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르웨이의 숲-나는, 너를 그렇게[문학]

글 입력 2017.04.0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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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너무도 짧기에, 그리고 가장 아름답기에 두 글자만으로도 우리들에게 설렘을 주는 단어이다. 하지만 그 시절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그 이면에 큰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도전을 해보고 이에 따른 실패도 해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도전 중, 지금 청춘을 사는, 혹은 살았던 우리에게 가장 큰 상실감을 준 것은 아마 사랑이 아닐까 싶다. 우리들의 가장 찬란했던, 그리고 동시에 아팠던 시절의 ‘상실’을 잘 보여주는 소설 하나가 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출판 된 후,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본제목보다, 오히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더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37살이 된 와타나베가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과거를 회상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나는 고개를 들고 북해 상공을 덮은 검은 구름을 바라보며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10p).


보통 <노르웨이의 숲>을 ‘삼각관계’라는 구도아래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지만 나는 이보다, <노르웨이의 숲>을 소설 속 와타나베를 통해 ‘청춘이란 이름의 순애보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I once had a girl, or should I say, she once had me...
She showed me her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
한 때 나는 여자가 있었네, 아니 그녀가 나를 가졌던 거라 해야하나
그녀는 자기 방을 보여주면서 내게 말했지, 노르웨이산 가구 멋지지 않나요?
 
She asked me to stay and she told me to sit anywhere,
So I looked around and I noticed there wasn't a chair.
그녀는 내게 머물라며 아무데나 앉으라 했지
그래서 둘러보니, 그 곳엔 의자 하나 없더군
 
I sat on a rug, biding my time, drinking her wine
We talked until two and then she said, "It's time for bed"
 난 양탄자 위에 앉아 그녀의 와인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지
우린 두시까지 얘길 나눴고 그녀는
‘이젠 잘 시간이네요’라고 말했어

(생략)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
So I lit a fire, isn't it good, norwegian wood.
그리고 내가 아침에 홀로 깼을 때, 이 새는 날아가 버렸어
그래서 난 불을 지피며 말했지, 노르웨이산 가구, 멋지지 않나요?
 
by the beatles

 
비틀즈의 ‘Norwegian Wood’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르웨이의 숲>을 쓰기 시작했을 때 영감을 준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노래의 가사가 소설 속,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나오코    (생략)목이 터져라 불러도 아무도 듣지 못하고, 누군가가 발견할 가능성도 없고, 근처에 지네 거미 같은 것들이 우글대고,(생략)그리고 위쪽에는 빛 의 동그라미가 마치 겨울 하늘의 달 처럼 작게 작게 떠 있어. 그런 데서 홀 로 천천히 죽어가는 거야. 

(생략)
 
와타나베    생각만 해도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아. 누군가 찾아내서 울타리라도 쳐야지
 
나오코       하지만 아무도 그 우물을 찾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제대로 된 길을 벗어나면 안 되는 거야.
 
와타나베    절대로 안 벗어날래.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기즈키가 자살을 한 후, 나오코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고 결국엔 요양원과 비슷한 곳에 들어가게 된다. 위의 대화 속 “제대로 된 길을 벗어나면 안 되는 거야”라는 그녀의 말은 이미 “제대로 된 길”을 벗어나 깊고 어두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우물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렇게 깊고 어두운 우물 속에 빠진 나오코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와타나베는 그녀에게 ‘바깥세상’이 되어주려 노력하지만 그녀는 결국 비틀즈 노래의 가사처럼 새가 되어 날아가고 만다.

소설 속 젊은 와타나베는 책 읽는 것과 나오코와 관련된 일 이외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소설 속, 가장 최고라고 생각하는 책은 바로 제이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이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속 개츠비와 와타나베가 많이 겹치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바로 ‘순애보적인 사랑‘이라는 면에서 말이다. 데이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던 개츠비와 “우물”에 빠져 바깥세상과의 소통을 잃어버린 나오코를 위해 자신의 청춘을 슬픔과 함께 살았던 와타나베는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한 대상에게 깊이 빠진 이는 그 외의 세상을 보지 못 하는 법이다.


뭘 보고 뭘 느끼고 뭘 생각해도, 결국 모든 것이 부메랑처럼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마는 나이였다. 게다가 나는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은 나를 몹시 혼란스러운 장소로 이끌어 갔다. 주변 풍경에 관심을 기울일 마음의 여유 같은 건 아예 없었다(12p).


그런 와타나베는 37살이 돼서야 그녀가 날아갈 새였음을, 자신의 사랑이 그 사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왜 나에게 “나를 잊지 마”라고 말했는지, 지금은 그 이유를 안다. 물론 나오코는 알았다. (생략)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슬프다. 왜냐하면, 나오코는 나를 사랑하지조차 않았던 것이다(22p).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그토록 아픈 기억을 남겨주고 끝까지 “나를 잊지 마”라고 말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와타나베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오코에게 와타나베는 단지, 세상에 자신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바깥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그녀를 그렇게 사랑했었고 그녀는 그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노르웨이의 숲>은 표면적으로 볼 때, 청춘의 뜨겁고 아픈 사랑을 가장 큰 주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주제 이외에도 우린 많은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매사 흥미를 느끼지 못 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와타나베를 통해, 부모님에게 어리광을 부릴 수 없었던 미도리를 통해, 그리고 세상으로 나가지 못 하고 “우물”에 빠져버린 나오코를 통해, 작가는 ‘우리들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오로지 푸르기만 한 삶은 없다. 우리 모두 그렇게 아픔을 갖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너는 괜찮다’라고 말해준다. 하루키는 그렇게 위로를 주는 것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리고 과거를 살았던 이들에게 말이다.


노르.jpg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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