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바칼로레아] 제게 이 한조각을 허하십시오.

글 입력 2016.05.2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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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저는 이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이 단어가 갖는 두 가지 뜻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 번째 정의는 ‘작고 가늘어 변변치 못함’이며, 두 번째가 ‘살림이 보잘것없고 몹시 가난함’을 뜻합니다. 이 단어는 볼품없고 초라한 것들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놓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한 이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 단어를 존재하게 하는 형태 혹은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영세한 것들이 반드시 가치가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영세극단’, 그리고 ‘영세공연’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피자’라는 음식에 대해 먼저 얘기해볼까 합니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아닌데 왜 피자를 언급하는 것인지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는 비단 제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피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저의 어린 시절 동네피자집과 영세극단이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저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을 다 같이 감상해주기를 청해봅니다. 제가 살던 동네는 ‘O미노피자’, ‘피자O'과 같은 잘나가는 브랜드 피자가 가족단위 고객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사실 저는 저희 동네에 있는 피자집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 집은 정말로 동네 주민들에게만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 집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영세한 가게였기 때문에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었지요.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이름마저도 ’우리집피자‘와 같은 소박한 이름을 달고 있던, 지금으로서는 접하기 힘든 피자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슬펐냐구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집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저렴한 가격에 아주 맛있는 피자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값이 싸면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우선 의심부터 하게 되지만, 그 영세피자집은 결코 피자로 장난을 치지는 않았습니다. 갖가지 먹음직스럽고 큼직하게 썰린 신선한 토핑들이 항상 저를 반갑게 맞아주곤 하였지요. 바삭하고 도톰한 도우를 한 입 베어 물때면 삼시세끼를 피자로 먹을 수도 있으리란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변하더라도 그 집만큼은 변하지 않고 오래오래 제자리를 지켜주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동네피자집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좋은 가격에 좋은 피자를 제공하던 집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피자집을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더 자주 이용하고, 나만 알지 말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알려줄 걸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영세극단이 마련한 영세공연은 어떤가요. 앞서 말한 동네피자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으셨나요?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접하게 된 저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영세공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 그리고 그러한 공연들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또한 이런 점들이 제가 서포터즈로서, 그리고 문화예술알리미로 활동하면서 얻게 된 가장 큰 배움과 수확이자 ‘아트인사이트’라는 단체가 갖는 큰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동네피자집의 피자가 맛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딱 그만큼의 맛없는 피자를 제공하는 피자집이 있듯,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세공연을 제공하는 영세극단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서두에 밝힌 바, 영세하다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것과 동일하다 생각지 않는다 말했던 것처럼, 영세하다는 것이 반드시 희소가치를 띤다는 말과도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약간 모순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도 이런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제가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접했던 영세공연들은 그들만의 개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물론 각각의 공연들에서 감칠맛을 내는 향신료 몇 가지가 빠져 있거나, 겉보기엔 맛이 없어 보여 구태여 손대고 싶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 직접 피자를 먹어보기 전까진, 공연을 맛보기 전까지는 제대로 판단했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대중적이지 않았던 실험극을 처음 접할 기회가 있었을 때, 저 또한 그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것이 지루하고 난해해서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공연을 보러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올까라는 오만한 생각까지도 했었지요. 그렇지만 웃고 떠든 후 금방 잊게 되는 공연과는 달리 그 무대를 보고 난 후의 여운이 제게 오래도록 남아 한동안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두들 각각의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보가 잘 된 거대기업의 피자와 그렇지 못한 영세기업 피자가 존재하듯, 좋은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자본 혹은 여타의 인프라가 부족해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공연이 많이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조금만 변형을 준 스토리, 억지웃음을 자아내려는 시도가 들어가지 않은 영세공연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저마다의 맛을 내는 피자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속을 채우는 토핑도 제각각일 테고, 시즈닝에도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겠지요.
 
저는 이런 다양한 영세공연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그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질 좋고 맛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그 동네피자집과 같은 상황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영세한 공연·예술·문화에 관심을 갖고 이를 사람들에게 잘 알리는 역할을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할 것을 스스로 다짐해봅니다. 숨어있는 착한 음식점을 발견했을 때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숨겨져 있는 좋은 영세공연을 발견하면서 같이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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