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네더 : 미래에서 날라온 경고장

우리는 이 경고장을 찬찬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글 입력 2017.08.30 16:0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네더_포스터_도일.jpg
 

가상세계의 범죄는 어떤 윤리적 근거로 처벌이 가능할까? 상상과 예술의 자유가 허용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현실 윤리를 앞세운 가상세계의 ‘검열’은 과연 타당할까? 여전히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대한민국, 위정자의 검열 논리와 가상세계의 검열 논리는 과연 무엇이, 얼마만큼 다를 수 있을까?

모바일, 인터넷이 그랬듯 가상현실 기술 또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우리 삶을 급격하게 바꿔놓을 것이다. <네더>는 가상세계의 윤리관 정립이 시급함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감각과 이성

 
네더_장면사진3.jpg
 
   
“나는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을 뿐이야.
누구나 상상 속에서는 자유로워야만 해.”
–심즈


심즈는 ‘네더’라는 가상공간에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만든다. 어린 아이를 향한 자신의 잘못된 욕망을 깨달고 이러한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규칙을 제정하고 군주로 군림한다. 소아들을 상품으로 만들고 손님들을 끌어들여 영업을 하는 곳. 현실세계였다면 악질 중에서도 악질로 취급받을 끔찍한 현장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행위가 잘못된 행동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현실 속에선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함으로써 현실 속 범죄를 줄이는 순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상상으로만 이루어진 가상임으로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태도로 초지일관이다.

형사 모리스는 그의 생각에 반기를 든다. 속칭 ‘탈출구’의 주된 문제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상상 속에서 하늘을 날 수 있고, 억만장자와 사귈 수도 있으며 온갖 산해진미를 잔뜩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느낌, 억만장자를 만졌을 때의 촉감, 음식들의 맛까지는 느낄 수는 없다. 이런 불가능함이 가능함이 되면서 ‘탈출구’는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되는 공간으로 변한다.
   
인간과 세계의 접촉은 감각에서 시작한다 

인간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즉 오감을 느낄 수 있다. 6번째 감각이라 칭하는 직감을 제외하고는 원초적 감각에 의존한 아이들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어떤 것들을 느낌으로써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렇지만 원초적이고 1차원적인 감각에 사람들은 휩쓸리기 쉬우며 그것은 이성적 사고를 한순간에 잡아먹을 수도 있다. 사람은 사고를 할 수 있기에 성찰을 할 수 있고 자제를 할 수 있으며 통제를 할 수 있다. 본능에만 의존한 삶은 현대에서 범죄로 이어지기 십상이며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이성적 사고를 하며 살아간다.

‘네더’ 속 심즈의 유토피아는 가상이라는 공간에서 현실의 감각을 허한다. 그러면서도 현실의 이성적 사고는 저 멀리로 내던진다. 심즈는 물론 ‘탈출구’를 이용하는 손님들은 현실과 다름없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그들의 억압된 본능들을 끄집어내지만 그에 대한 제재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점차 그것에 중독되어 현실의 삶을 등한시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관계의 진정성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의 깊이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나쁜 관계, 부정적인 감정들로만 이루어진 관계를 맺길 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좋은 것들로만 이루어진 관계일수록 사람들은 그 관계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길 원하며 더 나아가 그 관계에 집착하기도 한다.


네더_장면사진7.jpg
 
 
“내가 그 아이를 계속 가져도 됩니까?” 
 - 도일
 
 
‘탈출구’ 속 감각에 중독되어 현실 속 나를 버리고 온전히 가상세계에서만 사는 그림자의 삶을 살고자하는 사람이 있다. 현실 속 관계에 공허함을 느끼고 ‘네더’ 속 관계에 집착하는 그의 결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자신은 진짜라고 믿었던 관계가 현실 속 누군가에게 다 부정당하는 순간 그는 본인 자신을 부정당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가상의 존재가 현실 속 존재의 존재감을 넘어섰을 때부터 그의 비극적 결말은 예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래에서 날라온 경고장

 
KakaoTalk_20170828_134428318.jpg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가득한 90분이었다. 가볍지만은 않은 소재로 극은 진지하게 진행된다. 주로 심즈와 모리스의 갈등구조로 이루어진 스토리를 보면서 과연 어느 쪽이 맞다고 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해가며 보았다. 초반에는 심즈의 주장도 일리 있어 보였다. 현실도 아니고 가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인데 현실 속 엄격한 잣대를 들이 미는게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연극을 다 본 후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그 가상세계도 사람이 만든 것이며 사람들이 들어가 형성한 세계임으로 그 피해또한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어느 세계이든, 어느 차원이든, 어느 공간이든 간에 결점 하나 없는 곳은 없다. 그 결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며 누군가는 그 문제에 대한 피해를 입고 누군가는 그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네더’는 100퍼센트 가상의 공간이 아니었기에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연극을 보는 내내 그리 멀지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보여주는 느낌을 받았다. 한 편의 극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날라 온 경고메시지 같았다.

 
[김수정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