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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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바쁜 나날 속에서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현대인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이 1년 동안 마시는 커피는 377잔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에 커피를 한 잔 이상 마시는 셈이다. 카페도 호황이다. 달달한 커피 믹스도 좋지만 깊고 진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은 카페를 찾는다. 그렇다고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가는 것만은 아니다. 카페는 언제나 그렇듯 ‘소통의 장’이다. 지인과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은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최근에는 아기자기하게 꾸민 카페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사람들은 카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주고받는 것은 오늘날만의 풍경이 아니다. 옛날부터 커피가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근대 시기에 처음으로 전파된 커피는 모던의 상징이었으며 지성의 음료였다. 유럽 사람들은 카페 하우스에서 정치·사회·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발전된 사회를 꿈꿨다. 영국에서는 민주주의 꽃인 투표가 카페에서 이뤄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커피를 취급하는 다방이 처음 생겨났다. 많은 문화예술인이 다방 경영에 뛰어들었으며 다방은 문화예술인들이 소통하는 아지트이기도 했다.



■ 커피의 기원과 유럽 최초의 카페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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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를 처음 마신 곳은 에티오피아다. 약 3000년 전부터 에티오피아의 오로모족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가 전파되어 7세기경부터 아라비아의 예멘에서도 커피가 재배되었다. 15~16세기에는 예멘이 세계 커피 공급지가 됐다. 당시 예멘에서는 초콜릿 향이 나는 커피가 재배되었는데, 이 원두로 만든 모카커피의 수요가 늘어나자 상인들은 그냥 커피에 초콜릿을 섞어 모카커피라고 속여 팔기도 했다. 이러한 사기행위는 보편적인 관행이 됐는데 카페에서 파는 카페모카가 그러하다.

  커피는 원래 에티오피아에서 ‘분카’, ‘분쿰’이라고 불리다가 12~13세기에 이슬람 수도사 수피에 의해 ‘카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카와는 ‘욕망을 없앤다’라는 의미가 있다. 수피들은 커피가 식욕을 억제해준다고 생각했다. 이후 유럽에 커피가 진출하며 그 용어가 바뀌었는데, 카와에서 ‘커피’, ‘카페’로 바뀌었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카페라는 용어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싶다. 유럽에서는 커피를 파는 곳을 커피 하우스, 카페 하우스라고 불렀다. 카페 하우스에서 착안하여 지금의 커피 전문점을 카페라고 부르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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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카페 하우스는 1647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처음 생겼다. 16세기 베네치아 인들은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펼치면서도 그들과 교류를 꾸준히 했는데, 이때 커피가 들어온 것이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음주 금지령을 내렸고 사람들은 커피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훗날 산마르코 광장 주변에 카페 하우스 지역이 생겼는데, 세워진 카페 하우스 중 몇 곳에서는 도박이 성행하기도 했다. 이후 카페 하우스는 이탈리아 전역에 생겨났다. 이때 카페 하우스 주인들은 카페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데 집중했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벽에는 예술적인 회화를 걸어놓았다. 식기류도 순수 도자기 제품이나 은으로 된 제품을 사용했다. 그렇다고 카페가 상류층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하층민도 드나들 수 있는 모든 이들의 공간이었다.



■ 혁명에도 기여한 카페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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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 상인들은 커피를 유럽에 전파했다. 그리고 유럽의 두 번째 카페 하우스가 1650년 영국 옥스퍼드 지방에 생겼다. 그로부터 2년 후 레판트 무역회사의 상인인 에드워즈가 소아시아 커피 맛에 반해, 자신에게 커피를 타주던 파스쿠아 로제와 함께 런던에 카페를 열었다. 파스쿠아 로제의 카페 하우스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본 많은 사람이 커피 사업을 시작했다.

  로제의 카페 하우스가 성공한 원인은 그 당시 커피가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커피를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사 마셨다.

  영국인들은 카페 하우스에서 토론과 투표를 벌였다. 카페 주인들은 사람들의 원활한 토론을 위해 정치·사회·문화 등의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이 정보들을 모아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카페하우스는 영국 사람들에게 중요한 정치적 장소였으며, 민중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후 런던 정부에서 카페가 과격분자의 소굴로 변할 것을 우려해 카페 하우스를 폐쇄하도록 명령했지만, 시민들은 정부를 거세게 비난했다. 결국, 카페 하우스는 폐쇄되지 않았다.

