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별에 잡아 먹힐 것 같은 당신에게... [문학]

『실내인간』이 건네는 작은 위로
글 입력 2017.10.22 21:1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좋은 이별은 없다'라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요즘, 손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안 그래도 집중력이 낮은 편인데 사소한 것에도 집중 못하는 나 자신을 보고 있으면 때론 한심하고 때론 안쓰럽다. 내가 놓지 못하는 건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일까 아님 그 사람과 함께하던 날들의 내 모습일까. 어쨌거나 지금 내 상태를 본 사람들은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게 사랑이 아니라 말한다. 그 말은 곧 내가 끝난 사랑에 집착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랑이든 미련이든 지금 상황은 내 인생 중 가장 힘든 상황에 속하는 건 변치 않을 사실이다. 난 어떻게든 주의를 돌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고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3653934_01.jpg

 
"작년에 '그 일'이 터진 것이다.
처음엔 충격으로 한 달 간 병가를 냈었다. 
그런데 회복이 되질 않았다.
누구도 내게 실연의 상처가 이렇게 오래갈 거라고
일러주지 않았기에 나는 당황했다."


처음 말문을 연 인물은 헤어진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 휴직을 거듭하다 직장을 잃고 잔잔히 살아가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인생에 무슨 큰 기대를 거는 편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나도 그렇다. 그저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갈 뿐이다. 우리에게 오래 만난 누군가와 이별한다는 것은 그에 수반되는 감정을 샅샅이 살피지 않더라도 깊고 큰 상처로 남는다.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보며 '혹 내가 나중에 이렇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다른 사람과 하는 첫 번째 섹스에서 사람은 아득한 슬픔을 느끼지. 난 삼 년 전에 이별을 했거든. 좋아했어. 정말 많이. 그런데 헤어졌어. 헤어지는 데 이유가 있나? 있다 해도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야. 난 내 몸 위에 포개져 있는 여자의 벗은 몸을 보면서도 그녀와 내가 왜 헤어졌는가를 생각하고 있었지. 아니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고 할까? 난 궁금했어. 도대체 왜 이런 곳에서 이 낯선 여자와 내가 한 침대에 있는 거지? 왜 넌 날 이렇게 버려두는 거지? 난 그 여자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어."


김용휘는 박용우보다 더했다. 십 년이 넘도록 한 여자와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그를 보며 불안감이 더욱 몰려온다. '나도 저렇게 되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따위의. 동시에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작가가 이런 내용을 적었다는 건 본인 혹은 주변을 통해 들은 바가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조금 더 직접적인 위로는 다음 장에 나타난다.


"고통을 견디는 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단, 지금 아무리 괴로워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그거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어쩌면 그게 사랑보다 중요할지도 몰라."


모든 건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가장 쉽고 또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박용우는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대신했다.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저씨." 그러자 김용휘는 나에게도 고마운 대답을 건넨다. "믿어. 믿으면 아무도 널 어쩌지 못해." 그런데도 견디기 힘든 건 그 믿음이 아직 굳건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나를 학대하고 있는 걸까.

나름 충격적인 반전이 등장하지만 (또 이것이 작품 전개의 큰 축이기도 하지만) 나는 온전히 이별을 대하는 등장인물들의 자세에 주목해 책을 읽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김용휘는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한다. 박용우도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좀 답답하다. 김용휘가 성북동을 떠났다는 것에 조금은 희망을 걸어야 할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제발 괜찮아지길 바라며 현재에 대한 원망이, 어느샌가 너무 느리다고 느껴지는 시간이 꿈처럼 사라지길. 내가 조금은 괜찮아 지길.


[이형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