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제적 인물들과의 대화 : <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

글 입력 2017.08.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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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문학 평론가는 말했다. “모든 금지된 것도, 소설 안에서는 가능하다. 허구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소설을 쓰는 일은, 체제의 유지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소외되고 억압받고 혼란스러우며 방황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 그들의 지지를 받는 것, 거기에 문학의 소명이 있다”고 말이다.
 
  지금껏 만나왔던 문학 속 인물들을 떠올려 보라. 문학이라는 허구 속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전인적 인간이라고 일컫기에는 어려운 얼굴들이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배우자를 두고 새로운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현실에 있었다면 많은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을 인물도 적지 않다. 문학을 보면서 인물들이 ‘참 도덕적이구나.’, ‘사회적으로 본보기를 삼을 만하다.’라고 느꼈던 경험이 있는가? 아니, 높은 도덕성과 영웅적 면모, 사회의 가치체계에 부응하는 인물들은 문학의 (특히 현대문학의) 주인공이 아니다. 외려 더 비근하고, 조악한, 궤도 ‘밖의’ 인물들이 문학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에게 삶의 진실을 목격하게 한다.
 
  <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를 통한 11명의 작가와의 만남도 문학 속 자아들을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고 하면 너무 섣부른 발화일까? 적어도 독자인 내가 만난 11개의 생애는 그랬다.
 
 
나무발전소 오늘은바람이좋아 살아야겠다 _ 평면.JPG

 
 
번역과 주선자를 거친 만남의 자리

  영화 < 미드나잇 인 파리 >에서 주인공 ‘길’의 시간여행으로 관객은 예술의 거장을 만나듯이, <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에서는 저자 김상미의 인도에 따라 독자는 세계 문학의 거장들을 만난다. 문학 책의 서두, ‘작가 소개’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이름들을 테이블을 두고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변신>, <외투>, <롤리타> 등 작품의 저자로서만 만났던 인물들은 저자의 언어에 따라 한 인간으로 우리 앞에 앉아있다. 저자가 감동을 받고 영감을 얻은 11개의 서로 다른 생애들은 저자의 서술에 따라, 시선에 따라 재구성된다. 
 
  내가 그들의 생애를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고, (목격했다 해도 그 생애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다만) 그들의 수필과 생애의 기록들을 직접 읽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저자가 만난 11개의 생애’를 독자인 내가 다시 만난다고 말하는 편이 분명하겠다. 그렇듯, 2017년의 ‘나’와 수십·수백여 년 전 작가들의 거리가 멀다 하더라도, 분명 그들과 테이블 앞에 마주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 만남은 번역과 주선자라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매개를 거쳐야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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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인물과의 대화
 
  가상대담으로, 기차를 타고, 타임머신을 타고, 또 때로는 그들이 남겨준 테이프를 듣고. 저자는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여 독자와 거장들 사이의 시공간적 간극을 줄이려 한다. 그저 그들의 생애를 서술하는 것에 그쳤다면, 딱딱한 교양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흥미롭게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독자와 거장들을 주선한다. 그러나 후반으로 갈수록 주선의 노출은 줄어들고 저자의 생각과 느낌으로 서론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저자가 매개하는 11개의 생애들은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각기 다른 얼굴이다. 끊임없는 철저한 자아인식과 과학적 연구에 매달렸던 인물이 있는가하면, 에로티시즘을 추구했던 쾌락주의자도 있다. 유명한 미술품 수집가가 있는가하면, 성별을 불문하고 마음이 끌리는 대로 사랑했던 인물도 있고, 평생 나비를 찾아다닌 인물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생애와의 만남이 마치 문학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문제적인 생애들이다. 수많은 매개를 통해 만난 생애라 섣불리 말하기 곤란하지만, 적어도 저자의 서술을 통해 만난 그들은 그랬다.
 
 
  특히 마르키 드 사드와의 만남이 그랬다. 사디즘(Sadism: 학대음란증)의 어원인 작가 사드는 그로테스크하고 가학적인 에로티시즘을 표현해냈다.
 
  사드 :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에 의해 우연히 태어난다. 인간에겐 두 가지 기본적인 충동밖에 없다. 살아남으려는 충동과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는 충동. 그런 과정에서 당연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 외 어떤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에는 결코 아무런 관계가 없다. (p.32)
 
  잔혹한 성도착 행위들을 ‘제약 없는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드는 저자의 말대로 ‘지상의 세계’에서는 수용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러나 이 문제적 인물과의 대화는 ‘신성한 것’, ‘정상적인 것’, ‘규범적인 것’에 대한 순간의 물음을 던지게 한다. 문제적 인물은 ‘절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에 틈입하고 이를 교란시킨다. 분명 지상에 세계에 위치한 나에게 사드의 사유는 자기화할 수 없는, 한편으로는 정말 불쾌한 것이지만, 이러한 사유와 상상력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잔여물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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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듣고 느끼는
     
  11개의 생애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고, 다른 방식으로 문학에 접근하고 정진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애는 독자에게 교과서처럼, 자기계발서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남의 생애를 이렇게 말하는 것이 건방진 줄은 알지만, 어떻게 보면 비근하고, 고독하고, 비극적인 생애다. 대부분 ‘따라하고 싶지는 않은’ 생애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러나 저명한 문학작품을 썼던 작가들을 작가로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만나며, 그들의 생애를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 생애 사건을 접하고, 그 사건들이 발자국이 되어 이어진 작가로서의 길을 멀리서 관조하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의, 삶의 자양분이 된다.
 
  비근한 삶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가치는 무엇인지, 그들에게 글쓰기는 삶에 있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그들이 남겼던 작품만큼이나 큰 울림을 준다. 궤도 밖의 인물들이 삶의 진실을 목격하게 하듯 말이다.
 
 
  자, 다시 테이블 앞에 앉는다. 여전히 건너편에 앉아 있는 작가들과, 이들의 말을 전달하는 저자의 언어, 그리고 이 언어를 전달받은 내가 또 다른 독자를 만난다. 저자의 책을 통해 작가를 만나고, 전달 받은 것으로 이 책을 소개하는 나 또한 대화의 매개자로서 테이블에 앉아 있다. 이 생애들을 만나게 될 또 다른 독자를 기다리며.




나무발전소 오늘은바람이좋아 살아야겠다 _ 입체.JPG
 

 
<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
-시인이 사랑하고 사랑한 작가 11인의 창작노트-

김상미 지음  | 펴낸곳 나무발전소
발행일 2017년 7월 26일 | 문학에세이 | 200페이지
정가 12,000원




에디터 김나윤.jpg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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