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연상호표' 사회 고발 애니메이션, 사이비 [영화]

글 입력 2018.01.0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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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업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실사 영화계와 달리, 한국 애니메이션은 아직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다. 그러나 이 '불모지'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감독이 있다. 바로 2016년 '부산행'으로 대중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연상호 감독이다.

'부산행'은 '서울역'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제작된 그의 첫 실사 영화로, 대중적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은 2011년 '돼지의 왕', 2012년 '창', 2013년 '사이비', 2016년 '서울역'에 이르기까지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이미 독보적인 존재감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여느 작품과 비교할 수 없는 독창성과 강렬한 스토리로 유명하다. 특히 사회 문제-'돼지의 왕'에서는 학교, '창'에서는 군대, '사이비'에서는 종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영화 그 이상의 메시지를 던진다. 여기서는 '사이비'를 중심으로 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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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이렇다. 댐 건설 계획으로 수몰예정지역이 된 한 시골마을에 교회가 새로 생긴다. 사기꾼 장로는 기적을 빙자해 주민들의 보상금을 갈취하고, 순진한 목사는 그를 돕는다. 그들의 정체를 아는 것은 마을의 문제적 인물인 주정뱅이 폭군 '김민철' 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려고 하지만 '악인'으로 찍힌 그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은 없다. 점점 더 광신도로 변해가는 주민들과 그를 막으려는 민철, 은폐하려는 사기꾼들의 갈등이 점점 치닫는다.

필자는 영화가 크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고 보았다. '믿음', 그리고 '악'이다.


#믿음

주민들은 몸을 낫게 해주고, 천국을 보내주겠다는 교회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자신의 재산과 몸을 다 바친다. 논리적인 사고가 멈춰버린 듯하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이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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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제각기 오랫동안 한 맺힌 삶을 살아왔다. 가정폭력, 가난, 병에 시달리는 처절한 삶이다. 마을마저 곧 사라질 처지에, 희망과 기쁨을 찾을 수 없는 이들의 아픔을 교회는 영리하게 건드린다. 삶의 가장자리에 내몰린 사람들은 '하느님만 믿고 따라오라'는 말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불행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절박함은 믿음이 되고, 의심 없는 믿음은 곧 광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무비판적 믿음은 사이비 종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아무런 의심과 성찰 없이 무언가를 받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을 잃게 된다. 나와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는 없어지고 타자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만 남는 것이다.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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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다. 아내와 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딸의 대학자금을 훔쳐 도박에 쓰는 '민철'은 누가 봐도 악인이다. 그러나 그는 영화 내내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반면 선한 것처럼 보였던 인물이 어느새 잔인한 범죄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영화는 인간이 어떻게 변하고, 악을 저지르는지 숨가쁘게 묘사한다. 충격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전개는 관객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사회적 문제 속에 깃든 인간의 폭력성과 욕망을 통찰하는 감독의 시선이 날카롭다.

*

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모든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쉽지 않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대한 치열한 물음과 비판을 마주할 수 있는 값진 영화다. 사회 고발 애니메이션이라는 그만의 색깔을 담은 다음 영화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박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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