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 용서받지 못한 자를 기록하다.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답을 알고 싶었다.
글 입력 2017.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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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
 누가 누구를 용서해달라는 건지 알기 어려웠던, 민감하고 예민한 그런 이야기. 군대란 조직에 익숙해진 이후부터, 그들의 생활에 어느 정도 타협하며 적응했던 네 모든 상황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넌 그 속에서 평탄해졌고 나는 더욱 굴복해야 했으니까. 어쩌면 다행이지 싶었다. 나만 힘들어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랬다. 아무도 정을 주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나만 힘들어지면 되는 그런 완벽한 상황이 갖춰진 것이었다.


[내려놓다]
 스리슬쩍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 버렸으면 적응하기에 무리 없겠지” 생각하며 차근차근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모든 것을 내려놓지도 않았으면서, 나를 갈구는 선임들이 두렵기만 했다. 다른 하나를 내려놓으려 하자, 무기력했던 내가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가진 것 없는 내가 더 내려놓을 건 없어 보였기에, 그래도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며칠이 흘렀을까, 고민 끝에 마지막 답을 울면서 찾았다. 결국, 나를 내려놓기로 했다. 힘들어서 아등바등 버티던 하루를, 결국 털썩 주저앉으면 모든 게 끝이 나버리니까. 이보다 더 애처로운 일이 있을까,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있을까, 매일 생각했다.


[자살]
 나 자살했어. 어리바리한 나도 생명만큼은 끊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런 행동을 저질렀는지 나조차도 모르겠다고. 생각은 하고 그런 몹쓸 짓 했냐고 나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천국 가서는 그들 말에 절대 타협하지 말고 맞서 싸워줬으면 해. 더 이상 내게 가혹하게 굴지 말아줬으면 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타협. 아름답다는 단어로 포장되어 버린,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그런 가장 더러운 협상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나는 죽고 너는 폈는데. 타협이라도 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세상을 떠난 지금 이 순간에도, 군대라는 틀에 맞춘 가장 알아듣기 어려운 그들만의 언어들을 생각하면 몸 사위가 매서워졌다.


[오해]
 의문이 든다. 내가 왜 내 선택에 오해를 품고 있는지.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오해를 품었어야 했지만, 결국 나는 내 행동에 오해를 품고 있었다. 참 억울해지는 오늘, 나 자신에게 또 다른 변명을 늘어놓고자 한다.
 “난 잘못한 것 하나 없어.”


[너는 어땠니]
 물어봐서 미안해. 그래도 알고 싶어. 나와 힘든 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 하면서도 어느새 적응해나가는 네가 바보같이 부럽기도 했다.


[회상]
 어느새 세상 어떤 어려운 퍼즐이 찾아와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지게 되었다. 매일 땅을 쳐다보며, 바닥 속의 타일을 이리저리 껴 맞추고 놀고 있었다. 또 다른 겁내지 않을 그 무언가를 내 눈으로 직접 찾았기에, 어린아이처럼 속으로 기뻐했다. 나는 쓸모 있다. 누군가의 먹잇감으로써.


[나만 이런 세상]
 네가 지내기 편한 세상, 나만 지내기 힘든 세상. 누가 답이라도 정해놓았는지 내 역할은 살아있었을 적 매번 정해져 있었다. 나만 이런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것도 도저히 불공평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알 만한 사람끼리]
 너에게만 해당되었던 그 언어, 그 말투. 억압된 상황 속에서 적응되기라도 한다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기에 속고 싶지도, 속지도 않으려고 발악했던 모든 나날들.


[무반응]
 이데올로기에 완벽히 체화되었기에, 너는 느끼지 못했을 그런 무심한 감정들. 나만 느껴도 충분히 힘들었기에, 이 부분조차 건드렸다가는 내가 죄인이 될 것만 같았다. 아니면 헛된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너는 아무렴 군대에서 운동기구나 잘만 만지고 있구나. 그렇게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폭력적인 행동들이, 너도 이제는 적응이 되었나 보구나. 부럽다, 부러워. 허심탄회하게 하는 말이었어. 더럽다, 더러워.


[거인 같았던 너의 그림자]
 한낱 생각해보면 나는 참 작은 사람이었다. 늦은 밤, 벽에 기대 서 있으면 항상 너의 큰 그림자에 위협을 느끼곤 했던 그런 마음 작은 나였다. 마음만 작았을까, 키도 왜소했잖아. 그래도 거인처럼 느껴졌던 네가, 굴복하지 않는 내 마음 알아준 고마운 사람 1호였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했다. 나 같은 사람 또 만나지 마, 괜히 너만 힘들게 한 것 같아 마음 아파.


[용서받지 못한 자]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인정하고 나를 위해 피기로 했어. 주름 하나 없는 그런 꽃처럼, 가시가 있어도 누구를 품어주기에 있어서 피해는 주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기로 했다. 너 아니었으면 당장에라도 죽어갈 나였는데, 그래도 옆에서 힘이 된 건 너였는걸. 버틸게, 버틸게라고 끝까지 마음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바보같이 죽어버린 나에게 매일 후회 담긴 말이라도 해줘서 정말 고마웠어.


[용서하지 않을 자]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면박을 주고, 간섭했던 그들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기로 했어. 그런 거 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때, 왜 나를 혹사해가면서까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하냐고 의문이 들 때. 그런 상황이 내게 찾아왔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은, 이해할 수 없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이미 세상 떠난 나 말고도, 군대 속에서의 부조리함으로 치욕스러워야만 했던 너희들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영원히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만큼 강렬했고, 더러웠고, 없어져야 할 개돼지 같은 행동이었기에.
 오늘 나는, 군대에서 있었던 그들의 모든 과거를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각자의 힘들었던 시간 속에서 공감을 얻고자, 나는 이 글을 써 내린 것이었다.


[강신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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