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노예 12년’을 통해 바라 본 인류의 비극, 존엄성에 대하여 [시각예술]

곳곳에 흩어져 있는 차별적 시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며
글 입력 2017.04.12 20:4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최근 인종 차별, 인권 유린에 대한 논란들이 화두다. 얼마 전 에어비앤비의 한인 숙박거부 사태가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는데, 그 분노가 채 식기도 전에 유나이티드 항공사 측의 승객 강제 퇴거 사건이 터졌다.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화가 난다. 인종 차별적 문제가 아니냐’, ‘정당하게 돈을 주고 산 자리인데 왜 피해를 받아야 하나’, ‘이건 인종 차별을 떠나 인권 유린이다’ 등등 항공사 측의 사과문에도 전세계적으로 거센 보이콧 바람이 일고있다. 인권 유린 실태는 비단 이 뿐만이 아니며 우리 주변에서도 폭행, 학대 사건이 연이어 뉴스 기사로 나오고 있다.

 인간이 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권리를 유린하는 실태가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개선 될 기미가 없는 솜방망이 처벌은 우리의 분노마저 허탈하게 만든다. 구시대적으로 향하는 이러한 시대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부조리에 대해 맞설 용기조차 잃게 한다.


14dc23a9a2925ee763a6f7db9d491dcd.jpg
 

 예전에 관람했던 영화 중, ‘노예 12년’이 생각났다. 이 영화가 시사하는 메시지는 우리 시대의 부조리와 닿아 있어 더욱 비통한 마음이 들었다. 실제 솔로몬 노섭이라는 사람이 겪었던 인권 유린의 행태를 영화에 담아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자유인의 신분이었던 사람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노예로 전락한 사건이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은 허탈함과 그들의 분노를 볼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고발을 나타내는 이 작품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줄거리

movie_imageLWH7XQ5D.jpg

movie_image.jpg



 1840년대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나타난다. 미국내 자유주(州)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州)로 팔아 넘기는 것이다.
 1841년 뉴욕, 아내와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은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호의적인 두 백인 남성을 만나 워싱턴의 악단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해준자면 거액을 지불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들에게 속아 솔로몬 노섭은 저녁 만찬에서 그들이 준 술을 마신 후, 정신을 잃게 된다. 그러고는 다음 날 눈을 뜬 솔로몬 노섭은 손과 발에 묶인 사슬을 보며 당혹스러워 한다. 자신이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가 도착한 곳은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였다.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에게 노예 신분과 ‘플랫’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고,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두 명의 주인 ‘윌리엄 포드’, ‘에드윈 엡스’ 를 만나게 된다.
 악몽 같은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솔로몬 노섭, 과연 그는 자유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의 시선

25.jpg


 영화를 보고 나서는 공허함, 안타까움, 허탈한 마음이 컸다. 과연 여느 시대에서든 인종, 계급을 떠나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존엄성이란 지켜지지 않을 숙제인 것인가? 예컨대, 소수자라는 개념에 의해 차별 받는 문제를 비롯하여 오랜 시간동안 투쟁해 온 인종, 크게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 결코 야만적인 시선을 거둘 수는 없는 것인가? 이 영화에는 시대의 부끄러운 초상이 담겨 있었다.

 노예제, 더 나아가 인권 유린의 끔찍한 실태는 비단 200년전 만의 일이 아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해당 문제가 어느 시대의 맥락에서나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일제강점 하 위안소로 강제 연행되거나 징용을 당해야 했던 조선인들, 혹은 ‘콤프라치코스’라 불리우는 17세기 영국의 아동 유괴 사건과 같이 힘, 권력을 가진 인간이 상대적으로 약한 인간에게 벌이고 있는 죄악은 극악무도하다. 현대로 와서 역시 마찬가지다.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각종 폭행, 추행 사례들,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 더 가깝게는 노사의 갑을 관계까지. 사회는 어디 하나 정상적이지 않으며 병들어 있다.

 나는 노예 12년을 보며 느꼈다. 인권의 존엄성 문제는 시대마다 다른 군상으로 나타날 뿐이지 우리 세대에도 결국 겪고 있음을 말이다. 영화가 던진 메시지가 사회의 부조리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나는 더 고통스러웠다.

 
movie_image17RYYHJ1.jpg
 

 그리고 영화는 이면성을 지닌 인간 군상에 대해 폭로한다.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는 왠지 선해 보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위선적인 인물이다. 앞에서는 노예들을 위하는 척만 하지, 실상은 노예 무역을 하는 위선자일 뿐이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자신이 행하는 이면성에 대해 괴로워할 법도 하지만 결국 그가 저지르는 이중성은 노예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줄 뿐이다. 음악가였던 솔로몬은 바이올린을 부셔버리며 끝내 자아를 파괴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유로운 신분으로써 향유했던 음악에서 노예 주인을 위한 연주로 거듭나는 순간 자유는 이미 없어진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은 더 이상 회복해 나가야 하는, 이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마땅히 보장되어야 하는 당위적인 개념인 것이다. 사소한 움직임이 전체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고통을 공감하며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의무다. 생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차별적 시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며.


[성지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