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방 안에 갇혀 있던 시간 '에어콘 없는 방' [공연예술]

글 입력 2017.10.0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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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9월 14일, 연극제작워크숍 수업의 일환으로 남산예술센터에서 진행되는 <에어콘 없는 방>을 보러 갔다. 나는 연극이든 영화나 문학이든 어떠한 스토리가 담겨있는 콘텐츠를 접할 때, 내 마음에 확 꽂히는 제목의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강의 첫 주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에어콘 없는 방>을 보러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연극의 제목에 대한 첫 인상 또한 썩 괜찮았던 것이다. 더욱이 우리가 보러 가는 공연은 모든 제작자와 배우들이 어떤 무대보다 더욱 만발의 준비와 기대감을 가지고 올리는 첫 공연이었다. 때문에 나는 달랑 제목 하나만으로도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연극을 관람했다.



피터 현에 대하여

  <에어콘 없는 방>은 실존 인물인 피터 현(Peter Hyun)의 일생을 보여주고 있다. 연극이 진행되는 현시점의 그는 70여년을 살아 온 노인, 그 단면적인 모습일 뿐이지만 관객이 보게 되는 그의 머리속은 그가 지나온 상당히 다양한 시대와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피터 현은 어떤 인물인가? 그의 삶에 대한 연극을 접하고 난 뒤에, 내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인물의 삶을 속속들이 열어보고 싶어 졌다.
 

- 그의 일생

  피터 현은 하와이 군도의 카우아이 섬에서 태어났다. 그 이듬해 돌이 되기도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3·1만세운동 모의에 참여했던 현순 목사와 합류하기 위해 1920년 상하이로 떠났으며 피터 현과 그의 누나 앨리스 현은 이 시절에 임시정부와 그 주변 단체에서 활동하던 이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그 중에는 이 두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박헌영도 포함되어 있다. 피터 현은 대학에서 연극을 접하고 뉴욕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연극에 몰두하게 된다. 이후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뉴딜 정책을 수행하는 핵심 기관이었던 WPA(Works Progress Administration)에서 자금을 받아 운영되던 ‘뉴욕연합극단(New York Federal Theatre Project)에서 일하게 된다. 그가 연출을 맡은 <비버들의 봉기(Revolt of the Beavers)>는 성공적으로, 브로드웨이에까지 진출하게 되었으나 아시아인 연출의 이름 밑에서 브로드웨이에 설 수 없다는 단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7년에 걸친 연극인생을 접게 된다.

  그는 하와이로 돌아가 토지측량 일을 배우면서 측량기사가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특채 되어 한국 미군정청에 합류하였으나 민족주의 진영과 더불어 박헌영을 비롯한 좌익인사들과 골고루 만나왔다는 이유로 감시대상이 되었고 당시 군정청에서 일하고 있던 누나 앨리스와 더불어 체포되어 강제 송환을 당하게 된다. 그는 미국에 돌아와서도 현순 목사, 앨리스와 더불어 미국 내에서 간행되던 좌파 매체 <독립>에 합류해 이승만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하고, 미국 내 소수민족들과 연대하여 반전반핵 운동을 벌여 나가 1956년 비미국적활동 조사위원회에 소환 당하기도 한다. 이후 한국 정부가 1968년 작고한 현순 목사의 유해를 국립묘지의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하기로 결정하면서 피터 현은 1975년 현순 목자 부처의 유분을 모시고 입국한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자서전을 남긴 후 1993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에 대해 간략하게 나마 간추리면서 느꼈던 바는, 한 사람의 생을 꾹꾹 눌러 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삶에 대해서 굉장히 길게 서술했지만 이것은 <에어콘 없는 방>에서 보여주는 단편적인 삶의 조각일 뿐이다. 실제로 피터 현이라는 인물은 삶의 전반에 걸쳐 한국, 상하이, 하와이, 뉴욕 등 각지를 떠돌았고, 같은 곳을 오간다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그 이유는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간략하더라도, 정말 삶의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처럼 한 인물의 삶에 대한 이 짧은 공부는 앞으로 내가 기억하는 인물들 가운데 지금껏 없었던 한 사람을 추가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이 연극이 관객들의 마음 속에 세우고자 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 왜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는가?

