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4] FEATURE. 인디뮤지션의 책방 ① - '보이스', 에그 2호

글 입력 2017.09.17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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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4 FEATURE 인디뮤지션의 책방
- ① <보이스>, 에그 2호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최근 가장 서글펐던 순간을 떠올려보자면 ‘해야 하는 말에 비해 담아둬야 하는 말이 너무 많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감정을 전부 헤집어서 구석구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아예 침묵하는 것보다 더한 막막함이 여름날의 습기처럼 훅, 차오르더라고요. 음악에서 ‘밤’‧‘별’‧‘달’이라는 예쁜 말들이 자주 쓰이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쩔 수 없는 공허를 대처하는 저마다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뮤지션들은 그럴 때마다 가장 먼저 찾는 것이 펜일 것 같아요. ‘내면의 많은 그림자가 가사를 만든다.’던 한 작사가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도 결국은 그런 못다 한 감정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한 뼘 더 나아가 오늘날 많은 뮤지션은 음악으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글과 가사의 경계를 넘어 책을 통해 들려주고 있습니다. 하나의 주제 안에서 함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넘어,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작가로 폭을 넓히는 것인데요. 음악을 들으면서 ‘이 사람은 어떤 경험을 했을까’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가지게 됐던 만큼, 책을 통해 그들의 사색과 삶의 조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많은 청자들에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을 따라 저는 이번 우.사.인 시즌 4에서, <인디뮤지션의 책방>이라는 주제로 뮤지션이 쓴 책을 소개하고 리뷰해보고자 합니다. 책을 통해 바라본 이야기들이, 여러분들의 호기심을 조금이나마 해소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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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글에서 소개해드릴 책은 바로, 팀 ‘스탠딩 에그’에서 작곡과 보컬을 맡은 에그 2호의 포토에세이 <보이스>입니다. 감성 어쿠스틱 뮤지션 스탠딩 에그는 매체에 크게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넌 이별 난 아직’‧‘Little star’‧'시간이 달라서'와 같은 대표곡들로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아티스트인데요. 7월에는 서울‧울산‧부산‧대구 등에서 열렸던 전국투어 콘서트 ‘여름밤에 우린’을 성황리에 마치고, 8일에 공개된 신곡 ‘오늘 밤은’은 각종 음원 차트를 휩쓸며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그들의 노래 중에서도 ‘La La La’, ‘웃는 것밖에’, ‘두 번째 사람’ 등을 좋아하는데요. 하지만 스탠딩 에그는 익숙하면서도 궁금한 점이 많은 아티스트였습니다. 공연을 본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실명 대신 ‘에그 1호’, ‘에그 2호’, ‘에그 3호’라고 칭하는 독특한 예명은 신비주의처럼 여겨졌거든요. 또… 스탠딩 에그가 주는 따뜻한 음악들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인지 멀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예쁜 노래를 만드는 뮤지션인 만큼, 사실 평범하디 평범한 저와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우를 범했던 것 같아요.


 
# 사진이 주는 위로


책을 받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노랑과 초록, 하늘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깨끗한 느낌의 표지였습니다. 이는 작년 11월에 발매되었던 스탠딩 에그의 앨범 자켓을 활용한 것인데요. 맑은 느낌의 사진은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그 자체로 이미 기분 좋게 독자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표지에 이끌려 책을 사게 됐다’던 한 네티즌의 평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책은 ‘포토에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글과 함께 곳곳에 배치된 감각적인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고, 일상적이면서도 동화 같은 풍경들의 연속이었어요. 겨울철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정겨운 호떡 사진,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책방, 애완견 망고의 사진들로 채워진 깔끔한 벽지,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눈을 감고 노래하는 외국의 소녀, 설경을 눈앞에 두고 우뚝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 에그 2호의 인스타그램처럼 감각적이고 다채로운 사진들은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했습니다. 이름 모를 강의 차가운 물결을 쓰다듬어보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카메구로의 떨어지는 벚꽃 잎을 만져보게 될 만큼이나 사진작가가 찍은 것처럼 예뻤어요.



# 글이 주는 위로


책은 ‘하루’, ‘관계’, ‘음악’, ‘여행’이라는 네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청자들에게는 꺼낼 수 없었던 삶의 여러 조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짝사랑하던 친구에게 예쁘게 거절당했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음악이 좋다는 이유로 무모하게 서울로 올라왔던 스무 살을 지나, 운이 좋아 음악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지금까지. 소소한 에피소드로 채워진 만큼 읽는 동안 숨겨둔 그의 일기장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받았어요. 또 동시에 사랑받는 음악은 공감이 필수라는 점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힐링을 주는 스탠딩 에그이지만, 결국 그도 어린 날의 기억을 안고 있고, 누구나 그렇듯 하는 일에 대해 불안과 권태를 겪어야만 했었으니까요.

누군가는 매일 똑같다고 느꼈을지도 모를 일상 속에서 이러한 감상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색을 멋진 결과물로 탄생시켰다는 점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다 읽게 되면 지인만큼이나 에그 2호를 잘 알게 될 것’ 이라던 말씀처럼, 책장을 덮었을 때는 필자에 대해 몰랐던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첫째, 에그 2호는 완전한 사랑꾼이시라는 점. 둘째, 몰랐던 허기를 글로 깨우치게 만드는 ‘먹방러’라는 점. (입맛에 딱 맞는 카레가 목으로 넘어가는 것을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마지막 장면으로 표현했던 것은 정말 놀라웠어요!) 셋째, 실망을 막기 위해 자신에게 엄하려고 노력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책장을 넘기는 사이 필자와 독자 사이에는 공감대가 켜켜이 쌓이고 있다는 점까지요! 특히나 칭찬을 잘 수긍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의 기대치를 낮추려 애쓴다는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버리는 저의 모습과 닮아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뮤지션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결국 책도 가수의 음악과 닮아있다’는 것을 매번 느끼는데, <보이스>도 마찬가지로 희망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어른’이라는 키워드에 점차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게 되던 저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소중한 사람이 늘어나고 그들과 해보고 싶은 것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해주던 부분은 생각 전환의 필요성을 환기해주었고, 에필로그에서 ‘무슨 일이든 전력을 다하지 않는 버릇이 들면 어느새 그렇게 하는 법 자체를 잊어버린다.’던 말은 마음속이 점차 헝클어지고 있는 제게 해주는 따끔한 충고와도 같았어요. 게다가 노래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사진까지 잘 찍으시는 에그 2호의 매력적인 아티스트적 면모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스탠딩 에그의 음악은 어느 계절과도 잘 어울리지만, 특히 <보이스>는 왠지 무더위가 지나고 공기가 한 뼘 더 시원해지는 지금 날씨에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을 감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봐-’하던 목소리만큼이나, 이 책은 잔잔하고도 은은했거든요.
 
무엇보다도, 있어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꾸밈없는 글이라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마음을 터놓고 속이야기를 해주는 친구가 고마운 것처럼, 글에서 솔직함이 느껴지니 누군가의 이야기를 이렇게 들어줄 수 있다는 게 새삼 기쁘더라고요. 생각이 생각을 부르던 밤, 저에게 그의 <보이스>는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문득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 반갑지 않고, 별로 특별하지 않을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을 때가 있으실 텐데요. 이 책을 통해 익숙한 오늘도 특별하게 생각할 수 있는 '망고'의 시선을 선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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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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