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내 아이에게', 어머니의 독백 [공연예술]

글 입력 2016.04.1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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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에게 - 포스터(레이아웃)고화질-01.jpg

 
2016년 4월 9일 토요일 오후 네시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연극 '내 아이에게'를 보고 왔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와 아트 인사이트의 초대.





    이 연극은 '코러스가 있는 모노드라마적 구성'의 극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연극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처음 경험해보는 형태의 극이라서 조금 신기했다. 등장인물은 노래하는 사람, 엄마, 딸, 그리고 1인 다역의 '사람들', 무대는 나무 의자, 나무판, 종이배, 꽃, 양철사다리 2개가 전부였다. 단순하지만 함축적인 연극이었다고 생각한다.





-내용과 구성

    연극은 세월호 2주기인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돌아간다. 노래하는 배우 주선옥님의 잔잔한 노래가 끝나면 엄마의 편지가 시작된다. 너를 임신했을 때, 너를 출산하던 때. 네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오겠다며 캐리어를 끌고 수학여행을 떠났을 때. 그 이후로는 우리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내용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서술이지만 그것을 표현해낸 방법이 독특했다.

    일단 모든 등장인물은 검은색 상하의에 맨발이다. 주인공인 엄마만이 베이지색 망토 같은 후드를 입고 있다. 그리고 엄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아이에게'하는 독백으로 일관한다. 너는 그랬지.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감정이 북받치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좋은 기억을 회상할 때는 따뜻해지기도 하는 것이 신기했다. 상대배우와의 호흡 없이 혼자 감정을 올렸다 내렸다 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김보경 배우님의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독백은 마치 본인의 이야기를 하듯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나머지 배우들은 1인 다역의 연기를 보여준다. 엄마의 편지 속 내용에 따라 갓난아이의 부모였다가, 진도체육관에 모인 학부모였다가, 배에 갇힌 아이들이었다가,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과거 큰 사건들의 유가족이었다가. 결론적으로 현재 무대에 존재하는 사람은 엄마뿐이다. 그 주위를 채워주는 인물들은 엄마의 회상 속에만 남아있는 이미지들일 뿐이다. 그런데 덕분에 극중 상황이 실감나게 전달되고, 극에 더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극 중간중간 서정적인 노래를 불러주시는 주선옥 배우님과, 하얀 나비를 팔랑거리며 등장하는 딸 서기청란 배우님(성함이..?!) 덕분에 극이 더 풍성해진다.

    또한, 나머지 주연인물이 아니라 배경 그 자체가 된 것이 어떤 느낌을 준다. 그들이 누구든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또한 누구든 그들이 될 수 있다고 전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배우들이 특정 인물을 지목해 연기하지 않고, 극의 흐름에 따라 물 흐르듯이 여러 역할을 해낸 것 같았다.





-무대

    연출자의 의도와 무대감독의 디자인에 따라 다르지만, 뮤지컬이나 오페라 무대는 영화 세트장 같이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소품들은 섬세한 편이다. 지킬앤 하이드에서 지킬의 연구실이라든지, 오페라의 유령에서 오페라 극장의 무대장치 같은 것들이 그 예다. 무대에서 장면을 관객에게 설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뮤지컬과 오페라 같은 경우는 '노래'를 통한 전달이 주가 되기 때문에, 배우가 사용하는 소품은 관객들이 눈으로 봤을 때도 딱 알아보기 쉬운 편이 더 좋다. 하지만 연극은 그럴 필요가 없다. 없는 소품을 있는 척하고, 없는 사람을 있는 듯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이 충분히 상상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극, 특히 소극장 소규모 연극의 무대와 소품은 함축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 무대에서 중심 역할을 맡은 나무의자는 '돌아오지 못한 아이의 빈자리'를 의미하는 것 같다. 엄마가 앉아도 보고, 끌어안아도 보고, 마지막에는 종이배를 올려놓기도 하고. 이 극의 사실적인 중심이다. 그래서 중앙에 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가장 많은 역할을 한 소품은 양철사다리이다. 집이었다가, 체육관이었다가, 배가 되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학부모를 태우고 세월호 주위를 맴도는 작은 배가 되었을 때. 어렸을 때 의자 두 개로 집도 만들고 차도 만들던 생각이 났다. 무대 연출가의 상상력은 때로 어린아이 같아야 하나 보다.

    또한 조명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했는데, 차가운 바다에 대한 회상에서는 짙은 파란색, 그 외에는 노란색과 주황색 빛이 사용되었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색이 노란 색이기도 하지만, 원래 노란 계열의 색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이기도 하다. 그래서 차가운 파란색과 대비되어 보이고, 그들이 있는 곳(차가운 바다)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가족)의 온도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가장 좋았던 장면

    엄마가 내민 손 위로 딸을 상징하는 하얀 나비가 내려앉고, 그 주위로 돌아오지 못한 나머지 여덟(딸포함 아홉)명의 나비가 날아다니는 장면. 어찌보면 유일하게 엄마가 혼자가 아니었던 장면 같기도 하다. 나머지 장면들이 과거의 그림자들이 비추는 느낌이라면, 유독 그 장면은 그 순간에 무대 위에 같이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무리

    마무리는 아래 사진처럼 종이배를 안고 있는 나무의자 주위로 아홉마리 나비가 둘러앉고, 그 위에 조명으로 만든 나비 수십 마리가 내려앉는다. 추모하는 느낌이 든다.

    주위에서 우는 소리가 많이 들렸다. 경석이 옆자리에 있던 듬직한 남성분도 우셨다. 노래하던 배우님이 준비한 극은 여기까지라며 모두 돌아가서 한 번씩 생각해주십사 했다. 리뷰를 쓰려고 했는데 뭐랄까 당장 쓰기가 어려워서 미루다 1주일이 흘렀다. 정말 소규모에 소품 수도 적었지만 잘 만든 연극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소품과 무대에마저 여러 의미가 함축된 한 편의 시 같은 연극이었다.


무대.jpg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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