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계는 어디서나 똑같이 흐른다 [여행]

그럼에도, 우린 여행한다.
글 입력 2018.02.2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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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행 #daily #일상


우리는 너무나도 핸드폰에 익숙해 있다. 맛있는 음식이 나왔다. 정말 불과 6년 전까지도 우리는 바로 숟가락을 들고 먹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음식을 헤쳐놓는 순간, 같이 먹는 사람 중 누군가는 짜증을 낸다. 야 잠깐 기다려, 사진 찍게! 음식 사진을 찍고 세상 행복한 척, 근심 걱정 없는 척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먹스타그램 #daily #일상 #맞팔 등등. 점점 하트 수가 올라간다. 기분이 좋다.

나는 이런 현상이 먹는 것뿐만이 아니라, 여행에도 적용된다 생각한다. 대게 처음 해외여행을 할 때 그렇다. 무언가 궁금한 게 있을 때 네이버에 검색해서 가장 상위에 뜨는 항목들을 믿는 것처럼, 처음 여행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 유명한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런 곳에 가야지 나 자신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2. 홍콩, 어쩌면 소중한 여행이 되다.

나도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홍콩여행을 갔을 때 유명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혼자 홍콩역 주변을 세시간이나 헤매고 다녔다. SNS에서 유명한 제과점을 가기 위해 굶주린 채로 한 시간을 걸었다. 막상 가보니, 너무 힘들어서 인지 소위 말하는 '감흥'이 없었다. 나는 그냥 수많은 관광객 중 일부였고, 그들 틈 사이에서 새로 산 미러리스로 셔터만 눌러대고 있었다. 웃기게도 모든 언어를 동원해가며 도착한 홍콩의 명소 빅토리아 피크는 내가 간 날 안개가 끼어있었다.

힘이 쫙 빠졌다. 즐거움보단 외로움이 커졌다. 그런데도 가끔 SNS에는 '나 혼자 여행다니는 사람이다' 광고를 하며 사진을 올려댔다. 도대체 누굴 위한 여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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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진기를 잠깐만 내려놓고, 사람들을 느껴라.

몇 일 뒤, 나는 바로 일본으로 출국했다. 오사카에 도착했다. 우메다 역 쪽에 숙소와 3박 4일이었다. 솔직히 한 번의 여행 후, 한국에서 쉬고 싶었기 때문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무계획으로 집을 나섰고, 결과는 의외로 대성공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 누가 정해주는 대로가 아닌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을 찍었다. 연결편을 계산해서 요리조리 이어붙이고 길을 나섰다. 우메다에는 관광객보단 일본 회사원들이 많다. 아침에 길을 나설 때, 주변 맛집이 아닌 회사원들이 모인 지하의 작은 덮밥집을 갔다. 나는 그 식당에서 혼자 정장이 아닌 사복을 입었고, 혼자 일본말로 얘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처음엔 무서웠다, 나를 어떻게 볼까? 하지만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아 나도 짧은 여행이지만 이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왔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일본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삼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갔던 '츠유텐 신사'를 잊지 못한다. 우메다엔 좋은 신사들이 있지만 스카이 빌딩이나 헵파이브 같은 유명한 관광명소에 가려져서 빛을 못 본 신사들도 많다. 시장 끝 쪽에 위치, 차들이 다니는 도로 앞, 주변엔 수많은 높은 빌딩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 도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츠유텐 신사의 입구는 온몸으로 날 환영해 주기라도 하듯 아름다웠고 벚꽃이 활짝 피어 분홍빛으로 물든 내부는 내가 다녀왔던 여행지 중에 가장 최고였다. 신사에 들어서니 늦은 저녁이었지만 가족 단위로 온 일본인들이 많았다. 꼬마아이들과 아버지가 한뜻으로 손을 모아 신사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은 어쩐지 나를 벅차오르게 했다. 그냥 그렇게 목에 맨 사진기를 잠깐 내려놓고 신사를 걸으면서 들리는 주변 술집의 술 취한 일본인 아저씨의 말소리, 까르르 달리면서 좋아하는 어린아이들의 목소리, 중년 아주머니의 나긋한 말소리를 느꼈다. 참 좋았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가 낯선 곳에 있다는 부드러운 떨림들이.

최근에 김동영 작가의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라는 페이지가 있었다. 여행작가인데, 왜 사진을 찍지 않을까? 작가도 여행하면서 사진을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정작 다른 걸 놓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보단 조금 더 멀리 떨어져 한 동네에 머물며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결국 어디, 어디를 갔다는 것은 자기만족이며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긴 기다림 끝에 모나리자를 봤을 때. 작가는 만족감보단 허무함이 더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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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럼에도, 우린 여행한다.

이런 경험이 있다. 동생과 교토에 갔을 때의 일이다. 비행기를 타야 돼서 리무진 버스 정류소 시간이 마감되어 JR을 타야 했다. 나는 일본 여행을 여러 번 왔지만, JR은 처음이었다. 역 안내원은 내가 일본어로 매표소가 어딘지 물으니 일본어로 대답하는데, 알아 들을 리가 있나. 모르겠다 했더니 나중엔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거다. 순간 너무 서러워서 그냥 나와버렸다. 어떻게 또 매표소는 찾아가서 표를 사고 탑승구로 가는데 중간에 몇 번 헤매었더니 시간을 놓친거다. 그렇게 달렸는데. 못 태워준다며 냉정하게 쉭 가버리는 사람들이 미웠다. 추운데 40분이나 더 기다리란다. 비행기 시간은 다가오는데. 기차를 탄 순간에도 조마조마했다. 동생은 옆에서 자고 있는데 나 혼자 입이 바싹바싹 말라갔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 진짜 그냥 여행 안 다니고 한국에 있어야지. 말 통하고 익숙한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행을 하는 중이다. 여행한다는 건, 그런 익숙함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이다. 교토에서 느낀 낯선 감정들이 나를 지치게 했지만, 그때는 잠깐. 우린 다시 익숙함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럼 그때의 낯선 감정들은 하나의 배움 혹은 익숙함 속의 작은 돌파구가 된다. 이렇게 여행할 때마다 쌓여가는 마음속의 작은 돌파구들 때문에 계속해서 여행하는 건 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있듯, 여행도 그렇다. 주요한 관광지를 가고 맛집을 가고 사진을 남기는 게 중요한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난바 거리에 갔을 때 유명 라멘 집 앞에서 길게 웨이팅하는 줄에 서는 사람들. 하지만 나는 한 번쯤 당신이 길 걷다가 냄새가 좋은 라멘집에 선뜻 들어가는 사람이 되어보기를 권한다.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은 스카이빌딩에서 야경을 찍는것 보다 근처 조그만 신사에서 눈을 감고 그 나라 사람들의 목소리를 느껴보기를 권한다. 우리도 우리의 시계가 흐르고 공기가 머물듯, 똑같이 굴러가는 시간 속 당신도 그 나라만이 가질 수 있는 공기를 느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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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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