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이야기] 내가 믿는 세상

여섯 번째 이야기, '나니아 연대기'
글 입력 2018.01.3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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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문을 열면서 혹시 다른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한 번이라도 기대를 해 봤다면 당신은 나니아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나니아 연대기' 는 C.S.루이스가 쓴 일곱 권의 판타지 동화이다. 현실에 사는 아이들이 '나니아'라는 환상세계에서 겪는 모험을 그린 이 시리즈는 판타지 소설 얘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유명한 작품이다. 나니아는 물론 가공의 공간이지만 작품 속에서만큼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처럼 나름대로의 규칙이 있고 그 규칙에 맞게 돌아가는 엄연히 독립된 하나의 세계이다. 나니아 '연대기'라 불리는 이유 역시 나니아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적인 모험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나니아가 탄생할 때부터 멸망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니아에서 정신적 뿌리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아슬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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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의 형상을 한 아슬란은 '나니아 연대기' 전편에 걸쳐 등장한다. 나니아의 탄생을 그린 <마법사와 조카>에서는 노래를 불러 나니아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사자와 마녀와 옷장>, <말과 소년>, <캐스피언 왕자>, <새벽 출정호의 항해>, <은의자>에서도 위기의 순간에 등장해 도움을 준다. 나니아의 사람과 동물들은 아슬란의 존재를 의심하고 어리석음과 탐욕에 빠져 죄를 짓기도 한다. 하지만 아슬란은 그때마다 그들을 용서하고 구원한다. 심지어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는 모두를 배신한 에드먼드를 대신해 죽음을 맞고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니아 백성들에게 아슬란은 '사자 갈기에 맹세코', '아슬란 님의 이름을 걸고' 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할 정도로 신성하고 위대한 존재이다. 나니아의 창조주이자 구원자인 아슬란은 여러 방면에서 성경 속 하느님이나 예수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작가 C.K.루이스는 독실한 성공회 신자였고, <순전한 기독교>, <예기치 못한 기쁨>과 같은 기독교 서적을 출판한 바 있다. 게다가 국내에 번역된 <나니아 연대기가 읽어주는 성경>이라는 책을 비롯해 나니아 연대기에 녹아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분석한 자료도 흔하다. 그러니 작중 아슬란이라는 존재와 그를 향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아슬란에 대한 믿음은 나니아의 멸망을 그린 <마지막 전투>에서 절정을 이룬다. 가짜 아슬란이 등장하고 거짓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니아를 비롯한 세계 전체는 멸망한다. 이때 숱한 거짓말 속에서도 끝까지 아슬란을 믿었던 이들은 아슬란이 '진짜'라 부르는 그의 세계로 넘어가 영생을 누린다는 게 <마지막 전투>의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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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 또는 그림 너머에 존재한다는 이 환상의 세계는 어린시절 나를 설레게 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두 번째 충격은 그 일꾼들이 금발의 나니아 사람들이 아니라, 아첼랜드 남쪽 사먹 너머의 잔인한 날로르멘 제국에서 온 얼굴이 검고 턱수염을 기른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
<마지막 전투>, 35쪽

칼로르멘 사람들은 타슈 신을 신봉하고요. 그들한테는 타슈 신이 있어요. 타슈는 팔이 네 개에다 머리는 독수리 모양이래요. 칼로르멘 사람들은 타슈의 신전에서 인간을 죽여요. 저는 타슈 같은 신이 실제로 있다고 믿지 않아요.
<마지막 전투>, 50쪽

그 사람들은 기다랗고 꾀죄죄한 옷에 신발코가 뾰족하게 올라온 나막신을 신고, 머리에는 터번을 두른 채 턱수염을 늘어뜨린 꼴로 하릴없이 시시껄렁한 잡담만 늘어놓았다.
<말과 소년>, 12쪽

"괴물아 떠나라, 네 합법적인 포로를 데리고 원래 있던 곳으로 가라. 아슬란과 아슬란의 위대한 아버지 바다 황제의 이름으로 명한다."
<마지막 전투>, 185쪽


