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모네의 그림과 나의 기억[시각예술]

우연히 다시 만난 모네의 그림과 그 속에서 찾은 추억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17.02.2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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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은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제때 일어났음에도 지하철을 놓치고, 약속에 늦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2번이나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고되어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목적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모네의 ‘수련’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련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맑은 아침.jpg
 수련 :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맑은 아침, 클로드 모네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미술시간에 누구나 한번 쯤 만나보았을 모네의 ‘수련’. 당신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나요? 저에게는 이 그림이 ‘낯선 곳에서 만난 처음으로 만난 익숙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입니다. 정든 곳을 떠나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친구 한 명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전학을 간 학교로 등교한 첫 날, 모든 것이 낯설어 살갑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에게 단 한마디 대답도 하지 못하고 책상만 내려다보며 하루 종일 울상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날의 마지막 교시였던 미술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그림의 이름은 무엇일까요?’라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고개를 들어본 TV속에는 전학을 오기 전 배웠던 모네의 ‘수련’이 있었습니다. 옆의 짝꿍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수련이에요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낯선 친구들, 선생님, 학교 속에서 만나게 된 익숙한 그 그림에 하루 종일 쌓여있던 설움이 터졌는지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그림을 보고 울어버린 사건으로 옆의 반까지 소문이 나 유명인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게 된 친구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와 주었기 때문에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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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rning on the Seine in the Rain, 클로드 모네



  이사를 간 곳에서 4계절과 다양한 날씨들을 모두 겪으며 제가 가장 좋아했던 날은 여름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방학이 시작되고 장마가 시작되는 그 시기에는 피아노가 있는 작은 방에서 더 작은 베란다 창문의 플라스틱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곤 했습니다.

  전학 첫날의 사건으로 왠지 모르게 모네가 좋아져 그의 그림을 출력하여 집안 곳곳에 두곤 했었는데, 그 방에는 항상 ‘Morning on the Seine in the Rain’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마치 그 그림 속에서 나오는 듯 했습니다.

  빗방울이 하나하나 표현된 그림은 아니지만 그러기에 더 비가 오는 것 같았던 그림. 한 여름임에도 코끝이 선선한 공기를 즐기며 팔에 오소소 닭살이 돋을 때 까지 빗소리와 그 그림을 즐기던 감각과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제는 개발이 되어 키 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빗소리의 추억을 ‘Morning on the Seine in the Rain’ 속에 소중하게 담아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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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라솔을 든 여인, 클로드 모네



  초등학교 수업시간 중 가장 좋았던 시간은 단연 미술시간이었습니다. 미술이 있는 날이면 담임 선생님께서는 항상 4교시 내내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셨었습니다. 미리 알려주신 다음 미술시간의 주제는 ‘부채에 그림 그리기’였습니다.

  부채에 어울릴 만한 그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에 바람이 느껴지는 ‘파라솔을 든 여인’이 어울릴 것 같아 그 그림을 골라갔습니다. 그림 속 두 인물은 모네의 아내와 아들이라고 합니다. 파란 하늘과 푸른 언덕 그 사이에 있는 두 사람을 캔버스에 담고자했던 모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 당시에 그림을 고르며 알게 된 사실은 그림 속 모네의 아내 카미유는 서민이었다는 것입니다. 서민이기 때문에 그녀를 반대한 모네의 부모님은 금전적인 지원마저도 끊었고, 그 둘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4교시 내내 ‘파라솔을 든 여인’ 을 들여다보며 부채에 옮겨 그렸습니다. 그 찰나를 다시 한 번 그려내며 그림 속 감정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와의 즐거운 시간. 그 시간이 소중해서 담아내고자 하는 의지. 가난한 생활에 대한 걱정. 붓질 하나 하나에 복합적인 감정이 있었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부채는 상을 받았습니다. 원래 학교에 있던 상이 아닌 ‘미술 특별상’을 선생님께서 따로 만들어서 시상을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상은 아마도 그림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어린 저의 노력을 칭찬해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날, 집에 돌아오는 길 우연히 만났던 ‘수련’으로 시작하여 초등학교 때에 좋아했던 그의 작품들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없어지지는 않았던 소중한 기억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유독 하루가 길고 고단했다면, 한편의 그림 속에서 위로를 받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내가 너무도 지치고 힘든 날 뒤돌아보면 소중했던 기억과 그 작품은 언제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이처럼 커다란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작품 속에서 작은 추억 조각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러한 조각들을 심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문화예술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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