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의 조각가들전_리뷰]

한국의 근현대 조각과 조각가들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
글 입력 2017.06.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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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의 조각가들전: 한국의 근현대 조각과 조각가들을 만나는 특별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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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시 소개 및 기획

  [성북의 조각가들 展]은 성북 지역에 거주하며 작업했던 작가 4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였다. 네 명의 작가들은 저마다 한국 근현대 조각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긴 하나, 특이하게도 그들은 성북 지역에 거주한 경험이 있었고 서로 교류를 자주 해온 이들이었다. 우연인지 아닌지, 비슷한 곳에 아틀리에를 마련해 작업한 그들의 작품들을 한 곳에서 보고 있자니 다른 전시들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보통은 비슷한 사조 혹은 비슷한 주제를 가진 작품들을 모아 전시 기획을 하기 마련인데, 시간 뿐 아니라 장소를 공유한 이들을 한 자리에서 보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조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마다 자신의 스타일대로 작업을 진행한 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어떠한 양식이나 기법을 공유하기보다 예술가의 본질을 탐구하는 정신과 장소를 공유한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그들의 작업은 이제 조각사의 한 페이지에 남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현재 진행형이었고 누구보다 열정에 불탔던 그들의 작업을 결과물과 함께 사진,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어 굉장히 유익한 전시였다.



2. 작품 감상

1) 송영수

  송영수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철을 이용하여 인체형상을 추상적으로 조각한 것이라는 소개가 브로셔에 적혀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실제로 가늘고 길게 뻗어있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나는 처음에 작품을 보았을 때 그것이 인체라기보다는 인체의 추상을 통해서 다른 무엇인가를 표현해 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순교자]였다. 가장 윗부분의 형태는 가로로 길게 뻗어 양 끝이 손바닥을 펼친 듯한 모습이었고, 그 가운데에서 몸통을 타고 이어진 어떤 덩어리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목에 대입하여 생각한 탓도 있겠으나, 윗부분에서 가로로 뻗어있던 손은 강한 욕망을 가진 채, 무언가를 갈구하는 처절한 손짓처럼 보였다. 그 손 아래로 길게 이어진 몸통은 마치 그 손을 타고 흐르는 피를 형상화한 듯했고 결국 그 피가 한데 덩어리져서 강한 신념이자 그 신념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 순교자라고 하면 나는 항상 정조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가 떠올랐다. 어렸을 때 책장에 꽂혀있던 그의 위인전 내용이 내가 들었던 첫 순교자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 이후에는 전주의 전동성당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처형당한 윤지충으로, 그 다음에는 신유박해 때 희생당한 사람들로 내 머릿속의 순교자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마주친 송영수의 <순교자> 상은 이야기로 맴돌던 내 머릿속 이미지를 눈앞에 드러내 놓은 모습인 것 같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우리가 무엇에 대하여 순교자라는 표현을 쓰는가?라는 의문이 생겨났다. 작품이 완성된 때를 보니 1967년이라고 적혀있어 나는 곧 순교라는 표현을 민주화와 연결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믿음을 고수하며 마침내 희생을 강요당한 것이라 보았을 때 종교에 대한 믿음과 민주화에 대한 믿음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의 대상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 질서에 끼워맞추는 과정에서 희생되는 그들 모두가 순교자가 아닐까하는 결론을 조심스레 내려보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순교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오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때, 나는 오늘 보았던 조각상처럼 피가 굳은 응어리를 마음에 품은 채, 변화를 위해 손뻗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나 자신으로의 질문도 던져보았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효]이다. 얇고 긴 팔다리가 이어져 있어 [순교자]보다는 더욱 인체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인체를 닮은 효의 형상을 보며 나의 효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게 되었다. 작품이 완성된 때는 1950년대로, 당시에는 효를 다할 대상인 부모가 없는 고아들이 많았을 것이다. 효를 행하고 싶어도 부모가 없어 슬프고 고통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고령화 사회로, 많은 젊은이들이 효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유교의 전통적인 가치로 모두가 옳다고, 반드시 지켜야한다고 여겨져 온 효를 지금은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행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또 어떻게 ‘효’라는 것이 바뀌어 갈까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었다. 송영수의 [효]는 효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얇고 가늘게 이어진 형태가 과거로부터 이어진 효의 전통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두 다리로 작품을 받치고 있는 아랫부분을 보자 현재의 젊은 층이 효에서 느끼는 부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리가 좀 더 튼튼해지고 더 든든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김종영

