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징주의' 유토피아를 꿈꿨던 이들의 환상 [시각예술]

글 입력 2018.03.0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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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눈』 (1890)


‘꿈’ ‘환상’ ‘비현실적’ ‘몽환’ ‘신비’, 상징주의는 이 키워드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예술 사조다. 내가 상징주의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딜롱 르동의 『감은 눈』이라는 작품을 보고나서 부터다. 눈을 감고 있는 여자는 마치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뿌연 색채로 인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이 그림뿐만 아니라 상징주의 작품들은 대부분 ‘붕 뜬 느낌’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환상의 세계를 표현한 느낌. 이처럼 상징주의가 비현실적인 성향을 띠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상징주의는 세기말의 혼란과 불안 속에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상징주의가 등장한 19세기는 격변의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는 혁명의 바람이 불었으며, 영국의 산업 혁명으로 인해 경제체제가 자본주의로 이행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인간소외와 개인주의, 심각한 빈부격차를 낳았고 노동자와 부르주아 간의 계층 싸움이 빈번히 일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 1873년부터 시작된 대불황으로 인해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보았고 사회 전반적으로 비관적이고 어두운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불안과 위기감으로 인해 환멸을 느낀 예술가들은 현실 도피적인 성향을 띠게 된다. 이들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현실 대신 내면의 세계에 눈을 돌렸다. 이러한 과정에서 프랑스 시인 장 모레아스(Jean Moréas)는 1886년에 ‘상징주의 선언’을 했다. 상징주의 예술가들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한 감각의 해방을 추구하며 인간 본연의 감정과 내재된 관념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꿈, 비현실적인 세계, 자아 세계, 죽음, 이국적이고 기괴한 것, 신비스러움에 집착했다.

상징주의 화가들은 형태가 없는 초자연적인 것에 집중하고 인간의 생사와 감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실체를 찾으려 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앞서 언급한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페르낭 크노프(Fernand Khnopff),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등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오딜롱 르동과 페르낭 크노프의 작품을 살펴보려 한다.



오딜롱 르동 (Odilon Redon, 1840-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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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딜롱 르동은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당시 상징주의 화가들은 문학과 가까이하고 문학인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 르동은 문학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표현해냈다. 그리고 ‘보이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에 집중했으며 내면의 눈으로 사물을 관찰한 다음,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만의 이상세계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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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트 에만의 초상』(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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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페가소스를 탄 뮤즈』(1900년경)  오른쪽 『터키옥색의 꽃병』(1911)


르동은 꽃의 화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비올레트 에만의 초상』과 『페가소스를 탄 뮤즈』, 『터키옥색의 꽃병』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1894년에 병을 극복한 후 낙천적인 성격을 갖게 됐는데 그 이후부터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꽃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들 작품에서는 인상주의 느낌이 나는데, 원래 르동은 인상주의자들과 같은 집단에 소속돼 있었다. 초 현실적이고 신비스러운 소재를 인상주의적인 색채와 기법으로 풀어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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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기구와 같은 눈이 무한을 향해 간다』 (1882)


그렇다고 르동이 항상 환상적이고 화려한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다. 그는 1870년에서 1880년대까지 목탄과 석탄만을 사용해서 괴이하고 어두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그려낸 자신의 작품들을 ‘검은색’이라 불렀다. 1882년에 제작된 『이상한 기구와 같은 눈이 무한을 향해 간다』를 보면 큰 눈동자가 열기구 풍선처럼 하늘을 날고 있다. 작품이 이토록 어두운 이유는 그가 어릴 적에 부모와 떨어져 지내 암울한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르동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신의 슬픈 미술의 근원이자 검은색 회화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페르낭 크노프 (Fernand Khnopff, 1858-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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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크노프는 벨기에 출신 화가다. 그는 고립적이고 몽환적인 작품들을 창작해냈다. 염세주의적인 면도 있는데 그 배경에는 크노프가 쇼펜하우어 염세주의에 영향을 받은 문학에 심취했었기 때문이다. 크노프는 내면에 집중하기 위해 여러 가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고립’을 소재로 한 이미지를 자주 그렸다. 그래서 그의 회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 이는 고립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정신세계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나르시스적인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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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문을 잠그다』(1891)


크노프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내 마음의 문을 잠그다』이다. 이 작품은 크노프의 상징주의 선언 격인 작품이다. 그는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시인 『누가 나를 구원할까』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 여인이 손으로 턱을 괴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눈에는 초점이 없다. 배경은 모호하게 표현돼 있으며 ‘잠의 신’인 히프노스 조각상만이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여인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자신의 꿈 혹은 내면세계에 빠져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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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무』 (1896)


크노프 작품에는 같은 여인이 계속 출현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인은 크노프의 동생 마그리트다. 항간에서는 크노프가 자신의 여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1896년 작인 『애무』에는 오이디푸스와 함께 사람의 얼굴과 표범 몸을 가진 스핑크스가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 마그리트가 등장한다고 하는데, 사실 스핑크스가 마그리트인지 오이디푸스가 마그리트인지 난 정확히 모르겠다. 작품을 살펴보면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를 안으며 사랑을 느끼고 있고 오이디푸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다. 정확히 알 수 있는 점은 크노프가 마그리트를 정말 아꼈다는 것과 그가 그리스 신화와 이집트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내세적이며 사후세계에 관심이 많았으니 크노프도 이집트 문화를 흥미롭게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상징주의의 대표 화가인 오딜롱 르동과 페르낭 크노프의 작품을 살펴봤다. 이들은 문학과 경험에서 얻은 영감 그리고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냈다.
 
상징주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황홀해지지만, 동시에 당시 사람들의 불안과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예상되기도 한다. 인간은 삶이 힘들어지면 스스로 고립돼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위안을 얻기 위해 쾌락에 빠져 황홀함에 취하려 한다. 실제로 19세기 말에는 마약과 최면술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상징주의자들은 작품을 통해 자기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상징주의 화가들이 세상과 단절돼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건 자신이 만든 유토피아에서 벗어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내면세계는 냉정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휴식처였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내면을 표현한 작품은 지금까지 사람들의 황홀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참고자료>

정연심, 「페르낭 크노프(Fernand Khnopff)의 작품에 나타난 벨기에 상징주의와 내셔널리즘」, 『한국미술이론학회』 제 9호, 2010.
김재원, 「그로테스크의 시각적 알레고리에 관한 연구-19세기 말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디자인포럼』 제 17호. 2007.

김효정, 「19세기 회화에 나타난 상징성 연구」, 강릉원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 2010.
김소라,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1860-1949)의 회화에 나타난 풍자적 특성 : 1900년 전후의 작품을 중심으로」, 영남대학교 대학원 석사 논문, 2004.
황성림, 「페르낭 크노프(Fernand Khoopff) 미술세계에 나타난 나르시스적 자아탐구」 영남대학교 대학원 석사 논문, 2003.
 
네이버 지식 백과 화가의 생애와 예술세계 오딜롱 르동 편, 2011년 3월 4일 자




[정바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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