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랑'하는' 우리는 끝 마칩니다

글 입력 2018.01.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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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는 끝 마칩니다
_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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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있다 당신이 있다 나는 당신의 머리칼에서 마른 나뭇잎을 떼어준 적이 있었다 당신에게 새 이름을 지어준 적도 있었다 지은 그 이름을 잊었지만 나는 당신이 눈앞에 없을 때 허공에서 당신의 얼굴을 골라냈다 그것은 너무 쉬웠다 나는 당신 없는 허공을 당신으로 채워 넣는 청동 시계를 눈동자 안에 지니고 있었다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당신과 사랑을 했다

축복은 무엇일까 당신이 나를 부를 때 생기는 귓속의 부드러운 압력일까 내 주위에 언제나 나를 좋아하는 바람이 분다는 것일까 당신은 나의 축복일까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나는 당신을 소유한 적이 없다

심보선 『오늘은 잘 모르겠어』, 「축복은 무엇일까」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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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한여름에 시작한 임무는, 그 누구에게도 호명받지 않았고, 그 누구로부터도 떠맡겨지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뒷덜미를 잡힌 거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기껏해야 몇 권의 책,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에 기대어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사랑의 거대 서사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임무를 떠맡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이야기들이 꿈틀꿈틀, 너에게, 당신에게, 그대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쬐끔 들었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몇몇의 사람들은 고맙게도 나의 이야기에 이따금씩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풀어나간 이야기들이 미숙하고 어리숙한 마음들로 누군가에겐 전해졌을 거다. 너를 사랑함에서 시작해 사랑하는 아픔, 서로 다른 하나의 세계에서, 사랑하는 우리의 친밀한 언어, 그리고 사랑의 슬픔. 또는 함께 허무는 사랑의 세계.

글을 시작할 때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꽤나 많았다. 내 연애는 언제나 복잡하고 미묘해서 한 번 쯤은 사랑에 대해 호들갑도 떨어보고, 한 껏 심오하게 취해보고 싶었다. 사랑하는 일이 대체 어떤 일이기에 나는 이다지도 힘들었을까. 어쩌면 그저 나 한 사람의 마음이 하도 널뛰어서 제발 진정 좀 하라는 바람에서 시작하였는지도 모른다. 한 편의 글을 쓸때에 수없이 많은 사람과 이야기와 오만가지 감정들이 떠오르면 나름대로 최선의 언어를 고르는 일은 어려웠다. 차분하고 침착하게 가장 적절한 언어를 고르고 단정한 문장을 짜고. 나의 그대들에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나의 사랑은 이런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대개는 불가항력의 것들이었다. 어쩔 도리가 없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누군가는 사랑이라 부르던데, 혹시나 그대들은 나와 같은 마음인지 궁금했다.

사랑에 대해 나와 이야기 나눠준 친구 자매들은 앞으로도 나와 함께 사랑 뭘까, 라며 궁시렁궁시렁, 가물가물 해 대겠지. 그들이 있어서 나의 제 2의 칼럼기가 또 다른 이름으로 시작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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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추운 겨울. 요즘의 나도 여전히 사랑에 관해서는 영 어물쩡거리기나 한다. 이런 마음은 어떤 마음이더라, 이렇게나 울적할 수도 있구나. 여전히 200년쯤 수련을 거듭한 사랑의 도사가 명쾌한 대답을 내려줬으면 싶은 마음이고, 나빼고는 다들 쿨해보이고. 확 다 때려칠까 싶다가도 난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노예였지 라고 자조하기도 하며.

사랑에 관해서 더 알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투명한 미래에 모든 것을 걸어보고 싶다. 그간의 12개의 짧고 미숙한 글들을 나중에 슬쩍 꺼내볼 때에는 ‘애송이 자식~’ 이렇게 말하며 훨씬 성숙한, 보다 열정적인, 겁내지 않는 나였으면 싶다.

죽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는 끝 마칩니다.



* 그림은 영국의 화가 제프 롤런드(Jeff Rowland)의 그림입니다. 


[양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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