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람 속 도시, 도시 속 사람 -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展

글 입력 2016.10.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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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 도시
도시 속 사람
&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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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종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대해서 ‘원래 그렇다’며 착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도시는 원래 그렇지 않습니다. 도시를 도시로 만든 것은 사람입니다. 도시의 여러 특성은 그곳에 사람이 많기에 만들어진 특성일 뿐이죠.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도시는, 또 다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변화 된 사람은 도시를 더욱 도시답게 만듭니다.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과 도시. 그렇기에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이 보여준 것은 도시면서 또 사람이었습니다.

전시는 총 4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제 개인적인 감상으론 2부 구성인 느낌이었습니다. 1부가 1부고, 나머지 부가 2부인 느낌이었는데요. 그래서 리뷰 또한 2부로 구성해보고자 합니다.



사람, 도시를 그리다

1부의 가장 큰 주제는 ‘사람, 그리고 도시’였습니다. 1부도 초반은 사람이 아닌 도시 건물들, 혹은 집들이 빼곡이 들어차있는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한 그림들이 전시됐는데요. 특히나 4~5만가구가 그려진 한강전경도는 압권이었는데요! 빼곡하게 집들이 그려진 모습은 한양이 ‘도시’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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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위키백과-경기감영도>


도시 안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경기감영도’부터였습니다. 경기감영도엔 훈련을 받는 훈련병부터, 관찰사 행렬과 그를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묘사되어있는데요. 건물과 산세가 더 주가되는 느낌은 있었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경기 감영도에서 또 흥미로웠던 지점은 ‘경기감영도’인데 우리가 아는 경기도가 아니란 것이었습니다. 과거엔 사대문 안쪽만이 한양이고, 그 외곽은 다 경기도라고 불렸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서울인 곳의 전경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은문이었는데요. 사신을 맞이하는 문이었다고 하는 영은문은 그 이후 독립문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림에서도 중간부 쯤에 위치하는 영은문조차도 독립문이라하니, 경기감영도의 꽤 많은 부분이 지금은 서울이란 것을 알 수 있겠죠? 


▲본 전시에 전시된 것과는 다른 청명상하도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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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번화도 <출처: 조선일보


경기감영도부터 나타난 ‘사람’은 청명상하도, 고소번화도, 낙중낙외도, 태평성시도가 함께 전시된 곳에서 꽃을 피웁니다. 청명상하도는 우리나라에선 국보와 비견되는 중국의 1급 문화재인데요! 전시를 위해서 빌려오는데 보험금액만 천문학적인 액수가 들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보물입니다. 처음 그림을 보기 전에 설명을 들었을 땐 이 종이가 뭐라고, 싶기도 했는데요. 막상 그림을 보고 난 후엔 수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청명상하도를 통해 본 도시는 정말이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곧 도시 그 자체였습니다. 푸르디 푸른 쪽빛으로 그려낸 산세부터 출발한 청명상하도는 곧 도시로 접어드는데요. 그 전경 속엔 모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낚시를 하는 듯한 사람부터, 풍광을 즐기러 나온 듯한 사람, 무대 위 공연을 즐기는 사람까지. 그나마 자연환경이 더욱 돋보이는 장면에서부터 눈길을 잡아끌기 시작했던 ‘사람’은 그 배경이 ‘도시’로 넘어간 순간부터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 자그마한 그림에 어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어쩜 그리 제각각의 모습으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지! 다리 하나에도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사람, 그를 구경하는 사람, 말에 물건을 이고 지나가는 사람, 어깨에 물건을 이고 지나가는 사람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있었습니다!

얼굴은 대추씨만한데 각자 표정이 다 보인다고 감탄했던 박제가의 말처럼, 두뼘 정도 폭의 그림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가 다 제 모습을 뽐내고 있다는 것이 감탄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하루종일 들여다봐도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을 살펴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집을 짓는 사람, 밥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하나하나 꼽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은 그 자체로 ‘도시’였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도시’의 특성이니 말이죠. 

