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가만히 있어도 잘만 큽니다 -영화< 4등 > [시각예술]

글 입력 2016.04.2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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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박세리 선수를 전국민이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고 스포츠는 더 노골적이다. 타고난 실력을 믿고 연습을 게을리하는 거만한 수영 천재 광수가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며칠 후, 고향에 내려갔다 노름에 빠진 광수는 연습을 무단이탈한 죄로 코치에게 폭행을 당하고 이를 참지 못해 태릉선수촌을 박차고 나온다. 포장마차에서 예전에 만났던 기자에게 기사를 써 줄것을 요청하는데서 흑백 회상 장면은 마무리된다. 만년 4등 준호의 이야기가 영화의 골자라고 본다면 이 회상장면이 다소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폭행은 피해자,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로 이루어진다는 배경 설명을 위해 필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초등학생 준호는 수영을 시작한지 2년이 되었는데 늘 4등을 해서 메달을 따지 못한다. 아빠는 수영을 취미로 하라고 하지만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다. 메달 따게 해주는 코치로 유명하다는 광수를 찾아가서 준호를 부탁한다. 마침내 '거의 1등'인 2등의 메달을 따낸 준호의 등과 엉덩이에는 새빨간 멍이 남았다. 결국 광수의 폭행을 견디지 못한 준호는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하지만 이대로 수영을 포기하기에 준호는 수영이 너무 좋다. 새벽에 텅 빈 수영장에서 눈앞의 레인이 아닌 이곳 저곳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장면에서 천장에서 물을 통과해 준호를 내비추는 빛을 이용한 연출이 눈부시다. 준호는 다시 광수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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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을 꼭 하고 싶어요. 그래야 수영을 계속 할 수 있거든요."

"너 혼자 한번 해봐. 일등 할 수 있어."



광수는 선수시절 썼던 수경을 선물하고 떠난다. 하지만 준호는 대회 날 자신의 수경을 가지고 간다. 기성세대가 다듬어 놓은 길이 아닌 자신이 하고싶은 방식대로, '자유롭게' 가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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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네이버)


또 다른 캐릭터는 준호의 엄마이다. 엄마는 소원이 없다. 준호가 메달을 따고 동생이 공부 잘해서 좋은대학 가고 아빠가 건강했으면 한다. 자신의 삶이 텅 빈 엄마는 준호의 미래에 모든걸 걸고 있다. 준호가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엄마는 준호에게 험한 말을 내뱉는다.



"니가 무슨 권리로 수영을 그만둬? 우리 같이 열심히 했잖아.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니가 무슨 권리로 수영을 그만둬?"



자식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아니 어쩌면 반대로 자신의 인생이 텅 비어서 자식의 성공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엄마의 모습은 익숙한 묘사다. 하지만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삶이다. 가족을 위한 무조건적인 희생과 모성애의 의무감으로 똘똘뭉친 엄마라는 존재를 당신도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다. 어찌됐건 영화는 엄마가 준호를 내버려 두는게 준호와 엄마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의 메세지는 폭행에 대한 경고다. 맞는게 싫어서 수영을 그만 둔 광수는 폭력 코치가 된다. 광수에게 맞으면서 수영을 배운 준호는 동생이 자신의 수경을 몰래 쓰고 목욕을 하자 동생의 엉덩이를 구타한다. 폭행은 또 다른 폭행을 낳는다. 폭행은 본질적으로 상대방을 동등한 인간 취급을 해주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순간의 행동은 어떤 파장으로 이어진다. 무비판적인 폭행이 난무하는 시대에 <4등>은 잔잔하지만 날카롭게 그것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고 설득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요즘 애들은 '노력'이 부족하다는 귀에 딱지가 앉을 것같은 기성세대의 충고를 비꼰다. 광수는 자신의 폭행을 준호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엄마도 준호에게 '집중해서 잘해!'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그들의 집중하라는 충고는 오히려 준호의 집중을 방해할 뿐이라는 걸 모르는 듯 하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은 주변에서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혼자 아무렇게나 흐뜨러진 레인을 넘나들며 수영하고, 빛을 쫓아가는 준호는 어느 때보다 자신에게 집중한 모습이다. 집중하라고 노력하라고 말안해줘도, 알아서 잘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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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등>은 제목처럼 4등을 해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영화인 줄 알았는데, 결국 준호는 1등을 한다. 왜 이런 결말일까 진이 빠진다. 하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결말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나 저러나 어찌됐든 수영을 계속하려면 준호는 1등을 해야하니까. 어쨋든 여전히 세상은 만년 4등이 계속 4등으로 남는게 아닌 비로소 자신이 하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되자 1등으로 기적적으로 올라가는 신화를 기억하니까. 아니면 혹시 준호의 시각에서 연출된 이 마지막 대회 장면은 어쩌면 준호의 꿈속은 아닐까? 어찌됐든 물의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질 정도로 신비롭고 자유롭게 헤엄치는 준호의 모습은 이미 최고다. 그래도 여전히자유롭게 수영하는 장면에서 영화를 끝냄으로서 냉정한 세상을 따뜻하게 위로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 수 없다.


문득 고등학교 3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생각났다.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신 분은 아니었지만 그의 논리는 광수와 유사했다. 우리가 성적인 나오지 않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절실함'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위해 절실해야 하는지, 왜 집중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을 따라 집중한 덕에 좋은 대학에 간 친구들은 이제 어디에 절실함을 느껴야 하는지를 몰라 방황한다.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그 때 자신의 부족했던 절실함을 탓하며 후회한다. 아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느리더라도, 돌아 가더라도 스스로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었더라면 조금 더 다함께 옆을 보며 가는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늦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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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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