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맥도날드에서 웹툰 작가 지망생을 만나다

당신들의 꿈을 응원하며
글 입력 2017.10.2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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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맥도날드에는 창가 자리가 있다. 하나로 된 길쭉한 테이블에 네다섯 개의 의자가 놓여있고, 대부분 혼자 오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는다. 매장을 등지는 각도 때문인지 유독 오래 머무는 사람들이 많다. 공시를 준비하는 듯 인터넷 강의와 문제집을 붙잡고 씨름하는 중년 여성, 냅킨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손에 쥐고 하염없이 바깥 구경하는 할아버지, 두꺼운 전공서적을 읽고 정리하며 집중하는 대학생. 눈치 안 주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라는 공간에 기대어 만만치 않은 소음을 감내하는 사람들.

그날은 이따금 생각나는 빅맥의 시들한 양상추가 먹고 싶던 날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쩍쩍 벌리는 입이 무안하여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긴 테이블 끝에는 무언갈 열심히 공부하는 여자가 있었고, 그 옆은 노트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남자가 있었다.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남는 자리에 앉아 빅맥세트를 말없이 해치운 뒤 사라지는 건 그 자리의 암묵적인 룰이다. 눈인사도 없는 침묵과 익명의 자리. 혼자여도 괜찮다는 안심을 주는 관례다. 하지만 그 날은 관례를 깨고 대화가 찾아왔다.

옆자리의 남자분이 그림을 평가해달라며 습작 노트를 내밀었다. 웹툰 작가 지망생으로 그림체, 캐릭터를 평가해 달라는 요구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곳은 홍대의 맥도날드다. 홍대를 반나절만 돌아다녀도 느끼겠지만, 갖은 질문을 핑계로 종교를 전도하는 사람들이 상주하는 곳이다. 자연스레 경계하는 심정으로 하나님 아버지라는 글자가 언제 나올지 주시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경계는 사라졌다. 어설픈 한두 장 짜리 설문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고민이 역력한 손때가 진심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예 노트를 넘겨받고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냉철한 비평의 눈은 특히 타인에게 망설임 없이 발휘된다. 그 날의 나도 그랬다. 즐겨보는 웹툰도 꽤 있는 편이고, 까다로운 안목을 자처하는 내게는 한참 부족한 솜씨였다.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받지 않은 어설픈 그림체도 아쉬웠고, 서유기와 소년만화를 흉내 내는 캐릭터들이 신선하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조잡하고 매력이 없었다. 보통 귀엽거나 잘생기지 않은 캐릭터는 탄탄한 스토리로 착시를 얻는 법이다. 하지만 그분은 스토리도 뜬구름 같은 상태였다. 신랄한 악평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무심코 말을 내뱉기 직전, 처음으로 그분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주변은 다들 자리를 잡았을 나이대의 주름진 얼굴에 수줍음 많아 보이는 성격이었는데, 멋쩍고 불안한 눈빛 속에는 간절함이 차있었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낯선 이에게 물어본 자체가 이 분에게는 크나큰 용기였던 것이다. 내 말 한마디가 겨우 붙잡고 있는 기대를 끊어버리는 건 아닐까. 가까스로 입에서 맴도는 온갖 말들을 내가 가진 가장 고운 체에 거르고 걸러 건넸다. 진솔한 비평도, 호평도 아닌 애매한 말일 수밖에 없었다. 비겁한 나에겐 그게 최선이었다. 꿈의 무게감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타인의 목표를 재단할 만한 배짱이 사라졌다.

예전에 한 소설 작가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난다. 단편 소설로 등단한 별로 유명하지 않은 30대 작가로, 본업이 따로 있었다가 글이 너무 좋아서 전업을 한 경우였다. 하지만 본인의 글을 객관적으로 봐도 작가라고 할 만큼 솜씨가 빼어나지 못해 속상했었는데 은사님께서 명쾌한 답을 내려주셨다고 한다. 지금처럼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열심히 쓰면 그게 작가지 별거 있냐고. 꾸준히 하는 사람 아무도 못 이긴다고. 실제로 대부분의 웹툰 작가들도 초창기와 최근의 작화를 비교해보면 좋은 쪽으로 눈에 띄게 달라져있다. 그 날 내가 함부로 악평하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평가보다는 응원을 할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순간에도 네이버, 다음 등지의 웹툰 페이지에는 작가 지망생들의 습작이 수백 개씩 올라오고 있다. 다소 조잡한 작품부터 실력을 갖춘 것까지 다양하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를 꿈꾼다. 보통 훈수가 앞선다는 만화의 길은 선택부터 난관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몇 초 만에 내려버리는 컷을 위해 참 많은 노동과 고민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는 분들 덕분에 우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 열정과 노력을 응원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윤단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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