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쇼윈도우에 갇힌 맥베스

글 입력 2017.11.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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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쇼윈도우에 갇힌 맥베스


맥베스, 잠을 살해하고 절대권력을 얻은 사람의 이야기. 누군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대해 한 줄로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필자는 위와 같이 설명할 것이다. 죽은 왕과 뱅코우의 환상 속을 헤매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맥베스의 모습은 필자에게 큰 감명을 주었고, 고백하자면 이 연극에서도 그것을 기대했다. 연극을 다 보고 나와 글을 쓰는 지금 연극 <맥베스>는 필자가 원작과 읽었던 것과 조금 다른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인간 자체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면 연극 <맥베스>의 맥베스는 현대사회에서도 그 얼굴의 굴곡이 느껴질 정도의 리얼리티를 제공한다. 그것은 내가 앞서 PREVIEW에서 기대했던 실존주의를 넘어선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군상에 대한 냉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중세시대 왕권이라는 절대권력이 욕망이 최종점이라면, 현대사회의 욕망에는 끝이 없다. 내가 바라본 연극 <맥베스>는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맥베스, 잠을 살해하고 끝없이 괴로워하게 될 사람의 이야기.



1. 다양한 감각을 자극하는 연출, 현대화된 맥베스

연극 <맥베스>는 단출한 세트장과 3명의 출연진만으로 다양한 감각(청각, 시각, 후각)을 자극한다는 특이점을 지니고 있다. 한 사람은 디지털 음반기기를 통해 노래와 녹음된 소리를 변주하고 장면에 따라 크게 울린다. 커지는 음악 속에서 우리는 맥베스와 함께 혼란을 공유한다. 시각공연으로서 시각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 것은 입이 아프지만, 레이디의 붉은 드레스는 맥베스가 상상하는 레이디 맥베스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극의 전개되는 내내 그 안을 울렸던 맥주와 와인 냄새가 가장 인상 깊다. 극에서 맥베스와 레이디는 와인 한 병과 기네스 한 캔을 함께 마시는데, 그 냄새가 공연장 내를 계속해서 뒤덮었다. 연출가가 맥베스라는 인물의 환상(취기)와 괴로움(진실)을 의도했다면 배우가 실제로 마신 술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이런 감각을 제공하는 점도 인상 깊었지만, 그것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연극 <맥베스>의 주인공들이 과거가 아닌 현대를 배경으로 극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과 메아리  치는 마녀들의 예언은 전통적인 악기가 아닌 디지털 기기로 반복/변주된다. 맥베스는 정장을 입고, 라디오와 전화기를 사용한다. 와인이 아니라 기네스를 마시는 모습도 철저히 현대화된 맥베스를 반영한다. 레이디 맥베스가 아이패드를 드는 모습은 이 연극의 배경이 어떤 시대가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 지금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 중 하나다. 마지막 장면, 욕망을 받아들인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가 거울이 없는 액자와 같은 틀 안에서 카메라 셔터를 받는 장면은 극의 절정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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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울 대신 쇼윈도우에 선 맥베스

연극 <맥베스>는 거울이 세 개 있는 공간에서 극을 전개한다. 나르키소스를 비추는 호수나 윤동주와 이상의 거울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 가지 추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거울은 보통 자신을 비추는 솔직한 자화상을 상징한다. 거울의 상은 왜곡되지 않는다. 왜곡되는 것은 그 거울을 바라보는 대상의 생각뿐이다.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는 간혹 거울에 자신을 비추고 확인한다. 이들이 죄책감과 욕망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거울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극에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거울이 담겨있지 않은 거울이다. 한편에 놓인 거울과 달리, 나머지 거울들은 사람을 비추지 못하는 거울이다. 틀만 남은 이들은 액자의 프레임처럼 보인다. 거울은 그 자신을 비추지만, 액자는 무언가를 전시하기 위해 존재한다. 마지막 맥베스와 그의 연인이 그곳에 서고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힐 때, 그들은 한 쌍의 연인을 그린 그림처럼 완벽해 보인다. 그들이 짓는 웃음은 선물 포장지와 같아서, 그 안에 어떤 고뇌와 사건이 있는지를 비추지 않는다. 그럴듯한 포장지를 덮어 전시되는 그들은 쇼윈도우의 마네킹처럼 보인다. 액자에 서기 전 맥베스는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그것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비로소 왕이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 그는 삶의 주인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룰 수 있는 표면적 성장이었다.



3. 쇼 윈도우 속 불안한 자아

하지만 그가 한 결심은 '잠을 살해한 맥베스'의 면모를 무시하고, 레이디 맥베스라는 책임전가 대상이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쇼윈도우에 선 맥베스는 사실 삶의 통제권을 회복하지 못했다. 욕망을 상징하는 듯한 붉은 드레스를 입은 레이디 맥베스는, 그의 아버지처럼 자신의 죄악에 대한 안전한 도피처가 되어준다. 그가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이유는 아버지가 강요했던 것처럼 레이디가 그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베스 안에 존재하는 작은 거울, 그러니까 그의 통합적 자아는 그것이 모두 자신의 욕망과 선택에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레이디 맥베스가 밖을 나가 있는 동안 그는 자신의 야망에 낄낄 웃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해 소리 지른다. 레이디 맥베스가 자신에게 칼을 쥐게 했다는 상상이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 레이디 맥베스가 칼춤을 추는 부분이다. 그녀는 칼춤을 추면서 칼을 스스로 목을 대는 등 자해를 하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레이디한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한 맥베스에게 그녀의 춤은 의미가 깊다. 그는 그가 저지른 짓이 자신의 삶을 파괴할 것을 알고 있었고, 레이디가 맥베스의 죄를 대신 지어주지 않을 때 자신이 무너질 것을 알고 있었다. 레이디의 칼춤을 맥베스의 심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할 때, 그의 귀에 들린 말, '그 여자는 죽을 거야.'는 레이디에 목을 매고 분리될 것을 두려워하는 맥베스의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



4. 연극의 끝, 쇼 윈도우 속 아름다운 연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베스는 레이디와 함께 액자에 서는 것을 선택했다. 너무 많은 짓을 '이미' 저질렀기 때문이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다시 비추기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연극은 맥베스와 그의 연인이 함께 셔터를 받는 것으로 끝을 낸다. 원작 맥베스가 파괴되는 과정을 강조한 것을 생각해봤을 때, 흥미로운 부분에서 끝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맥베스의 심리변화를 깊이 있게 다루는 데 집중하느라 잘라냈다든가 하는 현실적인 이유로 이런 끝을 맺었을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이 연극의 끝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원작 맥베스는 철저한 계급구조 속에서 절대왕권이라는 욕망의 최종형태가 존재했는데 비하여,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끝이 없다.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맥베스가 꿈꿀 수 있는 욕망은 끝이 없다. 원작처럼 레이디가 자살하고, 사형을 선고받아도 말이다. 그 무엇보다도 연극이 그의 파괴를 다루지 않은 것은 그의 이야기가 우리 안에서 계속 진행되기 때문이다. 평가와 기준이 많은 분야에서 내려진 오늘날 우리는 쇼윈도우에 서서 자신을 판다. 그 화려한 포장지 안에서는 어떤 상처가 곪아도, 우리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방긋 웃는다. 당신이 선 곳은 셔터 속 액자인가, 거울의 안인가? 무거운 메시지를 담은 연극이 마음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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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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