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것도 안하고 싶어요 [문화전반]

글 입력 2017.11.2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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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에 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신나게 술도 먹고, 밤새 놀기도 하고, 여행도 마음껏 다니고 놀아야지! 그리고 분명 어른들은, 대학만 가면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막상 대학에 들어오니 뭘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살면서 내가 했던 선택이라고는, 오늘 그냥 급식을 먹을지 아니면 빵을 사먹을지 정도였을 뿐, 내 인생과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혼란은 계속되고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 때부터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다.
 

“넌 대학생인데 아무것도 안 하니?”

“어? 아무것도 안 하면 안되는 건가요?
저는 뭘 해야 할까요?”

“(주변 어른들 曰) 넌 대학생인데 연애도 안 하니?
방학 때는 유럽 같은 곳으로 여행도 좀 가고~
영어 공부도 할 겸 교환학생도 가면 되겠구나.

이제 어른이니까 너 용돈벌이는 해야지.
알바해서 여행경비 벌면 되지?”

“(선배들 曰) 요즘은 저학년부터
대외활동 같은 스펙을 쌓아야 해.

그런데 오늘 개강 파티 있는 거 알지?
아직 새내긴데 술도 좀 마시고 그래야지.”

...

 
 갑자기 쏟아지는 말들에 나는 얼어붙었다. 그렇지만 고등학생 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주변에서 하라는 대로 일단 따라하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뒤쳐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의 버킷 리스트들은 화려하게 채워져 갔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잘 실천하여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도 계속 무언가 불안했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불안감을 채우고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이는 곧 자기 착취로 이어졌다. 사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마치 그것을 해야 대학생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나도 녹아 들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교환학생이다. 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말하며, 교환학생을 추천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어느새 이것이 당연시 되었고, 특히 고등학생들에게는 대학생활의 로망이 되었다. 뚜렷한 목적도 없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세에 합류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무작정 교환을 떠나고 나니, 의외의 경험담들을 들을 수 있었다. 향수병에 걸려 고생한 학생들도 있고, 음식이나 문화 등이 맞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터라 교환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무의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에게 휘둘려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2학년 2학기를 보내는 지금, 주변 친구들은 소위 하얗게 불타버렸다. 자신들이 원하는 경험을 한 경우에는 그래도(혹은 그나마)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는 반면,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며 사람들이 ‘대학생이라면 해야 한다는 것’들을 뒤적거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해왔는데, 지금 보니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 혹시나 이것을 스펙으로 활용하지 못 할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허탈감을 느낀다는 경우가 많다. 지금껏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이러한 현상을 매스컴에서는 대2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1학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벌써 2학년이 되었고 이것저것 할 것도 많은 데다가 그 와중에 놀기까지 잘하라는 말을 따르기란 참 어렵기 때문에 큰 혼란을 겪는 것이다. 선배들이나 어른들은 자신들의 지나버린 청춘을 아쉬워하며 인생의 혹은 학교의 후배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젊을 때 도전하고 마음껏 놀아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노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사람들과 하는 것이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노는 것마저 사람들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노는 것이 진정한 휴식’이라는 잣대를 누군가가, 특히 기성세대가 들이미는 듯하다. 물론 그 마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아쉽다고 느끼는 부분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한마디가 노는 것에 마저 압박감을 주고 있다면 어떨까? 조언자와 꼰대란 이렇게 한 끗 차이가 아닐까? 그렇다고 이 모든 책임을 어른들에게 돌리고 싶다는 건 아니다. 우리들 스스로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 가령 여행 다니는 것을 피곤해하고 힘들어하는 학생이 유럽여행을 꼭 다녀와야할 필요는 없다. 연애를 하면 시간을 빼앗기고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꼭 핑크빛 연애를 꿈꿔야할 이유는 없다. 모두가 각자의 꿈을 꾸는 시대, 그것이 나이를 막론하고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일 것이다.

 
[송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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