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려진 시간, 가려진 잔혹함. [시각예술]

미화되고 포장된 그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16.11.21 20: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가려진 시간, 가려진 참혹함.

- 미화되고 포장된 그들의 이야기 - 


가려진시간6.jpg
 
 
   나의 영화 취향은 지극히 소녀적이다. 일명 '소녀감성'을 뒤흔드는 영화를 나는 즐겨본다. 아름다운 영상미, 감성을 자극하는 동화같은 장면들, 예쁜 커플 주인공, 달달한 로맨스까지. 모든 것이 조화되는 영화를 찾으면 그 영화는 나의 스테디셀러 목록에 오른다. 그리고 자주 마음이 공허할 때마다 그 영화들을 다시 보곤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어바웃 타임>, , <최악의 하루> 등의 예를 들면 어떤 영화를 이야기하는지 딱 감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액션이나 코미디도 가끔보긴 하지만, 워낙에 장르 편식이 심해서 썩 마음을 잡아끄는 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관에서 보는 일은 드물다. <가려진 시간>은 이러한 영화편식쟁이인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였다.(일명 '취저') 영화를 관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려진시간7.jpg
 

  영화의 포스터와 스틸컷들은 모두 예쁘고, 아름답고, 동화같고, 반짝이는 감성을 전해준다. 영화의 내용이 이를 배반한 것은 아니다.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반짝이는 영상미를 뽑냈고,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라는 컨셉은 교묘하게 비틀린 시간 속에서 엇갈리는 '성민(강동원 분 / 아역 이효제 분)과 '수린'(신은수 분)의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가려진 시간>이라는 영화를 관통하는 큰 두가지 테마는 '아련함'과 '잔혹함'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나면 '아련함'에 대해서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순간의 호기심으로 시간의 잡아먹는 요괴에게 시간을 빼앗겨 어른이 되어버린 성민은 다시 흐르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멈추어진 시간 속에서 자신을 기다릴 수린을 위해 고독함을 견디며 자신만이 느끼는 가려진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시 세상이 겪는 시간을 마주했을 때, 그는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수린은 갑자기 사라져버린 친구들과 성민을 기다리다가, 시간의 틈을 살아온 어른이 된 성민을 만난다. 수린은 이방인이 되버린 성민을 기억하고 품어주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라는 신빙성 없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들은 비정상적인 소아성애자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자 아이일 뿐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려는 세상에 맞서서 서로의 온기를 지키려는 이들의노력은 보는 이로 안타까운 한숨을 자아내게 한다. 여기에 동화같은 영상은 그러한 아련함을 더욱 가중시킨다.


가려진시간2.jpg
 

  여기까지는 정확히 영화를 보기 전에 유추했던 내용과 일치했다. 아련하고 가슴 먹먹한, 한편으로는 슬픈, 그래서 더 아름다운. 그런 종류의 판타지 이야기. 분명히 <가려진 시간>은 그런 영화가 맞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아름다움은 소름끼치는 잔혹함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멈춰버린 세계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때로는 즐겁기도 하지만, 어른이 될 때까지 긴 시간 동안 고립되어 살아간다는 사실은 겪어보지 않고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깊은 고독함일 것이다. 더불어, 다시 세상의 시간에 편입된다 하더라도 이미 혼자서만 앞서가버린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때 성민이 느껴야했던 불안과 고통, 소속감 없는 고독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방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그나마 그를 이해하는 수린이 있었지만, 세상은 그들을 오해하고, 불신하며, 갈라놓으려 애쓴다. 시간의 요괴가 만들어낸 시간의 단절은 단순한 시간의 단절이 아니었다. 이 단절은 한 아이의 인생을 망가트렸고, 두 아이의 사랑(?)을 망가트렸으며, 단란한 가정을 붕괴시켰고, 사회에 혼란을 야기했다. 그리고 결국 수린과 성민을, 세상을 벗어난 이방인으로 만들었으며, 다시 한번 냉혹한 고독 속으로 성민을 집어넣었다. 이 모든 것들은 단절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물론 영화의 설정 상, 어른들이 아이들의 말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성민이 돌아온 이후, 또 다른 극단의 단절은 야기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오해와 불신, 그리고 단절이 빚어낸 결과는 결국 잔혹함을 넘어 참혹함에 이르렀다. 다시 한번 아이를 고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그 잔혹함 말이다. 그리고 이 잔혹함은 아름다운 영상으로 인해서 더욱 더 빛을 발한다. 이 두번째 테마가 기존의 나의 영화취향과는 다른 부분이었다. 


movie_image.jpg
 

  그렇다고 영화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이러한 단절과 불신이 이끄는 미화된 잔혹함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더 깊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매력적인 부분이다. 미화된 성민과 수린의 이야기는 사실 관객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판타지 이야기로 소비되어버린다. 관객들이 영화관을 나서며 감상을 끝낼 때, 그들에게 찜찜함이 남아있다면 그건 시간의 엇갈림 속에, 세상의 불신에 희생되어야했던 성민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영화 속에서는 요괴의 장난에 의해 (수린을 빼고서는) 누구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도 분명 수린과 성민처럼 그들만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가 없다. 즉 충분한 관심과 이해가 있다면 성민이 겪은 극단의 단절은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미화시키고 포장했지만, 영화의 끝자락은 성민이 겪었던 잔혹함의 언저리를 상기시키면서,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함을 암시한다. 우리는 미화되고 포장된 잔혹함을 보면서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를 미화시켜 방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포스터2.jpg
 

‘날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너 밖에 생각 안 나더라.
이 얘기를 네가 믿어 줄까?

-영화 속 성민 독백 中 - 


*이 게시글에 사용된 모든 사진은 네이버 영화, <가려진 시간>에서 가져왔습니다* 



[한나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