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인이 탐닉한 작가세계를 들여다보다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글 입력 2017.08.20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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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녀는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고 제목을 지었을까. 단순히 공기가 좋아서 살아야겠다라는 다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지금 현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서일까. 우선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녀의 책을 편 순간, 단숨에 읽혀지기 시작했다. '맞아, 맞아!' 추임새는 물론, '막스 브로트가 프란츠 카프카의 유언대로 모든 원고를 불태워 버렸다면, 아마 이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했었겠지. 실존주의 문학도 접하지 못했을거야.'라며 그녀의 문장 하나 하나에 매료되었다.

마치 박물관 해설사 같이 이 분의 스토리는 어떠하며, 이 분이 남기고 간 글은 이러합니다라는 설명과 자신의 견해까지 곁들여져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문학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또한 철학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이 책을 접한 순간 손에 놓지 않게 되는 신기한 마법을 겪게 될 것이다. 게다가 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일까. 공감가는 문장들이 많았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시인들의 삶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저런 멋진 문장들을 구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남다른 영감과 포착의 순간까지 닮고 싶었다. 매일매일 필사했고, 매일매일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 새 "엇, 이 문장엔 이 단어가 좋겠어!"하는 그런 번뜩임이 생겼다. 아직 작가가 되려면, 많은 노력이 요구되겠지만, 나만 갖고 있던 이런 생각을 작가들도 하고 있었구나하고 동일시되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책을 읽는 내내 다시 한 번 유명 작가들의 생과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다시 샘솟을 수 있게 해준 멋진 책이었다.



*
목차

프란츠 카프카
 - 프란츠 카프카 특급열차를 타고

마르키 드 사드와의 가상 대담
- '지옥'에서 만난 사드

르네샤르
- '시의 시인', 르네 샤르를 만나다

잉게보르크 바흐만
- 나는 항상 나다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

폴 발레리
- 천재, 오, 긴 인내여!

거트루드 스타인
- 우리는 정말로 아내 같았다

에드거 앨런 포
- 갈가마귀와 아서 고든 핌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 아, 콜레트처럼 살고 싶어!

카렐 차페크
- 정원을 가져야 한다, 우표만한 정원일지라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평생을 나비를 쫓아다니고 찾아다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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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대단한 관찰자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인간의 태도에서 전통적인 버팀목을 제거해 버리고 나서 그것을 끝없는 숙고의 대상으로 삼을 수가 있는지…." (p19)



시를 쓰면서 많이 느꼈던 것은 순간 포착에 예민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범하게 느껴지는 일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아무도 생각치 못하는 범상한 능력을 발휘함에 따라 남들의 시각과 생각을 뒤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운 부분을 프란츠 카프카는 잘 소화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극찬할 점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삶은… 책상에 달려 있다. 작가가 정신착란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결코 책상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이를 악물고서 책상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 - 프란츠 카프카 (p21)



오롯이 글에 대한 고민과 상상에 빠져있어야 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작가가 되기란, 그만큼 고되고 힘들다. 성실과 노력이 정말 많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창작 수업을 할 때마다 매번 창작의 고통에 시달린다. 어떤 소재로 써야하며, 어떤 이야기로 흘러나가고, 사건은 어떻게 해결하고, 결말은 어떻게 마무리하지라는 생각들에 갇혀 산다. 수십 번 되뇌여도 항상 익숙한 생각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아 걱정이다.  



"내면을 사랑한 이 사람에게 고뇌는 일상이었고, 글쓰기는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한 형식이었다." - 프란츠 카프카의 묘비에 새겨진 글 (p22)



새로운 것을 쓰기 위한 과정은 너무나도 버겁고, 힘든 일상이지만, 글쓸 때 만큼 행복한 때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는 글을 쓰면서도 가끔 펜을 놓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다. 누군가가 내 글을 보고, 혹시 비난을 하진 않을까. 남들의 비해 내 글은 너무 부족해보이지 않을까. 나는 왜 이정도로 밖에 못 쓰는 걸까하고 나 자신을 자책하기 바빴다. 사실 글은 쓰면 쓸수록 느는 것이고, 누군가가 비판하면 그땐 고치면 되는 것인데. 고작 시선이 두려워서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 했으니 프란츠 카프카의 묘비 글을 보며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시는 인간의 끼니다. 산과 새와의 관계와 같다. 시에 독자가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저널리즘 탓이다. 시는 현재나 과거나 항상 같은 방향이다. 현대시도 과거의 시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사물은 그날그날 달라지는 것 같으면서도 크게는 동질적이다. 다만 저질의 시인이 있고 양질의 시인이 있을 뿐이다. 호메로스 이래 시는 달라진 것이 없다. 가령 고대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 같은 시인의 시를 읽으면 오늘 아침에 금방 쓴 시 같다. 라스코의 동굴벽화와 마찬가지다. 기원전 2천 년전에 살았던 라스코 사람들의 아름다운 벽화를 보면 피카소의 그림과 아무 차이가 없다. 세계는 큰 변혁으로 많은 것이 흔들렸다. 땅만 흔들린 것이 아니라 사람도 흔들렸다. 시는 이 흔들림을 좇는 것이다. 시는 한 순간을 신뢰하며 거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는 먼 앞을 내다보는 것이다. 시가 자라서 성숙하자면 50년은 걸려야 한다. 현대시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50년 후에는 우리가 젊었을 때의 시는 쉬웠다고 말할 것이다. 50년은 지나야 자리를 잃었던 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시를 근시안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 르네 샤르 (p56)



