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자연 앞에? 자연 속에! – 도서 ‘다르면 다를수록’ [문학]

글 입력 2018.01.2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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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라는 감정은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지식을 쌓을수록, 이유가 있으면 있는 대로, 이유가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는 선을 긋는데 익숙하다.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만 그 생각을 유지하며 타인을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자기 분야에서 시간과 지식을 동시에 쌓아가며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지식인들이 겸손의 자세를 갖기란 더 어려울 것 같다. 오랜만에 겸손의 자세가 돋보이는 글을 읽었다. 우리나라에서 생태학자로 손꼽히는 지식인의 글이 이리도 겸손하다는 자체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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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예전에 자연 생태 조사를 하던 중 참으로 반갑게도 반딧불이를 발견한 적이 있다. 그 지역에서 반딧불이가 관찰된 지 너무도 오랜 터라 밤새도록 그들의 군무를 올려다보며 즐거워했다. (중략)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초록색 불빛을 반짝이는 그들이 너무도 소중했기에 나 역시 입을 다물기로 했다. 학자로서 할 일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학문도 그들이 살고 난 후에야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마음의 눈을 슬며시 감아 버렸다.

- 본문 43p, ‘숨겨주고 싶은 자연’ 중에서


그가 겸손한 이유는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내가 해야 하는 일이 겹쳤을 때 사랑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학자로서 주목할 만한 발견을 자연을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 감추었다는 사실은 저자가 무엇을 우선시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기에 연구하는 학자이지, 자신이 연구한다는 사실을 공표하기 위해 활동하는 학자가 아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져서 그를 지금까지 움직여왔다. 그렇기에 그는 겸손할 수 있다. 자연을 진심으로 아끼기에, 사랑하기에.
 
자연 앞에 겸손한 필자가 단호하게 대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그 종들이 이루고 있는 사회에 대해, 사회에 만연한 관습과 제도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다. 사랑하는 ‘자연(自然)’이 그에게 보여준 너무도 ‘당연(當然)’한 것들을 멀리하는 인간들이 그의 눈에는 너무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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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세워 놓은 높은 생활 수준에 맞추려 밤낮없이 일해 땔감을 버는 동물이 인간이라면 없으면 없는 대로 조금 덜 먹고 덜 쓰는 동물이 바로 뱀이다. (중략) 뱀은 느림과 절제의 미학을 일찍부터 깨달은 동물이다. (중략) 맞아 죽을 얘기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죽었다 깨어나도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없다. 물론 전국민이 악착같이 덤벼들면 강대국 대열 저 뒷자리쯤에는 낄 수 있을지 모른다. 국민 대부분이 평생 10년 이상 병치레를 하면서 말이다. 우리가 뭘 그렇게 가진 게 많다고 미국이나 중국과 어깨를 겨루려 하는가. 덴마크나 네덜란드처럼 작지만 삶의 질이 높은 그런 나라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중략) 개인적으로 나는 뱀이 내 귀나 핥아 주길 기원한다. 인류 최초의 예언자 멜람포스가 어느 날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자다 뱀이 귀를 핥자 홀연 온갖 동물들이 저희끼리 나누는 말들을 알아 듣게 되었다 한다. 동물 행동학자가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 본문 192 ~ 195p, ‘느림과 절제의 미학’ 중에서

 
그가 인간에게 엄격한 것은 인간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을 안타까워하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존재에게 배우면 좋을 것들을 정성스럽게 소개해주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알량한 지성을 바탕으로 만물 위에 군림하면서도, 그들보다 못할 때가 많다. 나눌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르고, 함께할 줄 모른다. 생물다양성을 헤치는 유일한 종인 인간이 자연에게 뒷덜미를 채일 날이 멀지 않았을지 모른다.
 
환경보호에 관심이 없는 인간이라면, 경제적인 측면도 외면할 수 있을까? 첨단 기술의 한 쪽에 IT가 있다면, 다른 쪽에는 생명과학이 있다. 줄기세포, 인간 복제 등 도의적 논란과 함께 경제적 효과 역시 불러올 기술은 당연히 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우선되어야 한다. 책은 한 쪽에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과학자답게 필자는 다양한 자연의 모습으로부터 주목할 만한 점을 발견해내고, 다양한 인간의 어두운 면을 들춘다. 자신이 사랑하는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지식인만의 시선이 빛난 책이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글의 제목을 “자연 앞에 겸허한 자세로”라고 붙였었다. 그러다가 글을 써 나가던 도중에 “자연 속에 겸허한 자세로”라고 바꿨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감히 자연 앞에 건방지게 설 수 있겠는가?

- 본문 98p, ‘자연 속에 겸허한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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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마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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