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병든 사랑이 그들과 우리에게 남긴 것 [문학]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캐릭터 분석을 중심으로
글 입력 2017.07.0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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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는 그녀의 저서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847)에서 다양한 사랑의 양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작품을 읽으며 그것들이 각 인물의 제한적인 사고 안에서 형성되었으며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유약한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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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가히 파괴적이다. 그는 힌들리, 캐서린과 에드거, 그들의 아이에게까지 기나긴 복수를 가한다. 하지만 복수가 완성되어 갈수록 그의 사랑은 더욱 처절해지며 자신을 파멸의 길로 이끌 뿐이다. 작품 첫머리에서 그의 집을 방문한 록우드에게 사냥개들이 공격한 것을 보고도 놀라기는커녕 "손님을 맞아 버릇하지 않아 그렇다"라고 말하며 이해해달라는 그의 태도는 어딘가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냉정하고 소름 끼친다. 하지만 이렇듯 세상 어떤 것에도 무관심할 것 같았던 그가 캐서린의 혼령을 느끼고 돌변한다. 몸을 내던지듯 흐느끼며 “캐시, 제발 이번만은 돌아와 줘!”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매일매일을 후회로 가득 찬 삶을 살고 있고, 현재는 과거의 지속이며 달라질 것이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캐서린이 자신을 완전히 거부한 것을 알고 홀연히 떠나버린 그 날, 그의 거칠고 감정적인 사랑은 그 깊이를 간직하되 낙담과 복수심으로 탈바꿈하고 만다. 그 순간 그는 철저히 자기감정 안에 갇히게 되는데, 자신이 생각한 것이 곧 진실이라 믿으며 그 좁은 사고 안에서 ‘복수’라는 글씨만 덧쓰게 되는 것이다. 캐서린에 대한 사랑이 하루도 타오르지 않은 적이 없는 그지만, 그 사랑을 다 품어내지 못하고 복수라는 영리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를 분출하려고 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지키지도 못한 점에서 그의 연약함을 알 수 있다. 겉보기에는 그 어떤 사랑보다 거침없고 뚜렷해 보이는 그의 사랑이 사실은 누구보다 여리고 깨지기 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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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드거는 히스클리프와는 달리 비교적 이성적이고 차분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본성이 너무 나약한 탓에 일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의 병을 못 이겨 죽는 인물이기도 하다. 히스클리프가 3년이 지나 확연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는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고 캐서린에게 히스클리프인지 자신인지 한 명만 택하라며 기회를 줘 보인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마음 안에서 솔직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해 온 그녀에겐 별 소용 없는 수이다. 그는 캐서린을 품을 정도로 강인하지 못하다. 변덕스러운 그녀를 사랑한 에드거는 매일 답답함과 자책에 시달리며 아파해야 한다.

 캐서린이 죽고 난 후 에드거는 그녀가 남긴 자식을 애지중지하며 키우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이어간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같은 상황 아래 에드거와 힌들리의 사뭇 다른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인물 모두 아내를 잃고 남겨진 자식을 홀로 키우는 처지가 되었지만, 에드거가 헌신적으로 딸 캐시의 양육에 신경 쓰며 아이가 다치지 않게 극도로 주의하는 반면, 힌들리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아이를 소홀히 다룬다. 그가 술을 먹고 2층 난간에서 헤어튼을 떨어뜨린 이후로도 그는 변하지 않고 타락한 삶을 이어간다. 에드거는 딸을 보면서 아내 생각이 나 더욱 보듬어주는 등 타고난 연약함을 드러내며 신경을 쏟지만, 역시 헤어튼을 볼 때마다 아내 생각이 났던 힌들리는 포악하고 제멋대로인 성격 그대로 행동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아내를 잃는 순간 더욱 자제력을 잃고 망가진 채 자신을 가둔 힌들리의 우울한 본성과 거기서 파생된 그릇된 사랑 방식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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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주목되는 양상은 작품의 마지막에서 드러나는 캐서린 린턴헤어튼 언쇼와의 사랑이다. 물론 두 사람의 사랑이 작품 안에서 단정적으로 그려지지는 않지만, 충동적인 사랑에 데이고 철저히 이용당한 캐서린이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헤어튼 서로가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도와주었다. 처음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을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감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는 것을 느끼는 둘을 보여줌으로써 브론테는 바람직한 사랑의 모습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그녀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힌들리와 에드거, 그리고 그들의 자녀를 통해 결함 있는 사랑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우울한 감정까지 일으키곤 하는 그들의 사랑 끝에, 긍정적인 가능성을 내포한 새로운 사랑을 암시함으로써 우리는 그녀가 강조하고 싶었던 바를 짐작할 수 있다. 함께 책을 읽으며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고 정원의 까치밥나무를 뽑아 꽃 침대를 만드는 등의 상호 노력하는 관계에서 우리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작가는 캐서린 린턴과 헤어튼 언쇼를 통해 사랑의 감정은 이렇듯 자연스러운 것이며 같이 공들여 함께 발전하는 것에서 진정으로 꽃피워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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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우리 삶에 있어 빼놓고 이야기될 수 없는 근원적인 감정이며 원동력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모습의 사랑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 서로를 대한다면 작가가 말하는 건강한 사랑을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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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구글


[염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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