이는 고소번화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소번화도는 청명상하도와 비슷하면서 다른 그림이었는데요. 제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고소번화도는 청명상하도보다 더욱 작고 세밀하게 사람들을 묘사했습니다. 청명상하도가 대추씨였다면 고소번화도는 좁쌀같았달까요? ‘도시’ 그 자체에, 또 제목대로 ‘번화’한 모습을 묘사하고자 해서였는지 도시의 전경(사람들)에 대한 묘사 자체는 청명상하도보다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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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된 것 과는 다른 낙중낙외도 <출처


중국에 청명상하도, 고소번화도가 있다면 우니라라엔 태평성시도 일본엔 낙중낙외도가 있었는데요! 이 두가지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일단 중국의 그림보다는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의 두 그림이 두뼘정도 되는 두루말이 그림이었다면, 일본과 한국은 병풍 그림이었거든요. 

또한 중국의 두 그림은 실경이었다면 일본과 한국의 그림은 ‘이상도시’에 대한 묘사였다는 점도 달랐습니다. 특히 낙중낙외도의 경우 ‘사람’들의 모습보다 구름처럼 보이는 금박이 그림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정말 ‘이상도시’를 그려냈다는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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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성시도


그래서 태평성시도에는 우리나라의 전경이라곤 믿기지 않는 모습들도 꽤있었는데요. 흥미로웠던 지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생활상이 꽤 많이 녹아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풍 건물의 옷가게에 정작 걸린 것은 한복치마나 바지의 모습이라는 식으로 말이죠! 태평성시도에도 청명상하도 못지않게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해 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특히나 태평성시도는 2부 초반에 미디어아트로 태평성시도의 이모저모를 보여줘 더욱 인상 깊었는데요. 전경이 아니라 하나하나 뜯어서 보여주는 구성은 그 안의 ‘사람’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경기감영도, 청명상하도, 고소번화도, 낙중낙외도, 태평성시도까지. 도시 전경이라면서 그 안에 빼곡이 들어찬 사람들이 더욱 주가 되는 이러한 그림이 보여주고자 했던 건 결국 도시는 사람이 만든다는 단순한 이야기였던 거죠.



도시, 사람을 그리다

1부를 ‘사람, 그리고 도시’로 정리할 수 있었다면 2,3,4부를 통틀어서 제 개인적인 소감은 ‘도시, 그리고 사람’으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1부를 통해서 사람이 도시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줬다면, 다른 파트를 통해서 역으로 도시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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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2부는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들. 앞서는 도시 그림에서 사람을 봤다고 하더니, 이제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에서 도시를 봤다고 하니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풍속화를 그렸다는 것 그 자체가 ‘도시’가 사람에게 미친 영향이었습니다. 도시라 사람이 많기에 여가생활이 발달했고 여가의 발달은 ‘그림’이란 예술로 그 모습을 남기게까지 발달했습니다. 도시적인 특성의 끝이 풍속화였던 거죠. 김홍도가 그린 무동이나, 씨름, 그림 감상과 같은 공개적인 여가생활은 물론. 신윤복이 그렸던 남녀의 은밀한 여가생활도 ‘도시’적인 특성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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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사람이 몰려들었기에 도시엔 온갖 지식이 넘쳐났습니다. 이러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과거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던 문예에 중인층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는데요. 그 모습은 ‘수계도’에서 가장 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옥계사’라는 중인 모임의 60주년을 기념하여 남긴 이 그림에서의 중인들은 그림을 보거나, 글을 살피는 등의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요. 심지어 테이블 위에 놓여진 문구들은 진귀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며, 그들의 모습은 ‘중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기품이 넘칩니다. 이 모습은 ‘도시’로 인한 ‘사람’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데요. 이번 전시의 티켓이나 포스터가 이 그림으로 이뤄진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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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적임’에 물든 사람들은 점점 화려한 것을 추구하고, 이를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책가도’인데요. 본 전시에 전시 된 책가도는 자신이 가진 진귀한 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책장을 묘사한 그림들이었습니다. 