“작품이란 미를 창작한 것이라기 보다 미에 근접할 수 있는 조건과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종영

  위의 김종영 작가의 말은 정말 작품에 나타나 있는 듯했다. 앞서 감상했던 송영수 작가의 작품과 달리 작품에 사용한 재료 본연의 느낌이 잘 드러나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작가의 작품이 더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 작가의 작업 방식이 다름이 단번에 느껴졌다. 송영수 작가는 인체형상을 (내가 느끼기에)반추상의 철조각으로 표현했다면 김종영 작가는 재료 자체가 작품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도 그가 나무로 만든 작품은 그 작품이 곧 나무가 되었고, 돌로 만든 작품은 곧 돌이 된 것 같았다. 어떤 메시지를 담은 제목이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재료에 자꾸만 말을 걸어서 돌의 느낌을 표현하고 나무의 느낌을 표현해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와 느낌이 다른 작품이 하나 기억에 남는다. [작품 76-19]라는 제목의 그 작품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특별한 장식 없이 조용히 서있던 그 작품은 나로 하여금 어린 시절에 자주 갔던 절을 생각나게 했다. 아빠가 역사 선생님인 만큼, 고건축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 덕분에 우리 가족은 어딘가로 놀러갈 때면 꼭 절을 들르곤 했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갔던 절은, 내가 불교신자가 아님에도 종종 나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그에서 연상되는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게 했다. 그 기억들을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도 볼 수 있었다. 화강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석영이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이면 유년시절의 내 기억도 반짝이는 듯했다. 언제 꺼내도 빛나는, 예뻤던 나의 추억만큼이나 그 작품이 감정이 투영된 탓인지 아름다워 보였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작품의 외형이었다. 그것은 마치 어떤 건물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처럼 무늬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 화강암은 절에서 바닥의 돌, 주춧돌, 연돌 등의 역할을 했던 기억이 나서 이 돌도 원래는 건물의 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작품이 되었지만, 이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쳐 거뭇하게 남은 흔적만이 증명해주는 건물의 한 부분이었다는 과거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3) 성북 조각가들의 인연

  이번 전시의 제목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2전시실의 ‘성북 조각가들의 인연’이었다. 앞선 순서는 네 작가들의 작품을 작가의 코멘트와 함께 전시한 것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네 명의 작가 자신들과 그의 가족, 그리고 작업 과정까지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이 작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젊은 시절, 그들의 작업 과정, 만나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은 그 시대 특유의 감성을 타고 나에게 울림을 주었다. 아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던 아련한 느낌처럼 사진 속에 담겨진 그들의 모습을 보니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듯한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앞서 보았던 그들의 작품들도 더 이해가 잘 되는 것 같았다. 작품을 볼 때, 나의 감상도 중요하지만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나 항상 궁금해하고 상상하게 되는데, 이러한 궁금증을 잘 풀어주는 전시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생각이 자세하게 기록된 텍스트가 아니라 사진 몇 장뿐이긴 했지만 때로는 수 마디의 말보다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줄 때가 있는 것처럼, 사진에 포착된 그들의 표정과 몸짓이 많은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 했다. 한쪽에 마련된 영상관에서는 가족들이 작가의 삶을 인터뷰 형식으로 관객에게 전달해주어 내가 마치 그들의 일기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작품을 통해, 아틀리에를 통해, 사진을 통해 네 명의 작가들을 만나며 작은 전시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나온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정신과 예술적 고뇌를 조각이라는 언어로 열심히 풀어냈을 그들을 생각하자 일종의 경외심이 들기도 했다. 또한 전시가 진행되는 성북동 바로 그 곳 근처에 작가들의 아틀리에가 있었다는 사실이 들과 좀더 가까이에서 만나는 느낌을 주어,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신선함을 주기도 했다.

  조각이라서 정적이거나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은 정말 기우였다. 비록 작은 전시였지만, 네 명의 작가들과 물리적·정신적으로 가까이 만날 수 있었던 이번 전시는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고, 또 오래도록 행복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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