  그렇다면 <에어콘 없는 방>은 왜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는가? 내가 이 연극의 시놉시스를 접하면서 의문을 품었던 점이다. 하지만 연극을 접하면서 이내 내 머리 속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피터 현이 지나온 격동의 시간들은 그의 내면에서 강력한 폭풍우처럼 여겨질 테다. 이 연극이 작품을 접하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건네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폭풍우의 잔해가 얼마나 개인에게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면, 이 작품의 주체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존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남아 있는 그 잔해를 관객이 더욱 생생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배우에 대하여

  다음은 피터 현을 연기한 한명구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론 비중이 제일 큰 역할이었고 주연이기에, 가장 많이 무대 위로 보여지는 인물이기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 분의 연기는 정말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게, 뭔가 뾰족한 것으로 내리꽂는 것 같은 힘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분이 그리는 피터 현은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로 얼룩덜룩한 현재와 과거에서 어지러이 배회하는 인물이었고 또 그 망상에 관객 또한 정신 없이 휘청거리게 하는 인물이었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휘청거린다는 것은 온전히 중심을 가지고 제 3자의 입장이라는 시선만으로 연극을 관람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망상 속에 함께 참여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의 결코 유쾌하지 않은 트라우마를 가만 앉아서 ‘감상’하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혼란스러울 때 나 또한 혼란스러웠고, 그가 불안할 때 나 역시 불안했으며, 그가 억울하고 답답해 할 때에는 나 또한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러한 몰입과 공감이라는 것은 공연예술이라는 연극의 특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감정이 절대 아니다. 정말 이다지도 개인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이를 해낸 것 자체로도 훌륭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첫째로는 이를 위해서는 엄청난 분석과 표현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둘째로 그 역할에 스스로도 몰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역할에 몰입하는 것, 즉 그 인물 자체가 되는 일은 어설프게 한정적인 정보 만으로는 어렵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그에 따른 행동은 무엇일지, 완벽히 그 사람이 되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벽에 어떤 모습을 연기해야 할 지 몰라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작성하기 전, 한명구 선생님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피터 현의 '고민과 아픔은 무엇일까', 이 양반의 ‘트라우마는 무엇인가'라고 계속 고민 중"이라며, 공산주의에 대한 과민반응을 뜻하는 레드 콤플렉스[1], 미국에서 인종 차별로 인한 꿈을 접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 북한에서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진 누나에 대한 부채감에 집중하면서 캐릭터를 빚어냈다고 말했다.[2] 나는 그의 망상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마다 그 트라우마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역사적 인물의 트라우마를 자신의 내면으로 들여옴과 동시에 폭발적으로 팽창시켜 관객에게도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은 정말이지 높고도 높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항상 기획자란 우리가 상상도 하기 어려운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우리들을 연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번에도 역시 <에어콘 없는 방>을 통해서 나는 앞서 말했듯 알지 못했던 시대의 알지 못했던 인물을 잠시나마 만나볼 수 있었다. 피터 현을 연기한 한명구 선생님 또한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배우란 직업은 기억하지 않은 사람을 기억하게 만드는 일을 하죠. 평생 디아스포라로 살며 굉장히 무거운 사람으로 살아간 그 분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3]고 한다. 나 또한 피터 현이라는 인물을 새로이 만나게 되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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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말해주는 것

  <에어콘 없는 방>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피터 현의 연속적인 망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망상은 그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의 다사다난한 삶이 불러온 결과이다. 그는 에어컨 하나 없는 더운 방에 갇혀 답답하고 숨 막히는 과거를 계속해서 다시 만나는데, 그 모습은 모든 생각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마저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끝이 모르고 망상 속을 걷고 있는 그가 <에어콘 없는 방> 안에 갇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방과 공간, 무대구조에 대하여

