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행복한 세계술맛기행 [문학]

행복한 대리만족의 시간
글 입력 2017.07.28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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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술이 몹시 약하다. 소주 반 잔에 얼굴 전체에 열이 오르다 못해 눈알까지 빨개지고, 두 잔까지 마시면 영락없이 모두 게워낸다. 친구들은 나를 간쓰(간쓰레기) 또는 알쓰(알콜쓰레기)라고 부른다. 반박할 여지가 없는 별명이다.

 여기서 문제인 건 이런 내가 술을 무척 좋아한다는 점이다. 소주를 쭉 들이켰을 때 목구멍을 지나 뱃속까지 퍼져나가는 온기. 힘든 하루를 마치고 얼린 유리잔에 담긴 시원한 맥주를 마실 때의 기분. 마티니의 달콤한 향과 진토닉의 깔끔한 뒷맛까지. 그리고 술자리는 또 어떤가. 난생 처음 만난 사람도 함께 앉아 한 잔 두 잔 기울이다 보면 둘도 없는 절친이 되어 있고, 마음 속에만 담아두던 진심을 내뱉기에도 술만한 게 없지 않은가.

 이렇게 타고난 운명을 거슬러 자꾸만 술을 찾아댄 탓에, 갓 성인이 되어서는 못 볼 꼴도 꽤나 많이 보였더랬다. 오는 내내 길 군데군데 토사물로 영역표시를 한 것도 모자라 기숙사 2층 침대 위에 쓸개즙을 토해보기도 했고, 당황스러워하는 친구를 붙잡고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이렇게 사건사고를 겪으며 시간이 점점 흐르다 보니 결국엔 어쩔 수 없이 술과 멀어지게 되더라. 술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여전히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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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엔 정말 다양한 술이 있다. 나라마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빚어서 그런가 그 재료도 정말 다양하다. 한국의 막걸리는 쌀로, 이탈리아의 와인은 포도로, 심지어 멕시코의 데킬라는 선인장으로 빚는다. 그래서 각 나라의 술을 마셔보는 건 곧 그 나라 문화를 체험해보는 것이다. 거기에 현지 안주가 곁들여진다면 금상첨화다.

 나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여러 술을 맛보고 싶지만, 돈도 없고 알콜을 분해할 효소도 없었다. 여느 때와 같이 체념하고 있던 어느 날, '행복한 세계 술맛 기행'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작가 니시카와 오사무는 사진을 업으로 삼으며 전 세계를 여행한다. 그리고 들르는 나라마다 꼭 술을 사 마신다. 얼마나 애주가냐 하면 명색이 사진가인 사람이 술을 마시기 위해 카메라까지 팔 정도다. 술에 곁들이는 음식도 기가 막힌다. 어찌나 호기심이 많은지, 애벌레처럼 살아 꿈틀대는 산낙지는 물론이요 역겹기로 소문난 삭힌 청어 통조림, 부화 직전의 오리알까지도 망설임 없이 도전한다.

 술을 하도 자주, 오래, 다양하게 마셔서인지 술맛에 대한 묘사는 마치 직접 입안에 그 술을 털어넣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시큼하면서도 시원한 맛과 함께
발포주의 강렬한 자극이 느껴진다.
그리고 달착지근한 맛도 함께
어우러져 정말 맛이 좋다."


막걸리를 소개하는 이 문구를 읽고 있으면 코를 탁 쏘는 새콤달콤한 그 맛이 입안을 맴도는 것이다. 또 비위가 약한 나는 평생 시도조차 못 할 베트남의 빗론, 즉 부화 직전의 오리알은 또 어떤가.


"알루미늄 스푼으로 오리알을 부수었다. 올챙이처럼 생긴 머리와 가느다란 목이 둥근 노른자 안에서 부러진 채 튀어나왔다. 그 안쪽에는 다리 같은 것도 보인다. 부화하기 사흘 전에 해당하는 오리알이 맛이 최고라고 한다. 알루미늄 스푼으로 떠먹어 보았다. 찐 오리알의 가벼운 유황냄새와 간의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찔 때에 배어든 즙과 느억맘이 섞여 꽤 괜찮은 맛이다. 아니, 최고의 수프다."


 관찰부터 입에 들어가기까지 너무나도 생생해서, 마치 직접 입에 넣은 듯 군침이 돈다. 이런 식으로 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술맛과 안주맛이 맛깔나게 묘사가 되어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읽어나갔다. 책장을 덮고 보니 마치 그 짧은 시간에 세계 여행이라도 한 바퀴 돌고 온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편하게 앉은 자리에서 책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게 정말 큰 행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은 자유라고 하지 않는가. 어린 시절 막연하게 막걸리에서는 쌀 음료수 맛이, 맥주에선 사이다와 콜라를 섞은 맛이 날 거라고 상상했던 것처럼, 텍스트만 읽으며 그 맛을 상상해보는 것은 실패 없이 즐겁기만 한,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알쓰인 내게 행복한 술맛을 알려줘서 고마웠던 책이었다.

 
[명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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