과거엔 조정 일에 싫증이 난 관리는 ‘귀거래’라고 하여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하는데요. 조선 후기에 달해 도시가 번성하기 시작하면서는 관리들이 좀처럼 ‘귀거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방으로 가기엔 도시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죠. 그 대신,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 그 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넣어놓고 ‘힐링’하고 왔다고 하는데요. 책가도 안의 그 공간이 바로 그 ‘힐링’의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힐링의 공간이자 과시의 대상이었던 거죠. 그 과시의 정도는 심지어 방금까지 안에 있던 듯, 막 벗어놓은 듯한 안경을 묘사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과거, 겸손을 중시해 과시하는 것을 지양했다면 화려한 ‘도시’에서는 과시가 유행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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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선도 초본 및 백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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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선군접


이 ‘과시’는 본인이 실제 가지고 있는 것을 넘어 그림 그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백선도나 백선군접이 그 예인데요. 그 당시 백선도는 하나의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백선도나 백선군접의 부채를 보면 단순한 부채가 아닙니다. 그림 안에 그림이라고 해야할까요? 각 부채 안에는 아름다운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요. 한 폭의 그림 안에 여러 그림을 담을 수 있으니, 단순해보이면서도 아름다움을 과시하기엔 제격이었던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백선군접은 반은 부채, 반은 나비로 각각의 대가들이 나눠 그린 병풍으로 그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요! 교차로 반반을 나눠 그렸기에 보는 위치에 따라 나비병풍도, 부채 병풍도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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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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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서옥도

 
이런 도시적임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 본인한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화가에게 자의식이 생긴 것이죠. 그저 풍경을 그려내는 화가가 아니라 그 안에 자신을 담고, 스스로 자신의 그림에 취하기도 하는 화가. 화려함과 과시의 만남이 만들어낸,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대표적인 화가가 바로 조희룡이었습니다. 조희룡은 매화에 미친 화가였는데요. “줄기를 하나치더라도 용을 움켜잡고 범을 잡아매듯이‘ 해야 한다는 신조답게 그의 매화그림은 붓선 하나에도 그 기백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 또한, 본인의 실력을 매우 잘 알고 있었는데요.

"좀 먹은 속에서 묵은 그림을 얻었다. 바로 스무 해 전에 그린 <매화서옥도> 였다. 그저 장난스러운 손놀림이나, 제법 기이함이 있고 연기에 그을려 거의 백년은 된 것 같으니 매화 그림이 이런데 하물며 사람이랴! 펴보고 나니 죽었던 친구를 다시 보는 느낌을 받는 것 같구나!"

위 글은 본인의 매화서옥도를 보고 본인이 내린 감상평입니다. 위 글만 봐도 자신의 그림, 그리고 그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무척이나 잘 느껴지지 않나요? 도시적임은 이처럼 미술의 유행양식뿐 아니라 중인, 혹은 화가 등의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1부에서 사람이 도시를 만들었듯, 나머지 부들에선 ‘도시적임’이 사람에게, 그리고 미술에게 미친 영향들을 보여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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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이란 제목과 같이 제가 전시에서 느낀 것은 '사람 속 도시, 도시 속사람'이었습니다. 전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시'와 '사람'을, 그를 담아낸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도시와 사람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게 비단 조선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도시가 저때에 비해 훨씬 거대해져 개개인의 영향력이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우리는 지금도 도시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간 도시의 분위기는 곧 다시 우리를 바꿔나갑니다. 결국 더 나은 도시를 위한,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장 큰 변화는 개개인들의 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시를 보고 난 후 지금까지 '탓'만 해왔던 도시에 책임이 생겼습니다. 누군가 청명상하도처럼, 고소번화도 처럼. 누군가 우리네 도시를 그렸을 때 제가 그 생동감있게 움직이는 인물 중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각자가 우리 도시를 한층 더 빛나게 하고, 그 도시가 우리 삶을 더욱 빛나게 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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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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