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위대한 기록] 누구의 오브제인가? - 도서 BRA BOOK

글 입력 2017.03.1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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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오브제인가?
BRA BOOK
브라북 표지.png
 

브라북 표지.png

 
작년 겨울, 독립출판 페스티벌인 Unlimited Edition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는 독립출판에 대해 깊게 알지 못하던 때라 페스티벌에 참가한 수많은 작가들과 책들을 보며 ‘독립출판 시장이 이렇게나 컸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축제에 온 김에 재미난 주제의 독립출판물을 하나 사보자 마음먹고 열심히 구경하였으나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계속해서 망설였다. ‘책’ 보다는 ‘굿즈’에 더 이끌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책 한권이 있었으니 바로 ‘BRA BOOK'이었다. 독립출판 페스티벌인만큼 개성 넘치는 출판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제목만으로 책을 사게 만들었다.

아마 내가 책 제목인 ‘BRA'만 보고 책을 산 것처럼 ‘BRA'는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시선을 끄는 존재이다. 이 책은 ‘BRA'를 통해 어렵고 무거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보다 정말 ‘브래지어’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 브래지어에 대한 여자의 생각, 남자의 생각, 브라의 변천사, 브라의 개념 등등 그래서인지 이 책 한권을 다 읽고 났을 때 브라 박사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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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BRA'란 불편한 존재였다. 팬티도 늘 착용해야하는 속옷이지만 브래지어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브래지어는 부담스럽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옷맵시를 위해 아침마다 가슴을 정돈하며 브라에게 오늘의 나를 잘 부탁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여름이면 너무나 짜증나는 속옷이었다. 푹푹 찌는 여름날일수록 노출은 더해지기에 브라를 놓을 수는 없다.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는 속옷을 내가 내 손으로 집어 입는 것을 보면 내 자신에게 미안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생각은 친구들과 얘기할 때 정말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그래서 브라에 대한 여자들의 생각은 전반적으로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존재이겠거니 했는데 이 책에 실린 여자들의 인터뷰를 보고는 ‘내 브래지어를 내가 안 아껴주면 누가 아껴주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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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브라는 여자에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특별한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언더웨어는 남자를 포함해 누구나
착용할 수 있지만 브래지어는 유일하게 여자에게만 허락된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BRA'는 분명 억압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여자들은 그리고 나는 필요에 의해서 그것을 찾아 입고 또 이 존재로 하여금 나의 여성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 책의 인터뷰에서 ’BRA'를 착용하지 않고 길거리에 나가니 마치 사회적 금기를 어긴 사람으로 시선이 집중되어 당황했다는 글이 있었다. 이런 대목에서 보면 분명 사회가 여성에게 'BRA'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나는 꼭 이런 이유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에 의해서도 속옷을 착용하기에 내가 억압당한다는 억울함이 조금이나마 덜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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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억울함은 여전했다. 브래지어에 대한 남자들의 인터뷰 때문이었는데, 그들이 단순히 ‘BRA'를 성적 자극을 일으키는 도구로 생각해서가 아니다. 여성이 감수하는 'BRA'의 불편함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착용해보지 않는 이상 100%이해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어머니가, 아내가, 애인이 그리고 딸들이 소녀 때부터 죽을 때까지 속옷을 하나 더 착용하는 것에 대해 단순한 여성성으로만 바라봐주지는 않기를 바란다.

브라는 워낙 종류가 다양하지만 보통 여성들은 표준화된 사이즈에 디자인만 선택해서 착용하곤 한다. 책에서는 다양한 브라 종류를 소개하고 있는데 나도 처음 보는 것들도 있었다. 어디선가 여성들이 평생토록 자신에게 딱 맞는 사이즈를 모른 채로 살아간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나 역시도 속옷 가게에 가서 점원이 줄자로 재주기 전까지는 나의 정확한 신체 사이즈를 몰랐다. 그렇게 사이즈를 잰 것이 아마 브래지어를 착용한지 10년만이었다. 나와 가장 붙어있는 시간이 긴 속옷인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나는 'BRA'에 대해 무지했다. 그저 예쁜 것 만을 살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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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불만이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더 커지는 요즘이었다. ‘여자여서 위험하고, 여자여서 안 되고, 여자가 하는 일이고’ 이런 것들에 대한 사회적 관습에 넌더리가 났고 어떻게 하면 돌파해볼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이런 나에게 'BRA BOOK'은 여자로 태어난 ‘나’에 대한 감사함, 아름다움 남성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들었다. 분명히 타파해야하고 사라져야하는 관습은 존재한다. 하지만 고군분투하는 동안에 잃어버릴 수 있는 나의 성에 대한 특별함을 간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런 특별한 책, 독립출판이 아니었으면 재밌고 독특하게 풀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BRA BOOK※
기획 민진아 이수영
편집 이수영
디자인 민진아
사진 민진아 김윤
가격 12000원


[이정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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