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의 고통, 그리고 사진이 가진 권력에 대해 [문학]

글 입력 2017.11.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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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회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지하다. 현대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여러 곳에서 상처를 받기 때문에 나 자신이 받는 고통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까지 챙길 여념이 없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주변 사람의 심리적 고통에 대해 언급하며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타인의 고통을 전쟁으로 확장하며 타인의 고통이 사소함이 아닌 참혹하고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에 대해 무감각하다. 아직 휴전 상태인 유일한 분단국가인 만큼 현재 북한이 하는 도발은 충분히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을 만한 요소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 특히 젊은 세대들은 이를 무시하거나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는 전쟁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수잔 손택은 그 이유에 대해 우리가 무분별한 사진, 미디어에 노출됨으로써 이에 대해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타인의 고통을 극대화하여 자극적으로 처참함을 표출하는 ‘포토 저널리즘’과 이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초반에 수잔 손택의 이와 같은 비판은 전쟁을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일반인들 무시하는 평가라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그 환경에 놓여있지 않은 사람들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그대로를 믿을 수밖에 없고, 거기서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에 관한 분쟁 또한 우리는 지켜볼 뿐, 이를 막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고통을 나타내는 사진을 예술로 승격시키고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 의지가 없던 나의 태도가 부끄러워졌다.

  최근 라이프 사진 전시회가 열려 보러 간 적이 있다. 라이프 잡지사가 대체로 전쟁에 대한 보도 사진을 내놓기 때문에 전쟁 관련 사진이 많았는데 필자는 그것이 가진 예술성에 감탄하며 나 자신이 그 사진 속 상황에 놓여있지 않았음에 안도할 뿐이었다. 이 전시에서는 아주 비인도적인 사진은 많지 않았지만, ‘타인의 고통’ 책 속에서는 차마 두 눈을 뜨고 보기 힘든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사진이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며 미디어가 적나라한 고통을 거르지 않고 그냥 보여주는 것에 대한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수잔 손택이 언급한 ‘품위 차리기’의 개념이 반영되지 않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품위 차리기란, 고통의 대상이 우리 편이 아니라 적이라면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거르지 않고 적나라하게 선전하는 것을 나타낸다. 고통의 대상이 멀리 떨어져 있고, 나와 공통분모가 없는 사람일 때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더 적나라하게 지켜볼 수 있다. 자극적인 것에는 내성이 있다. 자극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선전하는 것은 우리 모두를 폭력에 노출시켜 우리의 공감 능력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라이프 전시에 걸린 사진을 그대로 본 필자 또한 그 폭력을 당한 대상이며, 방관함으로써 그 사진 대상에게 무언의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악순환을 가진 사진은 좋은 사진이 아니다.

  또한, 필자는 항상 사진은 사실을 전달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바라보았다. 사진의 가치는 실제의 순간을 우연히 포착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연출된 사진은 사실을 담은 사진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연출된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우리는 늘 악마의 편집에 노출되어있는 것이다. 이것의 문제점은 이렇게 연출 된 사진이 역사의 증거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영화 관련 수업을 들으며 사극에 관한 것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현대 영화계 안에서는 고증을 최대한 한 사실 그대로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통 사극에서 벗어나 현재 퓨전 사극이 성행하고 있다. 소재 고갈의 문제가 있기도 했고, 여러 가지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퓨전 사극은 사극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퓨전 영화들은 늘 역사 왜곡에 대한 문제가 동반하는데 우리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역사 왜곡을 ‘그저 영화일 뿐인데 역사 왜곡 문제까지 끌어들이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야?’라고 인식하는 것은 후대 이 잘못된 지식이 그대로 굳어져 후대까지 전해지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출된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기록영화, 극영화라는 두 가지 분류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극영화에 대한 허구성은 잘 잊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사진은 현실을 반영한다는 믿음이 강하고 많은 이들이 증거의 한 부분으로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연출된 사진이 사진 공급자의 의견을 유리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사실'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는 대중은 권력자들의 편집에 놀아나는 희생양이 된다.

  이러한 배움은 미디어 관련 전공을 가지고 있는 필자가 어떤 자세로 '편집', '연출' 개념을 다뤄야 할지 알려주었다. 물론 사진을 연출하는 것을 통해 나의 기사에 힘을 싣는 것은 필요하고 매우 매력적인 방법이다. 매번 기사를 쓸 때마다 나의 의견에 힘을 실으려고 사진을 연출하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저널리즘의 윤리 의식에 대해 항상 염두에 두고 나의 기사가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한 번 곪은 상처는 다시 복구하기가 힘들고, 복구된 상처는 늘 흉이 지기 마련이다. 또한, 사진 기사를 생성해 내는 사람으로서도 왜곡된 사진을 대중에게 보이는 것을 조심해야겠지만 수용자로서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악마의 편집은 영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사진은 주관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정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수용자도 되어야 할 것이다.


[조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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