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구름이 되어 걸려있다 비가 되어 내리다 -발레공연 "무산신녀"

글 입력 2016.06.16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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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되어 걸려있다 비가 되어 내리다 

-발레공연 "무산신녀"- 






현재 우리가 접하는 많은 로맨스 소설이나 연극, 공연들은 서양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 많다. 물론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양 신화는 아름다운 그리스 로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그럼 반대로 동양신화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나 소설 등 작품은 어느 정도 될까? 아마 당장 머릿속에 스치는 것도 미미할 것 이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로 동양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동양신화에선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애정류 소설이 서양 신화에 비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신녀와 한 나라의 제후가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떨까? 마치 한 편의 시퍼런 구름이 되어 걸려있다 비가 되어 내린다는 그녀는 구름처럼 비처럼 사랑하는 이의 곁에 그림처럼 머문다. 노래 가사와 같으면서도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이 사랑이야기는 바로 동양 신화 "무산신녀" 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동양 신화를 낭만주의 발레와 접목시킨다면 어떨까. 


 巫山神女, 雲雨之情

무산신녀는 무산(巫山) 일대에서 발생하여 전승되어오는 내지의(內地)의 신화 전설로 새삼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유명하다. 선왕이 꿈속에서 ‘무산지녀’ 와 사랑을 나눈 이야기를 담은 무산신녀는 고대 중국 신화의 염제의 딸 ‘요희’와 초회왕의 러브스토리를 그린 것이다. 시집을 들기도 전에 그만 요절해버린 요희는 그녀가 죽어 묻힌 양자강 중류에 있는 명산 “무산”에서 “요초” 라는 꽃으로 재 환생 하는데 이 열매를 먹으면 누구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도 한다. 전국시대 말 요희는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접하는 “무산신녀”의 이야기이다. 초회왕과 요희가 사랑을 나눈 뒤 헤어질 시간이 되자 무산신녀는 초회왕에게 “저는 아침에는 산봉우리에 구름이 되어 걸려 있다가 저녁이면 산기슭에 비가 되어 내리는데 그게 바로 저입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꿈속에서 초회왕은 그녀와 달콤한 사랑을 나눈 뒤 그만 현실로 깨어온 것이 너무나도 통탄스럽고 비탄스러워 그녀와의 추억을 기리며 남쪽에 조운관(朝雲觀)을 지었는데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조운’ 은 요희가 꿈속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고 지은 이름이다. 이렇듯 회왕과 무산신녀사이의 사랑이야기에서 유래되어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운우지정(雲雨之情), 운우지락(雲雨之樂), 무산지락(巫山之樂) 또는 무산지운(巫山之雲) 이라고 한다. 구름과 비는 맺히고 풀어지는 것처럼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고여서 맺혔다가 흩어지는 비처럼 풀어진다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발레공연 "무산신녀"

우선 공연이 시작되기 전 스크린에 띄워져있던 신비롭고도 고요했던 구름이 걸려있는 무산이 묘사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구름’ 인데 처음에 무산신녀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 장면을 보았을 땐 그저 무산의 풍경을 묘사한 것인가 생각했으나 공연이 시작되면서 띄워졌었던 애니메이션 속 설명을 통해 몽환적인 구름은 ‘요희’ 의 모습을 표현했었다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비가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마치 ‘생명’을 묘사하는 인간나무를 조성한 무용수들의 몸짓을 시작으로 공연이 펼쳐졌다. 

공연의 전체적으로 요희와 회왕의 만남을 시작으로 요희에게 빠져버린 회왕의 심리묘사 및 그녀를 떠나보낼 수 없는 그의 아픈 사랑, 그리고 무산에서 구름과 비가 되어 떠돌아다니는 요희를 묘사하는 순서대로 전개되었다. 사실 뮤지컬이나 혹은 연극이었다면 스토리가 분명한 것에 대사까지 갖추어져 있으니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할 것인데 발레공연이 과연 얼마나 이 슬픈 사랑이야기를 표현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특히 무산신녀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묘사하는 아름다운 사랑을 잘 느끼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몸의 예술은 역시 위대했다. 발레라는 것은 무용수와 관람객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 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하는 손짓하나, 발짓하나가 모두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이며 그들이 짓는 표정하나까지도 ‘요희’ 와 ‘회왕’ 사이의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또한 거의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 ‘요희’ 의 단독무대가 있었는데, 폭풍같은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요희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움직임은 정말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화려하거나 조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던 이전 장면들에 반해 요희의 단독 공연은 시리도록 아픈 그들의 사랑을 한 층 더 강화하는 장치가 되었던 것 같다.   
 

퓨전은 이제 21세기에 문화의 아이콘이라 불릴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아있다. 이제 문화의 장르사이엔 더 이상 경계가 없으며 전통성에 갇혀있기 보단 열린 태도로 장르간의 콜라보레이션을 성사시켜 또 다른 문화 장르를 창출 해 낸다. 자칫 서로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어보여도 결국엔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또 문화라고 생각한다. 이번 발레 공연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시간 서양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했던 발레가 어느새 국내에서 성행하게 됐고, 길고 긴 변천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접하고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동양신화와 발레의 만남은 크나큰 센세이션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정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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