보다 먼저 고향에 돌아와 과수원 운영을 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도 바로 취업에 성공했던 재하는 왜 돌아왔냐는 혜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


 분명, 나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대로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영화 속 재하는 때로는 부모님에 의해, 때로는 선생님에 의해, 그리고 때로는 직장 상사에 의해 결정 지어지는 삶을 경험했던 2030 세대 그 자체였다. 어쩌면 재하의 대사는 2030세대가 마음속에 쌓아두고 내뱉지 못했던 외침이었기에 그들이 각자만의 경험을 떠올리고 모종의 해방감을 느끼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가득 찬

 2030이 깊게 공감할 영화의 스토리도 충분한 흥행 요인이자 힐링 포인트였지만 이에 소소한 행복의 요소들이 더해져 <리틀 포레스트>는 관객에게 완벽한 힐링의 시간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
아름답고 고즈넉한 시골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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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혜원의 생활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시간을 따라 흘러간다. 혜원이 고향에 돌아가 보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에서는 종종 시골 풍경들이 비춰진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마을, 눈이 녹자 봉우리를 맺고 싹이 자라나는 봄,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열린 여름, 그리고 황금빛 벼가 물결치는 가을. 높은 건물들로 둘러싸여 표정 없이 길을 걸어 다니는 행인들로 가득 찬 도시와는 상반된 풍경들로 보는 내내 가슴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2.
정갈하고 소담한 음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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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가 고파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혜원은 매 끼니를 주어진 재료로 뚝딱 만들어 먹는다.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배추로 만든 소박한 된장국, 아카시아 꽃잎 튀김, 형형색색의 꽃들이 뿌려진 파스타 등 정갈하고 소담하지만 건강해 보이는 음식들 덕분에 영화를 보는 내내 입에 침이 고여 참 힘들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볼 수 있는 자극적인 먹방이 아닌 훨씬 건강한 먹방을 보는 것 같아 참 행복했다.


3.
씬 스틸러, 강아지 '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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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혼자 보내는 밤을 무서워 한 혜원에게 재하는 한 마리의 강아지를 안겨주고 간다.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나올 때마다 그 귀여운 모습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혜원과 점차 가까워지는 모습,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차 성장하는 오구의 모습이 영화의 포근함과 힐링을 배가하였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봐야겠다.

 시험에 떨어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처음에 자신이 고향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잠시 쉬러 온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녀에게 있어 귀향은 실패한 삶을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향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녀가 이른 결론은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봐야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인생의 실패, 마침표가 아닌 잠시 큰 숨을 쉴 수 있는 공백(空白)이자 쉼표였던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가 사실 귀농 장려 영화가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영화를 보면 무작정 짐을 싸 시골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모두가 재하나 혜원처럼 도시에서의 삶을 버리고 새로운 귀농 라이프를 즐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시골'이라는 공간에서의 쉼표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현재 존재하는 이 공간에서 우리 나름의 안식처인 우리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떠할까.

오늘은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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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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