  <에어콘 없는 방>의 원제는 <유신호텔 503호>이다. 원제이든 각색된 제목이든 둘 다 특정한 공간을 지칭하고 있다. 때문에 이 공간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여겨졌다. 관객을 제목을 접하는 순간부터 <에어콘 없는 방>, 혹은 <유신호텔 503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호기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 방은 한 8월의 한 여름이지만 에어콘 따위는 없는, 열기를 식힐 수 없는 좁은 공간이면서 피터 현에게 심리적으로 매우 강한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연출가 이성열은 이 사실적 공간을 그로테스크한 에너지로 채워 이 방안을 들끓게 하였다고 한다.[4] 이 작품을 보고 온 관람객의 입장에서 심히 공감하는 문장이다. 연극의 배경이 되는 호텔 방은 구조부터 소품들까지 하나같이 사실적이지만 이 공간이 피터 현의 망상의 배경이 되면서 알 수 없는 에너지로 가득 차게 된다. 호텔 방은 남한에 사는 우리가 듣기에 심히 이질적인 북한의 억양으로, 또는 고정되지 않은 각각의 색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흐릿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피터 현의 모습으로 가득 차곤 한다.

  이 모든 모습들은 피터 현의 트라우마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이며, 나는 이 모든 과정들이 물이 끓어오르듯 ‘들끓는다’는 표현 외에 더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호텔 방의 공간은 모든 무대 구조로서, 방은 확대되기도, 축소되기도 하는데, 그에 따라서 피터 현의 삶은 한 없이 팽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한 없이 작아 지기도 한다. 프로그램 북에서 연출들이 무대 배경을 구상하는 과정을 읽게 되었는데 그 과정은 퍽 실험적이었다. 나는 망상이 일어나는 공간이 이다지도 현실적인 것에 대해 진한 위화감을 느꼈는데 연출과 작가가 의도하였던 바 역시 바로 이러한 것으로, 작가는 ‘호텔방의 모습이 사실적이어야 할 것’을 계속 강조했다고 한다.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느낌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다니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한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피터 현이 억압당하는 느낌을 주기 위하여 벽을 세우기로 했는데 남산예술센터의 드라마센터는 아레나 스테이지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때문에 무대 앞쪽에서 보았을 때의 정면에, 침대와 콘솔과 같은 소품들의 뒤쪽에 벽을 세우고 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 작은 방은 계속해서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는데, 이 때 이러한 이동벽이 심리적인 공간의 크기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데에 매우 큰 역할을 했다.

 
- 트라우마와 망상, 도플갱어에 대하여

  이러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것은 피터 현의 평생에 걸친 트라우마와 그에 따른 망상이다. 망상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언젠가 끝이 있는 것이지만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특히나 피터 현에게 끝 없는 새로운 현실과 같다. 때문에 피터 현은 젊은 시절의 자신, 즉 망상을 만나면서 새로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피터 현과 젊은 시절의 피터는 동일한 인물이지만 젊은 시절의 피터는 늙은 피터에게 ‘희망도, 야망도 없이 주는 대로 받아먹은 늙은 개’처럼 살아온 것이냐며 비난한다. 늙은 피터는 ‘난,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어. … 벽에 부닥칠 때마다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싸웠어!’라고 소리치는데 이때 그가 외치는 대사란 참으로 지켜보고 있던 사람까지 울컥하게 만든다. 그는 미래의 자신을 부정하고 우울에 빠져 있는 암울하고 어두운 시절의 자신에게 단지 ‘자넨 여태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어’라고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망상 속, 과거 속의 자신은 또 다른 현재의 자신이기 때문이다.

  또한 망상과 현실이 맞닿아 있다는 것은 연설문의 변화에서도 보여진다. 이전에 그가 썼던 연설문은 ‘걷는 곳마다 길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쓰면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앞을 무엇이 가로막고 있든,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모든 길에는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며 모든 문장을 과거형으로 서술한다. 내가 이 연설문을 들었을 때에 그 스스로 돌아본 자신의 과거는 현재의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다짐과도 같다고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가 고쳐 쓴 연설문의 가장 핵심적인 문장들은 ‘이 받은 사상은 아직도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 또다시 우리 애국지사를 위하야 이같이 많은 노력을 하시고 이같이 굉장하고 아름다운 묘지를 건설하여 주신 것을 말할 수 없는 깊은 감상으로 감사드립니다’와 같이 지극히 현재형이다. 피터 현은 이렇듯 현재적인 연설문을 읊으면서 부모님의 유해를 모시고 그토록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던 <에어콘 없는 방>을 나서 망상으로 가득 찬 방과 맞닿은 현실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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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현에 대하여