대표적인 예로 '칼로르멘'을 들 수 있다. 나니아의 주요 적국인 칼로르멘의 사람들은 아슬란을 믿지 않고 '타슈'라는 그들만의 신을 섬긴다. 타슈는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다니는 괴물로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작품 내에서 칼로르멘인은 대부분 탐욕스럽고 잔인한 모습이다. 여기까지는 판타지 소설 속 선악구도를 만들기 위한 장치를 볼 수 있지만 작품에서 칼로르멘 사람들은 검은 피부와 검은 턱수염을 지니고 터번을 쓰며 언월도를 가지고 다니는 반면 나니아 사람들이 흰 피부와 금발을 가진 모습이다. 시대가 20세기 중반인 것을 감안해도 작가가 현실에서 자신과 다른 민족과 문화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투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처음 나니아가 시작될 때 아슬란의 선택을 받은 동물들과 그렇지 않고 나니아 바깥에서 사는 동물들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과 거의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받지만 후자는 그저 사냥감이 된다.

아슬란은 자비로운 존재로 그려지지만 <마지막 전투>속 멸망하는 세계 속에서 아슬란에게 구원받을 수 있었던 건 그를 믿었던 이들뿐이다. 예외적으로 구원된 칼로르멘의 한 젊은이는 '칼로르멘 사람답게 가무잡잡하고 거만한데도 아름답게' 보인다고 서술되어 있다. 더불어 타슈 신에 대해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는 그 젊은이에게 아슬란은 사악한 정성은 타슈를 섬기는 방법이고 선한 정성은 자신을 섬기는 방법이니 젊은이의 진실한 맹세는 타슈가 아닌 자신을 향한 것이라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타슈 신과 타슈를 향한 젊은이의 신앙심을 왜곡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니아 연대기가 재미도, 가치도 없는 작품이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아슬란을 믿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바라보는 이분법적인 시선, 그리고 아슬란을 믿지 않는 자들이 현실의 중동이나 아시아인의 외양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는 게 못내 찝찝했다. 아슬란을 믿는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원하고 믿음을 되찾아 준다는 시리즈 전체의 주된 서사 역시 일종의 선민의식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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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가 단순히 환상을 나열할 뿐이라면 문학으로서의 가치는 없었을 것이다. 판타지 소설이 오랫동안 널리 읽히는 까닭은 어떤 포장지를 씌웠느냐의 차이일 뿐 모두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C.S.루이스는 나니아라는 세계를 통해 자신이 믿는 세상, 자신이 보는 세상을 투영했다. 그 세상 속에는 전지전능하면서도 선한 절대자가 있고 그는 자신을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나니아에서 답을 찾는 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아슬란으로부터 응답을 받는다. 그런 관점에서 나니아는 낙원이다. 현실에서 종교가 그러하듯, 나니아에서 아슬란의 존재는 나니아 전체를 하나로 모으고 사회가 안정되도록 돕는다. 나니아에 사는 이들은 모두 나니아가 축복받은 땅이라 생각한다. C.S.루이스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낙원은 아슬란을 믿지 않는 자들을 철저히 제외함으로써 실현되고 유지된다.

같은 시공간 속에 있을 때에도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프레임을 통해서 서로 다른 세상을 본다.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하는 건 그 때문이다. 프레임을 구성하는 건 다양하다. 나니아의 아슬란처럼 종교일 수도 있고 타고난 조건이나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성장하며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눈을 가지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견고해지는 프레임은 우리가 보는 세상을 한층 안정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그 프레임 바깥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니아에서 그랬듯이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나온 것들은 손쉽게 악당의 역할을 맡는다.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법을 모른다면 우리는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적으로 돌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늘날 만연한 갈등과 혐오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보기 위한 프레임이 오히려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는 낙원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각자 자신이 믿는 세상을 의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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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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