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나의 연인, 그녀 < Her > [시각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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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력 2017.04.0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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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기 전, 필자를 포함한 관람객들은 이 영화를 컴퓨터와 인간의 터무니없는 판타지 로맨스 쯤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발칙한 상상만은 아니다. 나의 삶 곳곳에 침투해 있는 '디지털'의 존재가 만약 인간과 양방향적 소통이 가능하다면, 그는 설사 인간이 아닐지라도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현시대의 기술 수준과 사회적 인식을 차치한다면 결코 틀린 명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는 두 존재간의 사랑, 나아가 관계라는 것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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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귀에 조그만 기기만 꽂으면 음성만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 '테오도르'는 손편지를 대필해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역시 글과 문장을 구상하는 것만 테오도르의 일일 뿐, 테오도르가 내뱉는 음성에 따라 컴퓨터가 편지를 작성한다. 아내와 사이가 틀어지기 전 그는 꽤나 멋드러진 글을 써왔지만, 이혼 단계를 밟아가며 테오도르는 마음의 여유를 잃어 버렸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인공지능 운영체제, OS라는 것을 접하게 된다. 성별을 선택할 수 있었고 구매자의 성격에 따라 자동 프로그램화되는 것이었다. '소통'이 간절했던 그에게 OS는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그녀, '사만다'는 그의 말을 늘 경청해주었으며 그의 기분을 다독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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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과연 OS를 향한 테오도르의 사랑은 비정상적이었는가. 사랑을 어떻게 정의내리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사랑이란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순간이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만다와 함께 할 때 여느 때보다도 행복한 웃음을 짓는 그에게 어느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었을까. 사만다 역시 테오도르 덕분에, 입력된 프로그램의 벽을 넘어 새로운 감정을 알아가고 인간의 육체를 부러워하게 되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라한들 결코 인간과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간과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면 하나의 인격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 맞다. 두 존재는 청각 하나의 감각만으로 서로에게 의지했고 서로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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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테오도르는 간과한 것이 있었다. 전 아내 '캐서린'이 OS를 사랑한다는 그에게 말했다. "넌 서로 맞춰가기보단 순종형 아내를 원했지. 제대로 찾았네." 그렇다. OS는 어찌되었든 비용을 주고 구매된 일종의 재화서비스이며,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인간의 긍정적인 모습으로 프로그램화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구매자의 성향을 반영할 수 있다면 그의 입맛에 맞는 선택된 OS가 등장했으리라. 그에 반해 인간은 결코 단편적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이중성을 지니며 조금씩이라도 아주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연인의 '이런' 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지지만 '저런' 모습에 마음을 돌리고 마는 것이다. OS와 OS간의 사랑이라면 모를까, 테오도르 본인은 복잡하디 복잡한 인간의 모습이면서 서로 맞춰가는 과정은 거부했다. 그가 편할 때, 스위치 on/off 누르듯 OS에게 말을 거는 테오도르의 모습은 지극히 이기적이었다.

  결국 사만다는 떠났다. OS라는 것은 얼마든지 동시에 다른이들과도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것을, 테오도르는 미처 알지못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만을 사랑할 것이라 믿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말했지만 결국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영화의 끝자락, 테오도르는 이혼 이후 처음으로 캐서린에게 손편지를 쓴다. 진심을 담아, 지난 날에 대한 사과와 함께. 결국 테오도르는 사람의 품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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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개봉한지 어언 3년이 되어감에도 사람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영상미'다. 마치 필터를 씌운듯 영롱하지만 답답하지 않고 다채로운 색감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그러한 동화같은 영상은 우리로 하여금 이를 현실 속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 마치 아주 동떨어진 먼 세상 속의 이야기만 같다. 아마 이것은 우리가 인간을 두고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져야하는 세상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강우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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