  <에어콘 없는 방>에서 피터 현과 마찬가지로 또 주목해야 하는 것은 피터 현의 트라우마 속에서 이곳저곳 나타나는 누나 앨리스 현의 모습이다. 그녀는 그의 상상 속에서 모든 것이 다 끝났다며 괴로워하기도 하고 그의 힘든 시절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가족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하지만 그녀 평생의 꿈으로 나아가던 진취적이고 희망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피터 현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누나가 하던 이야기라며 앨리스 현과 함께 이야기하는데, ‘새로운 세상에선 함께 배우고, 함께 일하고, 함께 쉬고, 함께 싸우고, 함께 평화롭고, 그래서, 함께 행복하다(희곡집에서는 ‘함께 아름답다’고 한다)’고, ‘서로로부터 소외되지않고, 누구도 서로로부터 소외되지 않고, 누구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다’고 한다. 피터 현은 앨리스 현과 동시에 마지막 구절을 이야기한 후에 멍하니 홀린 것처럼 ‘누구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고’라고 되풀이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것, 그것은 어쩌면 피터 현이 그녀의 말을 떠올리는 그 순간에 가장 희망하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시대적 상황에 대하여 – 오래된 역사를 왜 지금 불러내는가

  이 글을 작성하기 전에 <에어콘 없는 방>의 리뷰를 훑어보니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평이 바로 ‘20·30대 관객이 보고 싶은 연극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 또한 공감하는 생각이다. 소재 만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쉬이 공감하고 이해하고 친숙하게 여길 수 있는 그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20대 관객인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성이 있는 소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프로그램 북을 읽으면서도 소재에 대한 어려움이 제작자들 사이에서도 큰 난제가 되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피터 현의 트라우마는 피터 현 개인 뿐 아닌 그 시대를 살고 있던 다수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고,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이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끊임 없이 불러오려는 시도는 추상적으로만 여겨지는 과거가 결국은 현재에도 던지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감하기 어려운 소재를 통해 작품의도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목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 들어서, 처음으로 프로시니엄 스테이지와 아레나 스테이지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의 무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배우들을 정말 긴장하게 할 무대구조’라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배우의 움직임, 말, 호흡에 집중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실제로 커튼콜의 사진을 보면 특히 100분 동안 이리저리 바쁘게 시간을 여행한 한명구 선생님을 비롯하여 모든 배우들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 나는 관객인 나 또한 배우만큼 긴장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연극을 보고 있을 때에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끝난 뒤에 후 하고 긴 숨을 뱉게 되는 그런 연극이었다. 이런 깊이 있는 연극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연극이 시작하기 전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의 하우스매니저는 무대 옆에서 이런 말을 했다. ‘관객 여러분은 오늘 연극의 가장 큰 주인공입니다.’ 앞으로는 만나기 어려울 순간과 그 순간의 예술에 함께 몸 담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에서 나와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홀린 듯이 희곡집을 사왔다. 왜인지 모르게 꼭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의 마음에 너무 빠른 속도로 날아온 대사들을 곱씹을 수 있어서 그 시간마저 행복했다. 먼 미래에 내가 과거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 공간은 <에어콘 없는 방>이 아니었으면, 트라우마에서 이어진 공간이 아니라 시원하고 탁 트인, 열리고 넓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 출처
[1] 두산백과
[2] 뉴시스, '피터 현' 한명구 "숨어있던 분들 고통 위로하는 연극" (고승민 기자)
[3] 뉴시스, '피터 현' 한명구 "숨어있던 분들 고통 위로하는 연극" (고승민 기자)
[4] <에어콘 없는 방> 프로그램 북, ‘망상 속에서 찾아낸 말’ 中




[정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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