시를 쓰면서 이런 말을 많이 들어왔다. "시는 소설에 비해 경쟁률이 낮으니 대학가기 수월하겠다.", "시는 독자들이 없지 않느냐", "시는 소설보다 짧아서 시간이 덜 걸리지 않느냐", "나도 소설 말고, 시나 쓸 걸 그랬다." 라는 이상한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내 글에 대한 발전성을 높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아닌, 다들 대학입시용 글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 살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글은 자신의 상상력을 길러주기 위함이지, 좋은 상 받기 위해 혹은 좋은 대학 가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나는 시를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여러가지 단어들로 환상적인 퍼즐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비슷한 문장인 것 같으면서도 다른 단어를 조합하면 전혀 다른 상황으로 변해버린다. 이러한 재미가 나는 즐거웠다. 시는 언제 보아도 새롭다. 특히 지금도 윤동주 시인의 시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처럼 시는 언제 읽어도 다르게 읽히며, 언제 읽어도 공감성을 유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시를 읽고 또 읽으면서 그들의 문장을 닮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르네샤르의 글을 보면서 동일시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매스미디어가 발달하든 말든 시인들은 언제나 무한과 미래의 경계에서 새로움을 향해 투쟁하며 자신만의 시를 창조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p58)



이 말이 많이 공감된다. 다양한 대중매체가 발달하는 지금 이 순간도, 시인들은 언제나 글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다. 항상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소리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그들은 언젠가 빛을 발할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창작 수업을 들을 때도 항상 펜을 놓지 않고 계시는 교수님들의 모습을 많이 포착할 수 있었다. 그분들을 보면, 매일매일 글 쓰는 것으로 자신의 갈증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늘 그렇듯 시인에게 글은 항상 곁에 머물러 있다. 노력이 밑바탕되어 있는 작가들의 투철한 정신을 보면 많은 존경심을 품게 된다. 



"내게 있어 진실을 외면한 정치적 현실 밖에서의 글쓰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그때 쓴 시가 「이른 정오」라는 시예요. 한번 들어볼래요?" - 잉게보르크 바흐만 (P70)


이른 정오 / 잉게보르크 바흐만


벌써 파편 더미 속에서는
동화 속 새의 혹사당한 날개가 솟아나고
돌팔매질로 일그러진 손은
돋아나는 곡식 속에 묻힌다.

독일의 하늘이 대지를 검게 물들이는 곳에서
목을 베인 천사가 증오를 묻을 무덤을 찾고
그대에게 심장이 담긴 접시를 건넨다.

칠 년 후
시체8안치소에서
어제의 형리는
황금 술잔을 비운다.



"그녀가 그립다. 그녀의 시가 그립고, 그녀의 책들이 그립다. 젊은 날, 그녀의 모든 것은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 나에게 참 많은 위안과 힘을 주었다. 또한 그녀는 내게 홀로 있는 언어에게 어떻게 말을 걸고, 그 언어를 어떻게 시로 데려오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잔인할 정도로 아픈 여자들만의 핏빛 언어로 태양과 바람과 폭풍우 속에서 어떻게 더 아름답게 더 명징하게 노래하고, 침묵하고, 불타오르고, 품고, 바라보아야 하는 가를!" (P76)



4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잉게보르크 바흐만. 그리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김상미 시인. 자신에게 시란 무엇인지, 언어가 어떻게 말을 거는지, 가르쳐 준 멘토이자 롤모델인 그녀의 부재에 많은 허전함을 느끼고 있다. 나 또한 시가 내게 오기까지, 그리고 그 힘든 순간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위안을 줬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인생선배였던 과외언니였다. 언니는 항상 메모지를 습득하고 다니며, 떠오르는 그 순간들을 꼭 적어두는 습관을 가지라고 얘기했다. 처음엔 단어로 시작되었던 메모장이 점점 문장들로 변형되어갔다. 언니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제대로 된 시가 구축되어지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형식을 따르는 방식을 원치 않았다. 나의 의견을 존중하며, 내 생각대로 흘러가는 시를 창조하길 바랐다. 그 결과 나는 나만의 성격을 가진 시를 창작해낼 수 있었고, 좋은 소식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 언니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시에 대한 흥미를 키워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김상미 시인의 문장을 보니, 문득 그 언니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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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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