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린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공연예술]

물고기와 어항을 준비해야겠다.
글 입력 2017.04.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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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통한 상중의식.
상을 당하면 그 슬픔을 억누르지 않고 자신의 눈물을 어항에 받고 물고기를 그 속에 넣는다. 그리고 7일 후 그 물고기를 건져 기절시킨 후 튀겨서 먹는다. 그 물고기가 내 안에서 소화가 되고 나면 비로소 장례의식은 끝난다.


 연극에서 나온 어느 의식인데, 나는 이 의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장례의식에 위트가 어디 있겠느냐 만은 극중 분위기와 어우러져 다소 유쾌한 분위기를 선사하기도 했고 동시에 더욱 가슴 아린 의미로 다가오게 하는 장치였다.

작품은 어른(끌로드)과 아이(끌로드), 딱 두 명이 나오는 2인극이다. 2인극이면 극을 이끌어가는 데에 있어서 좀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나의 선입견에 콧방귀 끼듯 극은 너무나 순조롭게(?), 에너지 넘치게 흘러갔다. 처음 공원 벤치에서 만난 둘은 아이가 갈 곳 없어하여 어른 집에서 며칠 머물게 된다. 혼자 살던 어른의 일상에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난다. 아이를 돌보기도 해야 하고 아이의 부모님을 찾기도 해야 하니까. 그치만 그 안에서 자신이 변하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마지막 부분에 큰 끌로드와 작은 끌로드가 서로 화해하고 안는 장면은 자신과의 화해이며 자기 정체성의 확립,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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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연극을 보는 중간마다 기분이 묘해지고 본 후에 며칠 간 계속 생각나는 매력이 있다. 중간에 느꼈던 묘한 기분은 어떤 기분이냐면, 마치 낮잠을 자고 눈을 떴는데 저녁이 되어 밖은 껌껌한데 아무도 없을 때의 그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작은 끌로드가 안아달라고 할 때 나에게도 안아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연극을 보는 모두였을 것이다.
 
 나는 프랑스 영화나 연극에서 나타나는 그 특유의 격렬하고 급변하는 감정표현이 당황스러워도 꽤나 좋아한다. 이 연극에서도 그러하다. 둘의 감정이 요동쳐 폭발 할 때면 살짝 염려스럽기도, 왜 저러나 싶기도,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 이해가 가면서 마음이 아팠다.
 
 어린 시절의 자신과의 조우는(그 시절의 아픔을 기억하는 자라면 더더욱) 참 힘들고 쑥스럽고, 안아주고 싶다. 연극은 이처럼 사랑스럽고 아리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중간 중간 했는데 마지막까지 보고 나니 이건 그냥 연극으로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끌로드와 어린 끌로드가 눈앞에서 끌어안는 장면을 화면으로 본다는 것은 불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모두가 어린 자신을 만나 화해하고 나를 받아들이는 그 어려운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겐 물고기가 필요 없을 텐데, 나는 아마도 물고기와 어항이 필요할 듯하다.

(4월 23일까지 연장 공연을 한다던데, 한 번 더 보러갈까 싶다.)

 
[이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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