  카페 하우스는 1페니만 지급하면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었다. 이곳은 신분의 귀천 없이 대화를 나누는 공론의 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남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당시 영국의 카페하우스는 남자들의 아지트였다. 그 때문에 영국 여성들은 남성들만의 카페 문화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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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프랑스는 달랐다. 프랑스에서는 남녀 모두가 카페를 자유로이 이용했다. 프랑스는 늦게 커피를 접했다. 커피가 들어온 초창기에는 상류층만 커피를 먹을 뿐, 대중들에게 커피는 그다지 인기 있지 않았다.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1689년 프랑스 국립 극장 옆에 카페 하우스가 생겼고 그때부터 커피와 카페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카페는 프랑스에서도 정치적으로 중요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계몽주의와 사회에 관해 얘기하며 변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특히 프랑스 카페 중 '카페 드 포와‘는 급진파 지식인들의 집합장소였다. 이들은 카페 드 포와 앞에서 시민들에게 무기를 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들의 행위는 곧 데모로 번졌고 혁명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 문화예술인들이 사랑했던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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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는 커피가 서양에 문호 개방을 하면서부터 들어온다. 당시에는 커피를 ‘가비’라고 불렀다. 고종이 커피 애호가인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프랑스 태생의 독일인 손탁이 고종에게 커피를 진상했고 고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신 사람으로 기록됐다.

  1914년에는 조선호텔이 건립됐는데,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이 있었다. 커피를 전문으로 파는 다방은 1923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일본인이 충무로 3가에 ‘후다미’라는 다방을 열었다. 후다미를 기준으로 많은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다방을 차렸다.  그 당시 다방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커피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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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손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방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종로에 생겼던 ‘카카듀’가 한국인이 운영했던 첫 다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이었던 이경손이 1927년에 만들었으며,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한 다방이었다. 이후 카카듀는 1930년대 다방의 모델이 되었고 이를 보고 많은 문화예술인이 다방 경영을 시작했다. 영화배우 복혜숙이 ‘비너스’ 다방을 만들었고 카카듀가 사라진 후 종로 2가에는 ‘멕시코’ 다방이 생겼다. 멕시코는 다방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한 곳이다. 그 전까지 다방은 끽다점으로 불렸다.

  문화예술인들이 창업한 다방은 자연스럽게 문화인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1930년대에는 다방이 젊은이들의 메카였으며 사람들은 사교·소일·데이트·음악 감상을 위해 다방을 찾았다. 또한, 다방은 화랑(畫廊)의 역할을 했으며 사람들끼리 메모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53년에는 음악 전문 다방이 처음 생겼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쎄시봉’ 다방이다. 조영남, 송창식, 양희은 등 많은 가수가 쎄시봉을 통해 데뷔했다.



■ 퇴폐적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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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도 카페가 존재했다. 1920년에 카페가 처음 등장했는데, 지금의 카페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당시 카페는 환락적이고 퇴폐적인 공간으로 오늘날의 유흥업소와 비슷했다. 커피가 아닌 술을 팔았으며, 여급들이 남성들의 시중을 들었다. 우리나라의 카페가 유럽의 카페와 달랐던 이유는 카페가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1911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카페를 열었으며, 그곳에는 시중들어주는 여자 종업원들이 있었다. 일본의 영향으로 당시 우리나라에도 여급이 시중을 드는 카페가 생긴 것이다.

  당시 많은 여성이 카페의 여급이 됐다. 다른 직업에 비해 급여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급들의 보수는 불안정했고, 카페는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이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술집으로서의 카페는 1940년대 이후부터 없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다방과 카페의 이미지는 완전히 뒤바뀐다. 1980년대부터 티켓다방이 생기면서 다방은 퇴폐적인 이미지로 굳어지고 말았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에도 스타벅스 등 커피 전문점이 생겨났고 다방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됐다. 하지만 최근 복고 열풍으로 다시 다방이 문을 열고 있다. 복고다방은 신세대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기성세대에게는 옛 추억의 향수를 선사해주고 있다.





  카페 하우스와 다방은 당대 모더니스트들이 사랑하는 문화 공간이었다. 지금까지도 카페는 휴식처가 되어주고 영감을 준다. 요즘에는 만화카페, 수면 카페, 갤러리 카페 등 이색 카페들이 생기고 있다. 앞으로도 카페의 변신은 무한할 것이며, 카페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을 것이다.




[참고자료]
'커피를 포기할 수 없다면 아메리카노 대신 이것', 헬스조선, 2017년 11월 20일자

[참고문헌]
정기문, 『역사학자 정기문의 식사』, 책과 함께, 2017.
장유정,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살림출판사, 2008.
볼프강 융거, 채운정 옮김, 『카페 하우스의 문화사』, 에디터, 2002.
이정학, 『가비에서 카페라떼까지』, 대왕사, 2012.
가브리엘라 바이구에라, 김희정 옮김, 박종만 감수 『커피&카페』, 도서출판 예경,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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