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억해야 할 그 일, '소년이 온다' [문학]

글 입력 2017.09.30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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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나는, 그것은, 아마도, 바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당신을, 어째서, 바라봅니다, 당신의 눈은,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그것은, 또렷이, 지금, 좀더, 희미하게, 왜 당신은, 기억했습니까.


 끊어진 단어들의 조합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독자들은 알 수 있을까? 숯처럼 까맣게 타들어간 문장들과 단어들이 쇠처럼 느껴지는 것은 은숙이 혼자 느낀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단어들의 조합은, 검열로 인해서 타버린 이 언어들은 198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을 처참히 보여주고 있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책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끊어진 단어들만 보고 수용해서는 안된다고 외치는 것처럼 보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피 끓도록 민주화를 외쳤던,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시민들의 영혼을 하나씩 들여다 봐야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책은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나서 읽게 되었다. 예전에, 초등학생 때 온 가족 모여 거실에서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어렸을 적의 나는 당연히 픽션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빠와 엄마로부터 실제 일어났던 역사를 재현한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왜 총도 없는 사람들에게 군인들이 무차별하게 실탄을 난사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 이후에 나는 그 사실을 잊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택시운전사’영화를 보았을 때, 비로소 내가 무엇인가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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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영화
 

 ‘소년이 온다’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이 광주민주화운동 자체를 다루기보단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 죽은 뒤에도 여물지 않은 상처를 갖고 떠도는 혼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허구이나, 허상 같지 않았던 이야기와 인물들의 심리를 읽으며 그 도시의 열흘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사람들, 위에서 시킨 대로 항복하려고 내려오다 줄줄이 총살당한, 성인이 채 되지 못한 학생들, 작은 모나미펜이지만 이 펜을 이용한 형용할 수 없는 모진 고문을 당한 사람들, 그래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 등 사람들의 숨겨있는 고통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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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비


 인물들 중, 아무도 대단한 사람은 없었다. 대학생, 미싱사, 고등학생, 노동자 심지어 어린 중학생까지 중구난방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깨끗한 유리 같은 양심과 영혼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전 그들은 아마 소시민의 모습이 더 강했을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택시운전사 역할을 맡은 송강호는 오직 돈 벌기 급급하고 정부의 말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현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자 대의를 위해 이전의 자신 모습을 버린다. ‘소년이 온다’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비로 이 사건 이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평생의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절대로 정의와 인간성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피를 끓이며 진실이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인물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동호 어머니일 것이다. 동호는 중학생으로 시신을 확인하는 업무를 맡았었는데, 마지막 날에 집에 돌아가지 않아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어머니는 이제 연세가 들어 불러도 대답 없는 ‘동호’이름을 자꾸만 부른다. 그때 동호의 말을 믿지 말았어야 하는데, 끌고 집에 왔어야 하는데 하는 공허한 후회만 할뿐이다. 동호 어머니는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광주민주화운동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부의 말을 듣자고 동호를 말렸던 분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된 후 부터 더 적극적으로 나서 정의를 외쳤다. 뜨거운 여름에, 막 굳어질 때쯤의 아스팔트 위에서도 한기를 느꼈던 동호 어머니의 그 마음을 그 누가 표현할 수 있으리. 그 도시의 열흘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녹여낸 심리 표현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g. 100)


 그 도시의 열흘은 역사가 되었고, 잊지 말아야 할 상처를 남겼다. 갇혀버린 그 시간, 그 도시에서 한강은 어린 소년들에게 ‘너희를 기억해줄게’라며 위로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강 작가님은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다짐을 보여준 것일지도 모른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등의 표현을 통해 어린 나이에 가버린 이들을,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다시 기억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님이 쓴 것처럼 아직 피폭이 끝나지 않은 일이기에, 우리는 더욱더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기억해야한다. 매년 5월에 올 어린 혼들에게 아직 기억하고 있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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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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